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토끼와 함께 살기
[녹색연합 기고] 토끼와 함께 살기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2.08 00:43
  • 수정 2023.02.0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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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김연수 생태사진가가 십수 년 전 필름 사진으로 찍은 멧토끼. 머리에 흰 반점이 있다. 김연수 사진가는 “요즘 멧토끼를 거의 볼 수가 없어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 김연수 생태사진가, 한양대 커뮤니테이션학과 겸임교수
김연수 생태사진가가 십수 년 전 필름 사진으로 찍은 멧토끼. 머리에 흰 반점이 있다. 김연수 사진가는 “요즘 멧토끼를 거의 볼 수가 없어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 김연수 생태사진가, 한양대 커뮤니테이션학과 겸임교수

계묘년, 토끼해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야생 토끼는 멧토끼(hare)라 불리는 종으로, 따로 집을 짓거나 굴을 파서 몸을 숨기지 않고 사는 게 특징이다. 천적으로부터 작은 몸집을 숨기려면 그에 맞는 작은 키 나무가 필요하다. 큰 나무만 빽빽한 숲에선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멧토끼는 작은 나무와 덤불, 풀이 있어 먹이를 구하기 쉬운 곳을 선호한다.

지난해 3월 울진 지역에서 큰 산불이 발생한 이후, 5월 중순 현장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야생동물 흔적이 바로 멧토끼 똥이다. 당시 산불을 감지한 멧토끼들은 긴 뒷다리로 전력 질주해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그리고 폐허 같은 숲에서 풀이 돋기 시작하자 먹이를 찾으러 돌아왔을 것이다. 멧토끼의 흔적은 수십 년 걸리더라도 야생동물이 살아갈 공간이 결국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했다.

토끼가 많은 숲은 다른 야생동물이 살기에도 좋다. 달리 말하면 사방에 토끼의 천적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랑이와 늑대가 사라진 우리 숲의 최상위 포식자는 삵, 담비, 오소리 등이다. 그들의 덩치를 떠올려보면 몸무게 3~4킬로그램 정도의 멧토끼는 먹이로 제격이다. 구렁이나 살모사 같은 파충류도 늘 멧토끼를 노린다. 수리부엉이나 매 같은 육식성 조류도 천적이다. 일 년에 두세 번씩, 한 배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도 멧토끼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이유다.

몇 년 전 서울 월드컵공원 상공에서 말똥가리가 사냥감을 포착한 듯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이 공원에 사는 토끼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건 그래서다. 예민하고 겁 많은 야생 멧토끼 여러 마리가 사람 발길 끊이지 않는 도심 공원까지 어떻게 유입된 걸까. 예상과 달리 공원의 토끼는 멧토끼가 아니었다. 만약 공원에서 토끼를 발견했다면 이는 야생에서 유입된 토끼가 아니라 반려동물로 키우다 유기한 토끼이거나 그들이 번식한 개체일 확률이 높다. 한 마디로 산토끼가 아니라 집토끼이다.

월드컵공원과 달리 천적이 없는 고립된 공원이라면 토끼는 왕성하게 번식한다. 늘어난 개체수가 공원을 황폐화해 골머리를 썩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동물권 단체에서 중성화수술 이후 다시 공원에 방사하고, 먹이를 챙기고, 입양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생명을 싼값에 사고파는 행위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입양 결정에 있다. 장 보러 간 마트에서 단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2만 원에 토끼를 구입하거나, 습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입양을 결정하다 보니 관리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쉽게 유기한다. 게다가 집토끼는 야생토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연 방사라는 그럴싸한 구실을 붙이기까지 한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바람대로 집토끼가 우리나라 야생에 잘 적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집토끼와 야생 멧토끼는 유전 형질이 다른 종이다. 집토끼는 굴토끼(rabbit)라 불리는 종이 개량된 것으로 스페인·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가 고향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굴토끼는 굴을 파서 은신하고 새끼를 키운다. 혼자 사는 멧토끼와 달리 무리생활을 하며, 사는 영역에 대한 집착도 강하다. 굴토끼가 영국에 유입되고 늘어나며 원래 살던 멧토끼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보자면, 같은 토끼이지만 다른 두 종이 야생에서 함께 살 가능성은 매우 낮다.긴 귀를 가진 생김새와 깡총깡총 뛰는 모양새까지. 토끼는 아이가 말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되는 동물 중 하나다. 초등학교 토론 수업에선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주인공으로 여전히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 그러나 토끼의 가장 큰 위협은 이제 사람이 되었다. 공존은 보편의 가치이지만, 오직 책임으로 구현될 수 있다.

* 참고

- 최태영·최현명, 《야생동물 흔적 도감》, 돌배게, 2007.
- 토끼보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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