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
[녹색연합 기고]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7.07 07:20
  • 수정 2022.07.0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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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녹색연합
지리산 구상나무 군락에서 잎사귀가 타들어 가듯 죽는 현상이 관찰됐다. ⓒ 녹색연합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10만 년간 지속된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의 일이다. 긴 시간 추위에 적응해 진화한 지구 위 생명들에게 간빙기의 온난함은 생존과 멸종의 이정표였다. 매머드, 큰 사슴 등 네발짐승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추운 곳으로 이동했고,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차근차근 지구 위에서 사라졌다. 뿌리를 땅에 박고 사는 나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온이 낮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점점 물러나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았다. 구상나무 같은 늘 푸른 바늘잎나무는 그렇게 빙하기 다음의 가혹한 기후 조건을 견뎌냈다. 

기어이 살아남은 높은 산의 늘 푸른 바늘잎나무들은 다시 지구온난화라는 벅찬 적을 만났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이 1만 년 전과 판도가 달라진 재앙이다. 2013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기후변화로 사라질 멸종위기종으로 구상나무의 멸종 위험도를 상향 조정했다. 우리나라에 그 재앙의 증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서 해발 1,200미터 이상 아고산대 지역의 구상나무 군락에서 잎사귀가 타들어 가듯이 죽는 현상이 관찰됐다. 그 생존의 사투는 길지도 않았다. 안쪽부터 푸른 잎이 붉게 고사되기 시작하면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허연 기둥과 가지만 남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집단 고사지역의 경우 지난 10년간 1제곱킬로미터당 연평균 300그루가 고사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범위도 속속 넓어졌다. 덕유산보다 위도가 높은 소백산, 오대산, 발왕산, 함백산, 태백산에 이르기까지 구상나무와 똑닮은 분비나무가 같은 증상으로 떼죽음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가문비나무, 전나무, 눈잣나무 상황도 매한가지다. 조사를 위해 들어간 나무 무덤 같은 숲은 스산하고 괴괴한 기운마저 뿜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이르자 산림청은 2016년 부랴부랴 고산지역 칩엽수종 7종(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눈잣나무, 눈측백, 눈향나무)을 중점 보전대상으로 선정하고, 멸종위기 고산지역 침엽수 보전과 복원 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겨울 가뭄, 봄 더위 같은 외부 환경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사의 근본 원인임을 인정하면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의 수순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고사 현상을 자연스러운 숲의 갱신 과정으로 보기도 하고, 작은 설치류에 의한 가해를 밝히기도 하고, 높은 밀도로 인한 나무 사이 경쟁을 가능성으로 꼽기도 한다. 이 모든 원인은 함께 작용해 위기를 한층 강화시킬 순 있다. 분명한 것은 바늘잎나무가 사는 해발 1,000미터 이상 지역은 비와 눈,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으로 빛, 토양, 수분 등의 생육 조건에 기후가 가장 큰 영향 요인임은 변함이 없다. 바늘잎나무는 바로 기후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고,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종이다.

ⓒ 녹색연합
녹색연합이 시민과 함께 덕유산 구상나무 현장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 녹색연합

몇 년 전부터 녹색연합은 위기를 먼저 알아채고자 하는 시민들과 함께 ‘시민과학’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바늘잎나무 고사 현장 모니터링하고 있다. 생태조사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여기기 쉬우나 간단한 교육만으로도 바늘잎나무의 상태를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하고 분포와 확장을 알 수 있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제주 돌고래의 출몰지역과 계절을 SNS 목격담으로 살펴본 결과 연구자들의 현장 조사 정량화 유형과 일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심코 찍은 사진 한 장과 해시태그도 중요한 시민과학 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규모나 특징 같은 세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연구자 1인이 직접 현장에서 조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와 사진 자료를 얻는 강점이 있다. 더 나아가 돌고래와 공존을 위한 바다 생태관광 가이드를 제안할 근거로는 손색이 없는 자료다. 

바늘잎나무 역시 목격하고, 관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어떤 첨단 기술보다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증거로 우리 삶에서 쓰일 수 있다. 판도가 달라진 재앙이 두려운 이유는 앞으로의 자연재난은 생물종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멸종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일어날 것이고, 회복의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바늘잎나무를 기후위기와 멸종으로부터 지킬 마법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높은 산 바늘잎나무처럼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삶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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