우정사업본부, ‘택배 사회적 합의’ 책임 회피?
우정사업본부, ‘택배 사회적 합의’ 책임 회피?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0.01 13:49
  • 수정 2021.10.0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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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 사회적 합의 이행 늦어지는 우본 규탄 기자회견··· 1일 우본 국감 답변 따라 투쟁 수위 결정 예정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일 오전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이 국회 앞에서 열린 택배노조 기자회견에서 우정사업본부의 사회적 합의 이행 지연을 규탄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우체국 택배노동자들이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박종석)가 민간택배사도 이행 중인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사회적 합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장기적으로 ‘택배사업 지우기’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우체국본부(본부장 윤중현)는 1일 오전 9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6월 사회적 합의문에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했지만, 3개월도 더 지난 현재 시점까지 합의 이행에 한 걸음도 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체국 위탁배달원은 건당 배송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우정사업본부의 자회사인 우체국물류지원단과 위탁계약을 맺는다.

앞서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 6월 22일 2차 합의문을 도출했다. 2차 합의문에는 택배노동자 업무에서 분류작업을 배제하기 위한 이행 방안이 담겼다. 합의 이행은 올해 9월 1일부터 하기로 했다. 

특히 우체국택배의 경우 2차 합의 전 논란이 됐던 분류작업 비용 소급 적용 시기, 분류작업 수수료 지급 여부 등에 대해서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을 받기로 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택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근거로 ▲사회보험 택배노동자와 5:5 분담 ▲표준계약서 체결 지연 ▲감사원 사전 컨설팅 늑장 등을 제시했다.

문제① 사회보험 택배노동자와 ‘5:5 분담’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민간택배사들이 9월부터(CJ대한통운은 8월) 산재·고용보험을 전액 지원하고 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택배노동자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는 “우체국물류지원단 택배사업처장은 고용보험 가입 관련 노동조합의 문의에 대해 ‘9월분 보험료는 9월 배달수수료에서 공제되면 지원단-배달원이 5:5로 배분해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측은 “사회보험료 관련해 노동조합의 주장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최종 결정을 아직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며 “사회적 합의의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향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② 표준계약서 체결 지연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문에 명시된 표준계약서 체결도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차 합의문에 따르면 법적 강제력이 없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표준계약서 체결로 담보하기로 했다. ‘택배사업자와 영업점은 합의문 주요 내용이 담긴 표준계약서를 생활물류서비스법이 시행되는 2021년 7월 27일부터 위탁운송계약 체결·갱신 시에 이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은 “(우정사업본부-우체국물류지원단-우체국본부) 상시협의체에서 우정사업본부 측에 표준계약서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건 민간에나 적용되는 거고 우린 해당 사항 없다. 내년 재계약 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차 합의문에 ‘2021년 7월 27일부터 위탁운송계약 체결·갱신 시’에 표준계약서 적용이 명시된 점을 근거로 위탁배달원들의 계약 갱신 시점인 내년 6월에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택배노동자들에겐 표준계약서 없인 사회적 합의가 현장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택배노조의 주장이다. 윤중현 본부장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노동자를 분류작업에서 제외하기 위해선 적정 수수료, 적정 물량 보장 등이 중요한데 수수료 표가 계약서와 연동되어 있어서 계약서가 갱신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는 무용지물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③ 감사원 사전 컨설팅 늑장

또한 택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분류작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을 받기로 했으나, 사회적 합의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컨설팅은 시작조차 안 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월 소포 위탁 수수료 재산정에 관한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이 결과에 따라 감사원 사전 컨설팅, 노동조합과 논의 등을 하겠다는 것인데 연구용역 결과 발표는 아직이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지난 9월 8일 상시협의체에서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었고, 오는 5일 예정된 상시협의체에서 감사원 컨설팅 관련 최종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노동조합에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윤중현 본부장은 “5일 연구용역 결과 발표 설명회를 하니까 오라는 사측의 연락은 받았다”면서 “다만 우정사업본부는 설명회가 아닌 상시협의체, 노사가 논의하는 자리라는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본, 사회적 합의 회피?

아울러 우체국 택배노동자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장기적으로 ‘택배사업 지우기’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최근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 택배차량에서 ‘택배’ 글자를 지우고 있는 점, 우체국택배 알림 메시지에도 ‘택배’ 단어가 사라진 점, 지난달 국토교통부에 우체국물류지원단이 생활물류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인지 유권해석을 요청한 점 등의 정황이 우려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 택배노조
지난 9월 16일 해운대우체국에 정차돼 있던 우체국택배 차량에 택배라는 단어가 지워졌다. ⓒ 택배노조
ⓒ 택배노조
고객에게 발송하는 메시지에도 택배 대신 소포우편물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 택배노조

2차 사회적 합의 직전에도 우정사업본부가 택배사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지난 6월 9일 우정노조는 우체국본부의 분류작업 거부 투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성명서를 내고 “우정사업본부는 (위탁배달원들의) 위탁계약을 전면 해지하고, 민간영역 택배사업 폐지와 정규집배원 증원을 통해 우리가 자체적으로 물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만 실추된 우체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뒤인 6월 14일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우정노사협의회를 열고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택배 명칭을 소포로 변경하고, 우체국택배사업을 우체국소포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윤중현 본부장은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택배’라는 이름으로 택배시장에 개입력을 높여왔고, 2011년부터 영업이익도 상당히 증가했다”며 “이제 와서 택배를 소포로 바꾸겠다는 건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사회적 합의와 생활물류법 이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체국택배는 브랜드 네임이고 우리의 업무 자체는 소포”라며 “업무에 맞게 명칭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택배라는 단어 대신 소포로 명칭을 바꾸고 있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택배노조의 기자회견 이후 국회에서는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의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예정됐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정사업본부의 사회적 합의 이행에 관해 질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에서 우정사업본부의 답변에 따라 택배노조는 오는 3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앞으로 투쟁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