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나무가 아니라 숲이다!
[녹색연합 기고] 나무가 아니라 숲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05.05 00:00
  • 수정 2021.09.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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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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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오래된 숲이 드물다. 땔감으로 나무를 쓰던 조선 후기, 마을이 가깝고 지대가 낮을수록 제대로 된 숲이 남아 있지 않았고, 숲의 나무 비율이 10%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이어 일제강점기 침탈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숲을 회복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우리 강산이 푸르러진 건 1960년대를 지나고 나서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중요한 자연유산으로 국립공원이 만들어진 것도 그 이후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겪으며 우리 삶에서 숲은 더 특별한 곳이 되었다. 쉬기 좋고 바람 쐬기 좋은 곳은 늘 숲이 있거나 자연 경치가 좋은 곳이 아니던가. 캠핑이나 차박이 달리 유행할 리 없다. 지난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숲은 육상의 유일한 탄소흡수원으로서 더 특별해졌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하여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순수 온실가스의 양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산림은 온실가스 4,560만 톤을 흡수했다. 이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6.3%에 해당되는 양이다. 숲의 탄소 흡수와 저장 기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산림청은 30년 이상 노후한 산림이 70%로 탄소흡수원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졌다면서 ‘산림 경영’을 2050년 탄소중립의 중요한 전략으로 발표했다. 오래된 나무를 베고 새 나무를 심는 것이 산림경영의 골자다. 슬로건도 ‘숲 가꾸기’에서 ‘숲 바꾸기’로 변경했다.

하지만 산림청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숲을 나무의 집합체로만 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30년 이상 오래된 숲의 효능을 단편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흙이 있고, 풀과 덩굴이 있고, 다양한 생물들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모여 균형을 이룬 생태계가 숲이다. 공급과 지원, 조절과 문화 등 숲의 기능은 온전한 생태계로서 존재할 때 가능하다. 실제로 2008년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린 한 논문에서 숲은 800년이 되어서도 탄소흡수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숲의 탄소흡수 기능이 30년 무렵 주춤하다 100년이 넘어가면 가파르게 증가한다고도 알렸다. 전문가들은 ‘나무’의 탄소흡수 기능이 아니라 토양과 생물다양성에 입각한 숲의 탄소 저장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오래된 자연숲이 드물어 충분한 연구가 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목표와 효율에만 치중한 나머지 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탄소흡수량으로만 정량화하여 2050년 탄소중립의 근시안적 대안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혹여 숲을 밀어내는 개발 계획에 근거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나는 지금 부산의 서쪽 끝 다리로 이어진 섬, 가덕도에 와 있다.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후 가덕도는 주민들의 신공항 반대 현수막이 즐비한 가운데 보상을 노린 신규 건축물이 바쁘게 들어서는 중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바다를 메워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러한 공항이 기존 김해공항보다 안전한지. 아직 추진 중인 2030 부산 엑스포를 위해 절차를 무시하고 국제공항을 만드는 것이 정당한지. 온 세계가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있는 열차가 있는 지역의 항공노선도 줄이는 지금, 24시간 운행을 내걸고 신공항을 짓는 것이 타당한지 등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탄소흡수원인 숲과 바다를 밀어내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덕도에는 해발 300미터가 채 안 되는 독특한 숲이 있다. 여기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요충지였다. 바닷가로 들어오는 적들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민가를 없애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탓에 역설적으로 이 숲은 보호될 수 있었다.

숲은 생물처럼 여러 과정을 거쳐 균형을 찾는다. 처음에는 다양한 종들이 들어오고, 이 종들이 경쟁을 하며 숲은 발전한다.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화된다. 구체적으로 30~40년쯤 되면 참나무가 소나무를 밀어낸다. 또 그 다음에는 다른 나무들이 대체를 한다. 이렇게 숲은 조금씩 변화하여 보통 200년 정도 되면 더 이상 변하지 않고 질서 있는 상태로 안정된다. 바로 지금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가 될 이 숲이 그렇다.

가덕도의 숲은 현재 100년 정도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200년 정도 살아간 숲처럼 스스로 균형을 잡는 상태가 돼가고 있다. 생태 전문가들은 가덕도의 숲은 숲의 원형으로서, 100년 된 숲이 이후 어떻게 바뀔 것인가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 역사 자료라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며 공항을 짓기 위해 밀어버리려 하는 숲이 바로 그런 숲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바다를 메우고, 숲을 밀어내서 탄소중립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