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위험과 오염 사이
[녹색연합 기고] 위험과 오염 사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2.07 12:00
  • 수정 2022.02.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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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미카엘 마센(Michael Madsen)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Into Eternity)>(2010)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기 전, 한 고등학교 축제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이 야기한 해양 오염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학생들 투표로 환경단체를 선택해 해마다 바자회 수익을 후원하는 문화를 가진 학교였다. 사회과 교사들이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별도의 환경 수업을 하기도 하는 학교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핵발전소 전기의 불편하고 위험한 진실에 대한 캠페인 기획서를 정리해 보냈다. 학교에서도 대체로 핵발전소 문제는 정치 이슈로 치부돼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당부 아닌 당부만 받아온 터라 환경문제 관심의 깊이와 너비가 다르다는 감탄도 기획서에 잊지 않았다.

사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 해양 오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태평양 주변국 모두 주시하는 문제다. 지난해 일본은 사고 후 보관 중인 방사성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해저터널을 통해 바다로 방출할 계획을 본격적으로 밝혀 국제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도쿄전력은 오염수의 방사선 영향평가 결과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경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발전소가 완전히 폐로되기 전까지 오염수는 끊임없이 발생될 것이며, 방사성 물질은 그대로 바다에 흘러들어 바다생물 방사능 피폭 피해는 물론 여러 나라와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에게도 위협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위험은 불가역적이기도 하다.

기후재난이 심각해질수록 후쿠시마와 같은 핵발전 사고의 위험성도 커진다.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밀집된 동해지역은 활성단층으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태풍과 폭우로 6기 발전소의 전원 상실 사고도 있었다. 게다가 세계 최대 원전 밀집국가이면서 고리-신고리 핵발전소 반경 30Km에는 무려 380만 명의 부산‧울산‧경남 시민이 살고 있는 인구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대피령이 내려진 30Km 내 주민이 약 17만 명인 것을 고려할 때 잠재적 위험성은 비교 불가능하다.

유사한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용이 끝난 핵연료, 고준위 핵폐기물의 최종 처분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시 저장 시설은 차례로 포화를 앞두고 있는데 최종처분장을 둘러싼 갈등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지구 위 핵발전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국가 중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를 선정했거나 건설중인 곳은 핀란드와 스웨덴뿐이다. 그들이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40~50년을 쓴 선례를 볼 때 숙의와 공론의 과정은 정치 생명보다 긴 방향과 계획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중단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의 비호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파국의 단초로 느껴진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아담 맥케이, 2021)에선 혜성충돌로 공멸하게 될 위기를 이용하는 다양한 사회주체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표심에 급급한 정치, 돈벌이를 궁리하는 기업, 멸종을 포장하는 언론 그리고 기술 만능주의와 민주적 공론의 부재. 위기의 진실은 최후의 순간에 모두의 침묵으로 증명되었다. 처음 마주한 진실의 불편함은 공멸의 징후이자 경고였다.

결론적으로 학교 내 탈핵 캠페인은 진행하지 못했다. 원자력 공학자를 미래의 꿈으로 선택한 학생들이 있어 핵발전의 위험성에 치우친 기획을 수용하기 어려우니 중립적인 해양오염 문제만 다뤄달라는 학교 측의 조심스러운 변경 제안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유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했고, 최종적으로 제안은 거절했다. 위험의 경고와 전환의 대안을 토론할 수 없다면 이것 또한 회피의 민낯이었다. 이 위험과 오염 사이의 불편함은 원자력진흥위원회가 내세운 슬로건, ‘미래세대까지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로서의 원자력’과 묘하게 닮아있다. 방사성 물질을 ‘위험’이 아니라 ‘오염’으로만 둔갑시키는 낙관은 핵기술과 과학으로 기후재앙을 늦출 탄소중립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대통령 후보들의 기후정책과도 다르지 않다.

다시 비슷한 제안을 받는다면 탈핵이니 핵발전의 진실 같은 불편한 말은 쏙 빼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람이 모두 떠나고,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살아내야 할 생명의 사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자고 할 참이다. 천만다행은 가상이고, 핵발전은 절체절명의 현실임을 깨닫게 되길 바라며.

감춰진 곳, 핀란드 말로 온칼로(Onkalo). 미카엘 마센(Michael Madsen)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Into Eternity)>(2010)은 핀란드에서 건설 중인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에 대한 이야기다. 핵폐기물이 생명체에 영향이 없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최소 10만 년. 이 천문학적 시간 동안 핵폐기물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원한 봉인(Into Eternity)>(2010)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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