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분류작업 전환에 엇갈린 목소리
우체국 분류작업 전환에 엇갈린 목소리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4.04 16:18
  • 수정 2023.04.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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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년 우체국 ‘개인별 분류’...우려와 기대 공존
​​​​​​​“월 소득 삭감”, “육체적 부담 감소” 엇갈림 속 ‘재검토’ 주장도
이른 아침 분류작업이 한창인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2021년 6월 택배 노사정*은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문’을 발표했다. 과로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에서 택배노동자를 제외하는 게 합의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합의 주체인 민간 택배사와 우정사업본부는 기존의 ‘팀별 분류’를 ‘개인별 분류’로 바꿔갔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택배사업자, 대리점연합회, 소비자단체, 화주단체,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우정사업본부 등

팀별 분류하에서는 대체로 동(洞) 단위로 소포를 분류한다. 가령 노원구 소포라면 분류작업자들이 월계, 중계, 석계 등 동별로 나눠 팔레트(pallet)*에 담고 위탁배달원들에게 전달한다. 배달 구역별로 1차 분류된 소포를 해당 구역의 위탁배달원이 모여 2차로 분류해야 한다. 반면, 개인별 분류는 위탁배달원 개개인에 맞춰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택배기사 개개인에 할당된 물품이 정확히 선별돼서 팔레트로 전달된다면, 택배기사는 추가로 분류작업을 하지 않고도 물품을 차에 실을 수 있다.
* 목재·플라스틱·철 등으로 만든 대형 화물 운반대

우정사업본부의 소포 업무를 위탁 수행하는 우체국물류지원단은 2022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개인별 분류를 도입했다. 2023년 1월 기준, 전국 위탁우체국 198곳 중 142곳에서 개인별 분류를 시행 중이다. 사회적 합의로 도입된 개인별 분류는 택배기사의 노동시간과 육체적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제도에 대한 우체국 현장 노동자의 반응은 갈린다.

개인별 분류 전환,
우체국 위탁배달원 수입 감소

“올해 1월 1일부터 개인별 분류를 적용받아 일한다. 예전에는 한 팔레트에 소포가 마구 섞인 채로 왔기 때문에 팀원들과 모여 수작업으로 분류하곤 했다. 지금은 개인별 분류로 몸은 편해졌는데 원치 않는다. 기존대로 그냥 팀별 구분을 하고 싶다.”

지난 3월 수도권 소재 우편집중국에서 만난 소포 위탁배달원 A씨의 말이다. A씨가 개인별 분류에 부정적인 이유는 감소한 월 소득에 있다. “개인별 분류로 바뀌고 나서 급여의 40~50만 원이 삭감됐다”고 말한 A씨는 “일하는 시간이 40분 정도 줄었지만 급여가 깎였기 때문에 (분류 방식을 변경한 것에) 불만이 크다”고 밝혔다.

개인별 분류 시행 이후, 제도를 적용받는 위탁배달원들에겐 소포당 111원의 분류비용이 제외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개인별 분류를 하는 위탁배달원과 그렇지 않은 위탁배달원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진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개인별 분류 적용을 기다리는 B씨 생각은 다르다. “급여가 삭감되더라도 육체적으로 덜 힘들 테니 찬성이다. 지금처럼 팀별 분류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물건을 갖다 줘야 한다. 개인별 분류를 하면 몸은 덜 힘들 듯하다. 차 앞에서 내 물건만 실으면 되니 편하지 않을까.”
 

집중국에서 분류작업 중인 우체국 위탁배달원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우려와 기대 공존하는 우체국 물류 현장

개인별 분류는 긍정적 효과를 안고 있지만, 수수료 삭감이 발생한 탓에 제도에 대한 우려와 기대감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면서 같은 사업장 내에서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주거형태 등 배달 지역 특성과 출차 시간이 엇비슷한 구역의 노동자 사이에서도 견해는 나뉜다. 구역 조장을 맡고 있는 C씨의 얘기다.

“우리 구역 인원이 38명인데 개인별 분류를 찬성하는 쪽이 좀 더 많긴 하다. 90분 정도 걸리는 까대기*를 1시간 내로 끝낼 수 있다고 하니 출근 시간도 그만큼 늦출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굳이 바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자기 수입에서 최소한 월 30~40만 원 빠지니까. 10년 넘게 무난히 일 해왔고, 팀별 분류에 크게 불편을 못 느낀다. 동별 분류도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아 혼재돼서 올 때가 많은데, 그것만 지금보다 잘해서 내려오면 좀 더 빠르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일컫는 말로, 보통 무거운 물건을 운반·분류하는 노동자가 사용하는 은어

이처럼 노동시간이 단축될 거라는 기대로 개인별 분류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분류작업자들의 손이 많이 가는 개인별 분류를 확대하면 소포를 전달받는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위탁배달원 출근 시간을 늦추면 오히려 하루 노동시간이 늘어날 거라는 주장이다.

“제 경우 7시에 출발하는 것과 7시 30분에 나가는 게 다르다. 8시 조금 넘어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면 등교하는 학생들과 겹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어렵다. 7시에 나가면 그 인원들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치고 빠질 수 있다. 불과 30분 늦게 출발한다지만 퇴근시간이 지금보다 몇 시간 늘어나 버릴 수 있다. 일찍 나가야 업무 중 스트레스를 줄이고 퇴근도 당길 수 있다.”

“일반 택배기사들은 빠르면 10시에 현장에 도착한다. 우체국은 그보다 일찍 나가기 때문에 10시까지는 다른 택배사를 안 만난다. 동선이 꼬이지 않으니 일하는데 수월하다.”

반대 의견도 있다. 출근 시간은 늦어지고 출차 시간은 빨라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얘기다. “개인별 분류를 하면 분류작업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저희 출근은 늦게 하더라도 출자 시간은 동일하다고 본다. 출근 시간과 맞물려서 늦어질 거란 얘기가 있는데, 지금도 출근 시간에 나가는 경우가 많고 도로는 막혀있다. 항상 있었던 일인데 개인별 분류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개인별 분류 일괄 적용 다시 들여 봐야”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소득 감소 없는 개인별 구분”이 이뤄지면 더할 나위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민간 택배사와는 달리 분류작업 변경으로 발생한 소득 감소를 보전해주기 어렵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21년 사회적 합의를 주도한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해 6월 위탁배달원의 수수료를 두 차례에 걸쳐 각 3%씩 총 6% 인상하는 노사협정서를 우체국물류지원단과 체결했다. 이를 통해 개인별 분류 도입으로 감소하는 수수료를 보전하려는 목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소포위탁배달원의 소포우편물 수수료 인상률은 2022년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준수수료의 3.0%를 인상하고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의 기준수수료는 3.0% 추가 인상될 수 있도록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수수료는 2022년 하반기 한 차례만 인상됐고, 2023년 상반기 수수료 인상은 지켜지지 않았다. 개인별 분류를 하는 위탁배달원들이 소득 감소를 겪는 배경이다. 우체국본부는 “2023년도 정부 예산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입장이다. 더해서 우체국본부 관계자는 ‘수수료 인상 자체가 개인별 분류 때문이 아니라 물가 수준을 반영해 정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분류작업 중인 노동자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분류작업 중인 노동자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개인별 분류에 대한 선호가 나뉘고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제도를 전면 적용하는 게 적절한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한국 공공노련 우체국물류지원단전국노동조합 위원장은 “개인별 분류가 잘되고 수수료도 줄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팀별 분류를 완전히 없애는 게 맞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노동 강도를 줄이자는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우체국 시스템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체국 물류 작업장의 제한적 환경도 고려 사항으로 꼽았다. 분류작업 공간이 협소해 많은 인원과 팔렛트를 필요로 하는 개인별 분류를 전면 시행하기 어려운 현장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의정부우편집중국의 경우 공간이 좁은 탓에 분류작업자들이 소포구분기가 있는 분류작업장을 벗어나서 일을 하기도 한다. 서울 지역의 한 위탁배달원은 “지금도 소포 물량과 중량이 늘어나는 가을이면 팔렛트 개수가 훨씬 많아지는데, 만일 개인별 분류를 하게 되면 인원과 파렛트가 많아져 일하기에 매우 복잡할 것”이라고 했다.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은 “2021년 사회적 합의는 분류 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강행 규정을 전제로 합의했던 건데, 우정사업본부가 합의를 지키지 않은 탓에 그때와 지금의 조건이 달라졌다. 사회적 합의의 당사자였던 택배노조와 우정사업본부, 우체국물류지원단, 여기에 우체국물류지원단전국노조를 포함해서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조합원들의 총의를 물어서 입장을 정리해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체국본부에 의해) 합의가 깨졌으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입장을 가지고 우체국본부하고 논의하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의 여덟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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