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
[녹색연합 기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12.08 19:03
  • 수정 2021.12.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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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녹색연합

소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김기창, 2021. 민음사)은 애써 희망을 찾아야 하는 미래 도시의 이야기다. 회의감과 불안감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그리는 저자의 묘사는 잔혹할 만큼 지금의 현실과 몹시 닮았다. 심지어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기존의 형태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다. 알고 있었지만 머뭇거렸다. 거대한 변환이 필요한 일이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세계는 동일한 정책에 합의해야 했고, 각 국가는 그에 맞춰 법을 바꿔야 했으며, 사회는 법의 실행을 감시하고, 개인은 각성과 협력을 해야 했다. 개인의 각성과 협력이 미비하면 실현 가능한 정책 마련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어느 단위에서든 이기심을 부리는 순간, 최종 합의는 기약없이 미뤄졌고, 기존에 합의된 정책 역시 좌초를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평균기온이 54도까지 올랐다. 체감온도는 74도를 넘었다.” -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중에서

소설이 아닌 현실을 이야기해보자. 26번째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Conference of the Parties)가 11월 1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마무리됐다. 당사국들은 한 차례 폐회를 연기하면서까지 진통 끝에 합의문을 마련했다. 해당 합의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석탄발전 ‘폐기’가 아닌 ‘단계적 감축’으로 조정됐다며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화석연료의 종말을 선언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도 있다. 다만 의견 차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합의문에 담긴 내용이 과연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온도 1.5도씨 상승’을 막을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COP26 합의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이번 COP26가 중요했던 이유는 국가별로 자발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고려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발표하는 공식적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 세계 기후과학자들이 ‘2010년 대비 45% 감축’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권고를 내놓았기에 더욱 주목했어야 했다.

그런데 국가별로 제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취합해 보니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기는커녕 2010년 대비 13.7%가 늘어나는 황당한 결과를 마주했다. 각국의 NDC가 현행을 유지한다면 지구온도는 2.4도씨 이상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경제 득실을 우선한 합의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부끄러운 목표를 제출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들의 책임있는 모습은 실종됐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하자는 의지는 숫자합의와 자발성의 함정에 발목을 잡혔다.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탄소사회의 종말》(21세기북스, 2020)의 저자, 인권학자 조효제는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과 그 해결을 가로막는 것들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더 심화된다고 이야기한다.

COP26에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반신을 바닷물에 담근 채 연설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그가 연설했던 곳도 예전에는 육지였던 곳으로 알려졌다. 코페 외무장관은 “우리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수몰되고 있다”며 당사국들의 과감한 조치를 호소했다. 그 모습을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약자의 구호 요청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COP26의 한계 중 하나는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국가들이 기후변화로 손실과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과 남반구 국가들에게 마땅히 지원돼야 할 보상이 차관 형태의 대출로 합의된 것이다.

1995년 베를린에서 COP 1차 회의가 성사된 이후 국제사회는 무려 26년 동안이나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해마다 합의했다. 그러나 기후문제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드러났고, 국제사회는 결정적인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때마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합의를 미루고 지연됐다. COP26 역시 온실가스감축목표를 1년 뒤 상향해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숙제를 한 해 더 미뤘을 뿐이다.

이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국제적 책임을 고려해 새로 수립해야 한다. 내년에 시작될 차기 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를 임기로 보낼 것이다. 국제법으로 합의한 약속을 국내에서 제도로 갖추고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온실가스 최대 배출 주범의 책임을 묻고 전면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 것 등 기후위기 시대의 과제는 개인의 각성과 요구의 과제가 돼야 한다. 세계 시민사회가 내건 기후행동 슬로건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펼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의 자세한 현장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녹색연합 유튜브 ‘기후톡톡 COP26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