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가스공장 1유로 대여로 시작된 시민 문화 마을
[녹색연합 기고] 가스공장 1유로 대여로 시작된 시민 문화 마을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1.07 01:47
  • 수정 2022.12.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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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산업 유산과 지역 활성화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

‘로컬비’는 ‘아산 프론티어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다. 로컬비팀은 아산나눔재단의 지원의 받아 지역소멸 문제의 대안사례를 만들어보자는 포부를 안고 ‘산업 유산의 재활용과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유럽 연수를 다녀왔다. 글쓴이는 앞으로 3회 동안 로컬비의 여정을 따라가며, 한 시대를 이끈 유럽 산업시설이 그 쓰임을 다한 이후 지역 재생에 어떻게 새롭게 기여하고 있는지 문화와 환경의 관점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의 상징 같은 가스저장소(gas holder) 공연장, 대중 가수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 로컬비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의 상징 같은 가스저장소(gas holder) 공연장, 대중 가수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 로컬비

한 세기 동안 격동의 시대를 이끈 산업 유산이 재활용된 후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한다는 사례는 온라인과 책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재활용 유산에 지역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겼는지, 시민들은 어떤 가치에 주목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었을 뿐 건축학도도, 도시 계획자도 아니었기에 건물보다 전체 공간의 쓰임과 그것에 담긴 가치에 주목해야 했다. 과거 가스공장이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을 두고 어떤 이는 ‘온갖 힙한 것들의 집합체’로 표현했다. 고리타분할 법한 산업 유물에 누가, 어떻게 창의성 넘치는 상상력을 불어 넣은 것일까.

베스터 가스공장은 19세기 후반 도시의 가스등에 석탄가스를 공급하는 시설이었다. 천연가스가 보편화되자 가스공장은 1967년 문을 닫았다. 유럽의 아름다운 유적지 같은 붉은 벽돌 건물의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4만 3,000여 평에 달하는 부지는 기름·타르 등으로 곳곳이 오염된 상태였다. 석면 같은 발암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부만 창고로 사용되었을 뿐, 베스터 가스공장은 정화 없이 20년 가깝게 오염시설로 방치되었다.

시민들과 긴 논의 끝에 암스테르담시(市)는 이곳을 시민을 위한 문화공원으로 만들기로 한다. 장기적인 정화 계획을 세우고 오염원을 제거해갔다. 토양오염 정화를 마무리할 때 즘 공장은 공원의 모습을 갖췄다. 19세기의 유산과 같은 건물은 보수를 최소화해 그대로 재활용했다. 오염정화와 동시에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물은 지역 문화예술가들에게 작업장과 전시장으로 1유로에 저렴하게 임대됐다. 문화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버려진 공간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고, 오늘날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시민의 참여, 문화예술가 간 협업으로 가스공장(gas factory)이 문화마을(culture village)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암스테르담시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한다. 시는 2년 넘게 협의해온 부동산 투자·개발 회사에 건물 소유권을 이전한다. 협약을 통해 역사적 건물의 보수를 책임지도록 했고, 어떤 경우라도 문화적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을 뒀다. 다른 투자사에 매각하더라도 이 원칙은 적용되도록 했다. 또 투자금은 건물 임대 수익에서 회수하도록 했지만, 임대료는 입주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올리게 했다. 투기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게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부동산 투자·개발사는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을 개발할 때 문화예술 종사자가 많은 암스테르담의 특성을 고려했다.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은 도시의 브랜드가 됐다. 주변 지역의 문화적, 공간적 가치도 덩달아 올랐다. 주변 지역 활성화에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게 지금 운영사의 설명이다.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 측은 젊은 층 유입의 필수조건으로 문화예술 분야 접목을 이야기한다. 또 공원을 일회성 축제 같은 이벤트 공간으로만 활용하기보다 먹고, 자고, 쉬고, 소비하는 모든 일상 활동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곳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자 시민들의 쉼터였다. 어린이의 놀이 공간이면서 어른의 문화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전시 관람, 식사와 티타임, 조깅과 요가 등 다양한 일상 활동이 베스터 가스 문화공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시민이 풍요로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가스공장에서 문화마을로의 완벽한 전환, 역사적 가치를 지키며 지역의 핵심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었다.

현재 암스테르담시는 공원의 땅을 비롯한 공간을 소유하고, 운영사는 건물 소유권을 갖고 있다. 시와 운영사는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특히 203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다양한 환경 정책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공원 내 조명은 모두 에너지 소비가 적은 LED 등으로 교체하고, 건물은 단열 공사로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방문객을 위한 호텔은 로컬프드와 유기농 식자재 사용은 물론 100% 친환경 에너지로 자립해 운영한다. 가스저장고(gas holder)였던 공연장 지붕에는 주민참여형 태양광 발전 시설을 들였다. 플라스틱 프리, 에너지 절약 등을 중요한 계약 조건으로 내건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입주자는 물론 외부 이벤트 파트너에게도 적용했다. 이 시민을 위한 문화공원은 지구를 위한 친환경 공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금 비껴간 이야기지만, 렌터카로 암스테르담을 다니려면 주차는 매일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다. 주차가 가능한 시내 숙소는 너무 비싸다. 숙박비를 아끼려 외곽에 저렴한 숙소를 잡더라도 시내로 들어오면 비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자전거 천국인데다, 좁은 도로를 트램과 엉켜 다니느라 운전도 만만치 않다. 도시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암스테르담시는 ‘P+R(Park and Riding)’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도시 외곽의 대형 주차장에 하루 1유로만 내고 자가용을 주차한 뒤, 버스·트램 등 대중교통으로 시내를 다녀오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스페인의 차 없는 도시인 ‘폰테베드라’도 비슷한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고 보행자 중심 도시를 만들었다. 서울처럼 외곽과 도심 간 구별이 없는 곳에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도 기후위기를 늦출 대안으로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중심 정책이 더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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