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사회적 합의 초안 반발··· “투쟁 강화”
택배노조, 사회적 합의 초안 반발··· “투쟁 강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6.11 20:59
  • 수정 2021.06.15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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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사회적 합의문 초안, 1차 합의 기본 정신 훼손하고 택배노동자 생계 위협”
택배노조, 전 조합원 상경 투쟁 예고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택배노동자들이 정부가 마련한 2차 사회적 합의문 초안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택배노동자의 생계까지 위협할 수 있다며 다음 주부터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11일 밝혔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사회적 합의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고 택배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국토교통부의 사회적 합의문 초안은 당장 재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시간 노동 막기엔 미흡한 초안

대책위는 이날 전달받은 국토교통부의 2차 사회적 합의문 초안이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막기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합의문 초안에는 노동시간이 일12시간, 주60시간을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표현돼 있다”며 “사회적 합의기구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한계가 있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표현은 사실상 지키나, 지키지 않으나 무력화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물량이 집중되는 명절 특수기에 노동시간 상한선이 합의문 초안에 명시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진경호 위원장은 “합의문 초안에는 설날, 추석에는 (노동시간 상한 기준을)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지난해만 해도 추석 전후 9~10월에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집중됐다. 그런데도 합의문에 특수기 노동시간 상한을 정하지 않은 것은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대책위는 1차 사회적 합의문에 담긴 주5일제 논의도 2차 합의문엔 빠졌다고 전했다. 

노동시간 단축→물량 감소→소득 보전은? 

대책위는 특히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물량감소로 인한 소득 보전 대책이 빠진 점을 비판했다.

대책위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출발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적정물량-적정수수료’가 의제로 선정됐고 지금까지 합의 수준에서 논의돼왔다”면서 국토교통부가 기존 논의를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책위는 분류인력 투입으로 노동시간이 줄어 물량 감소 없이 주60시간 이내에 일할 수 있는 택배노동자들까지 수수료 보전 대책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택배노동자들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72시간이다. 택배사들이 분류인력을 제대로 투입하고, 자동화 시설을 갖추면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2시간씩 수행하던 분류작업(주6일 총 12시간)을 하지 않게 된다. 계산상으론 물량 감소 없이 주60시간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주 평균 72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주60시간을 맞추려면 물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진경호 위원장은 “지금 가장 쟁점은 소득 보전 대책 없이 주60시간을 초과해 일하게 되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사측이 물량조정, 구역조정을 할 수 있게 열어준 것”이라며 “이런 합의문은 결단코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택배노동자의 소득 보전 문제가 초안에 빠진 점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 택배사, 화주, 소비자단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모여 적정 작업시간을 최대로 규정하는 부분까지 소득 보전 내용을 넣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택배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정부나 사업자는 택배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정도의 문구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합의문에 소득 보전을 명시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택배산업 거래구조 개선안, “추상적”

택배산업의 거래구조 개선안이 미흡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진경호 위원장은 “1차 사회적 합의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내용 중 하나가 거래구조 개선을 통한 택배요금 현실화였다”며 “화주들이 택배비를 소비자에게 받아서 중간에 전용하는 백마진, 리베이트 문제가 심하니 거래구조 개선을 통해 택배 원가 상승 요인을 흡수해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의 논의인데 이번 초안에서는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초안에) 거래구조 개선 내용을 빼지 않았다”며 “백마진, 리베이트는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해명했다. 

국토교통부의 해명에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전에 거래구조 개선을 통해 나오는 비용을 어떻게 쓸 것인지 등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왔지만 초안엔 그런 내용이 빠지고 생활물류법을 적용한다는 수준”이라며 “사실상 추상적, 선언적 구호에 머무는 정도로 거래구조 개선에 관한 내용이 담긴 것”이라고 밝혔다.

우체국택배 노사 갈등도 커져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진경호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는 오늘 위탁 택배기사들에게 건당 201원의 분류비용을 지급해왔다고 우체국 물류지원단을 통해 노동조합에 전달했다”며 “위탁배달원들의 수수료 지급내역 어디에도 분류비용 항목이 없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우정사업본부가 긴급 회의한 결과 올해 말까지 위탁 택배기사들에게 개별 분류된 물품을 인계하겠다는 입장을 세웠다고 한다”면서 “올해 말까지 개별 분류를 완료한다면 사측이 주장하는 201원은 이후 수수료에서 삭감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택배노조는 11일 우체국 위탁배달원이 지난 5월 받은 수수료 지급내역을 공개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수수료 지급내역에 우정사업본부가 주장하는 분류비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우체국물류지원단 관계자는 “2019년 우정사업본부가 택배수수료에 대한 연구용역을 한 결과에 분류수수료 항목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부터 노사가 합의해 택배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분류수수료가 201원으로 책정돼 있다”며 “명세표상엔 택배수수료에 포함된 모든 항목을 기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구용역의 주체는 우정사업본부이기에 해당 내용은 별도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담당 부서가 회의 중”이라는 이유로 아직 답변하지 않았다.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은 “우정사업본부가 기획재정부에 예산 승인을 요청할 때 (위탁배달원 수수료) 원가분석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원가분석표에 분류비용을 자의적으로 삽입한 것”이라며 “원가분석표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기준으로 차량임대비, 4대 보험료, 퇴직금 등이 들어가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논리대로라면 우린 고맙다. 그럼 원가분석표 대로 다 적용해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수고용직인 우체국 위탁배달원들은 배송 건당 평균 수수료로 1,213원씩 받아 월 평균 수입은 488만 원이다. 하지만 여기서 노동자가 아니라서 부담해야 할 차량임대비 등을 사측에 돌려주고 유류비, 4대 보험료 등을 개인이 쓰기 때문에 남는 돈은 300만 원 초반대다. 

이런 상황에서 우정사업본부가 원가분석표를 근거로 분류작업비를 줬다고 주장한다면 위탁배달원들은 원가분석표에 포함된 유류비, 4대 보험료 등도 제대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중현 본부장은 사측이 분류작업비를 줬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한편 우체국물류지원단은 진경호 위원장과 윤중현 본부장에 대해 업무방해혐의로 11일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상황이다. 

“다음 주부터 파업 수위 강화할 것”

이런 상황에서 택배노조는 다시 한 번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지난 7일부터 ‘오전 9시 출근·오전 11시 배송출발 투쟁’에 돌입했고, 9일부턴 쟁의권 있는 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간 바 있다. 

택배노조는 “다음 주부터 파업을 수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노조법에 따라 허용되는 대체배송 인력을 제외한 불법 대체배송을 철저히 통제하고 규격위반, 계약요금위반, 중량부피 초과 등으로 배송의무가 없는 물품 일체를 배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진경호 위원장은 “다음 주 중 전국 6,500 조합원들이 모여 상경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며 “이 투쟁은 청와대와 여의도 우정사업본부를 잇는 6,500대의 차량시위도 포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완 수석부위원장은 “국민 여러분께 파업으로 불편을 드려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다만 택배노동자들이 과로로 계속 쓰러질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택배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고통이라고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