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그을린 숲의 야생동물은 어디로 갔을까
[녹색연합 기고] 그을린 숲의 야생동물은 어디로 갔을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5.09 19:21
  • 수정 2022.05.0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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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산불이 진화된 울진 삼척의 숲  ⓒ 녹색연합
산불이 진화된 울진 삼척의 숲 ⓒ 녹색연합

화마가 휩쓸고 간 지 두 달, 그을린 숲은 여전히 탄내가 그득했다. 나무 밑동을 따라 바짝 기어 타들어 간 불은 땅 위에 덮인 모든 것을 태웠고, 포슬포슬 잿더미 같은 흙바닥과 타다만 기둥만 남겼다. 안타까운 탄식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지난 3월 4일 발생한 울진·삼척 지역의 산불은 서울시 3분의 1에 해당하는 숲 2만 923헥타르(ha)를 태우고 무려 213시간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6년 이후 단일지역으로는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로 기록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2000년 동해안 고성 산불, 고찰 낙산사를 태웠던 2005년 양양 산불, 2019년 동해안 산불보다 더 오래 지속된 대형 산불이었다. 게다가 불길이 한울 핵발전소, LNG 비축 기지 가까이 퍼지면서 더 큰 피해가 날까 봐 가슴 졸이며 진화 상황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번 산불이 덮친 곳은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의 행정구역 경계지를 중심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위치한다. 이번 산불로 야생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지인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약 3,988헥타르(ha)가 탔다. 축구장으로 무려 5,700여 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산림 내 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보호‧관리가 필요해 산림청장이 지정한 곳이다. 국내 보호구역으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이용 규제를 받는다.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보호림으로 지켜온 대경목(줄기 가슴높이 지름이 30cm 이상인 큰 나무) 금강소나무의 최대 군락지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이자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종 꼬리진달래,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산양의 집단 서식지이며,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 삵, 담비, 하늘다람쥐, 맹꽁이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기록된 곳이다. 더불어 오래된 자연숲에서 산다고 알려진 희귀 야생조류 까막딱따구리는 물론 올빼미, 소쩍새, 붉은배새매, 말똥가리 같은 국제적인 멸종위기 종들이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산양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100마리 이상 사는 집단서식지로는 DMZ 접경지역, 설악산 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그 주변 지역이 유일하다. 이곳은 해발 700미터 이상의 험준한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이 형성돼 산양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았던 삼척시 가곡면 용소골 일대는 가장 많은 산양 서식 흔적이 발견된 주요 서식지다.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서식하는 예쁜 산양. 산양은 1968년부터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됐다. ⓒ 녹색연합

전문가들은 산양과 같은 네발짐승들은 직접적인 불길을 피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해마다 새순이 돋기 전, 아사 직전의 산양이 가장 많이 구조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같은 시기 발생한 대형 산불이 산양 생존의 어려움을 더 가중시킬 것은 분명하다.

재난 현장이 다시 생명력을 갖춘 숲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복원의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국내 관련 법률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복원 기준, 생물다양성 협약 나고야 의정서 등에 따라 5가지의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첫째, 금강소나무를 포함한 식물의 종류, 산양과 같은 포유류는 물론 조류, 양서파충류,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훼손과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만 살고 있는 야생동식물, 깃대종*에 대한 서식 정보도 이 조사로 파악할 수 있다.
*깃대종(Flagship Species) : 특정 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로서 사람들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종.

둘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위상에 맞게 회복되도록 생물다양성 증대가 복원의 핵심 원칙이 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국제사회가 합의한 생물다양성 유지와 증진이 산불피해 지역의 복원 기준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셋째, 원래 서식하는 깃대종 중심의 복원 원칙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정확한 조사가 선행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넷째, 복원은 자연과 숲의 스스로의 치유 회복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도와야 한다. 복원을 위한 인위적인 개입이 다른 종의 서식지와 생물종의 회복에서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숲이 회복이 되는 과정을 꾸준히,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숲이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를 갖추기 위해 최소 30년이 필요하다. 장기 모니터링은 숲 생태 변화를 통해 복원의 성과와 한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그을린 숲에도 봄이 오고 있다. 잿더미에서 제비꽃이 피고, 멧토끼와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이 희망을 품게 한다. 복원을 위한 원칙이 산양의 다음 세대를 위한 운영이라 생각하니 기후위기 생존을 위한 우리의 선택지와 묘하게 겹친다. 재난 극복을 위한 생존의 몸부림에 울진의 숲도, 산양도 함께하는 중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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