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설악산과 야생의 권리
[녹색연합 기고] 설악산과 야생의 권리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1.03 18:02
  • 수정 2023.11.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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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지리산 이음이 주최한 2023년 지리산포럼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연권리 선언문’을 작성해 공유했다. ⓒ 녹색연합

강원도는 1982년부터 설악산에 두 번째 케이블카를 설치하길 원했다. 속초에 이미 자연공원법을 만들기 전부터 들어선 권금성 케이블카가 있었지만,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바다를 볼 수 있는 알프스’ 같은 관광시설을 만들고 싶어 했다. 양양군은 1990년대 중반 설악산 케이블카 추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이웃한 지역에서 통 크게 양보하는 모양새로 양양 오색케이블카 건설이란 강원도민의 숙원은 실제가 되었다. 불법과 거짓으로 얼룩진 환경영향평가 문제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시도와 부결을 반복하다 환경부는 올해 2월 27일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조건부 동의로 승낙했다. 뒤이어 국립공원공단도 사업 시행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불필요한 개발을 제어하고,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법으로 정해 쥐여 준 규제 권한을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이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결국 설악산과 국립공원 모두 위기에 빠진 상태다.

국립공원과 천연보호구역 같은 보호지역은 근거 법률에 따라 야생 서식지를 지키고, 무분별한 개발을 제한해 자연유산으로 보존하자고 약속한 땅이다. 그러나 개발 사업에 대해 우리의 환경법은 보호구역의 목적에 입각한 입지의 적절성보다 어떤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게다가 이익의 주체에 사람만 고려하니 환경 개발은 정쟁 도구로 둔갑하기 일쑤다. 가장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은 보호지역에 살고 있는 야생 동식물이지만, 그들은 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당사자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2018년 오색케이블카 사업 예정 구간에 살고 있는 산양 28마리도 후견인을 통해 생존을 위해 케이블카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패소해 상대측 문화재청과 양양군의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내야 했다.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의 생존 권리를 지키는 법적 다툼은 큰 모순을 확인시켜줬다.

첫째, 우리 법은 소송 당사자의 이익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정작 산양의 이익은 배제했다. 산양의 이익은 곧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 한 곳에서 세대를 이어 머물러 사는 산양의 식이·분변 활동 등은 숲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명다양성재단의 김산하 박사는 숲의 식물은 물론 균류와 야생동물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한 종의 멸종은 기후상과 토양의 순환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위기에서 확인했듯 지구를 공유한 인간과 동물이 상호 생존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에서 산양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결국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다. 겨우 국토의 7%에 불과하지만 국립공원은 어떤 이유로도 자연보호를 최우선에 두어야 하는 지역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동물권이 문화와 경제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도 그것이 비인간 동물이나 야생의 권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법원에서 동물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06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당시 꼬리치레도롱뇽의 소송에서도, 2007년 충북 충주시 도로 확장·포장 공사 때 황금박쥐의 소송에서도 법원은 이들 야생동물이 당사자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해 판단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산양을 원고로 세운 설악산 케이블카 소송의 경우 1심 재판은 열렸지만, 그마저도 동물 권리에 대한 법원의 인식 변화 때문은 아니다. 3심까지 필요한 소송비용을 미리 맡겨두고 시작하라는 법원의 담보제공명령에 따라 원고 측에서 930만 원을 미리 냈기 때문이다. 당시 산양 쪽 변호인은 ‘100여 년 전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법인 회사의 소송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던 시기도 있었다’는 것을 예로 들며, 재판에서도 환경이나 자연물이 인간의 이익에 수반하는 존재로 본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정책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언제나 변화를 먼저 알아챈 자들의 몫이다.

지금 국회에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포함한 민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또 제주에서는 멸종위기의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 논의가 본격화하며 자연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에콰도르 헌법에 규정된 자연의 권리처럼 존재 자체로써 생명이 존중받고, 순환과 회복될 권리가 우리 법에서도 보장되어 산양이 야생의 권리를 법정에서 당당히 주장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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