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생존과 멸종 사이, 우리는 지속 가능한가
[녹색연합 기고] 생존과 멸종 사이, 우리는 지속 가능한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06.10 00:10
  • 수정 2021.09.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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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녹색연합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을 방문한 지 벌써 10년도 훨씬 지났다. 세계적인 멸종위기 야생동물 중 하나인 오랑우탄을 보호하는 현지 단체에 한국에서 모은 후원금을 전달하고, 서식지 보호 상황을 살핀다는 이유였다. 오랑우탄의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요인은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열대우림에 불을 지르는 일이었다. 그슬린 땅 위에 오토바이로 수 분간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로 팜 농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열대 숲에 살던 야생동물들은 어디로 밀려났을까. 그나마 국립공원이 가까스로 완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랑우탄은 불을 피해 풍요로운 낮은 지대 숲에서 고지대로 밀려났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팜 새순을 따먹으러 농장으로 내려왔다가 인부가 쏜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현장에서 죽은 어미 가슴팍에 붙어 있던 새끼 오랑우탄을 구해 온 모습을 보았고, 현지 활동가에게서 불타죽은 오랑우탄과 동물이 많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때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지속 가능한 팜유 생산을 위한 협의체(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RSPO)였다. RSPO를 통한 인증은 환경을 보호하며 팜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으로 투명성, 법령 이행, 책임 경영, 환경 책임과 생물 다양성 보존, 지역사회 책임, 책임 개발, 지속적인 개선 등을 원칙으로 둔다. 문제는 15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인증이 면죄부가 되어 지금의 지구 환경위기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로막는 ‘포장’이 됐다는 것이다.

세계산림감시(www.globalforestwatch.org)를 살펴보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20년 동안 인도네시아 숲의 17%가 꾸준히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보전 가치가 높은 열대 숲(일차림)은 10%가 사라졌으며, 19기가톤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린피스가 발표한 ‘Burning down the house(2019)’에 따르면 2019년에도 세계적인 기업들의 팜유 생산을 위한 방화는 끊임없이 이뤄졌다. 숲에 불을 지른 기업들의 ESG 평가 등급*은 대체로 우수하다. RSPO 인증의 힘을 빌려 ‘환경을 지키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빠르게 선언한 덕택이다. 소비자에게 ‘지구를 지키는 착한 이미지’를 심어줬지만, 환경위기를 늦출 전환이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 생물 다양성 보존 등 지구 환경문제 해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최근 ESG 평가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환경문제에 있어서 협력을 문의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기업이 지구 환경문제의 해결 주체로서 역할을 하는 과정이라면 참으로 고무적인 행보다. 그러나 일회성 이벤트 같은 캠페인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100마리가 200마리가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탄소배출권으로 사고판 탄소가 숫자놀음일 뿐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ESG의 원래 의미가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성과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대다수의 협력은 지나치게 재무적이고, 가시적 성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해결 과정을 촘촘히 설계하기보다 비용감축이나 잠재고객 서비스가 협력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멸종 저항’이나 ‘기후 파업’ 같은 시민들의 기후위기 캠페인이 ‘우리는 살고 싶다’는 인류의 생존권 문제를 내걸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느낌마저 든다. 환경문제 해결은 ESG 인증을 잘 받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전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혁신과 사회혁신이 다르듯,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다르다. 우리의 지속 가능의 방향은 투자인가, 지구인가.

* ESG: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기업의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의 투명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하다는 기업 가치를 의미한다. 주로 지속 가능 투자의 관점에서 비재무적 평가지표가 활용된다.

* 참고문헌: 《행동주의 기업》(2021), 서진석. 도서출판 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