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우리나라 숲에 호랑이가 살게 된다면
[녹색연합 기고] 우리나라 숲에 호랑이가 살게 된다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1.07 09:30
  • 수정 2022.01.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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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호랑이해가 시작됐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개는 한반도 등줄기 백두대간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용맹과 신성한 신앙으로도 표현돼왔다. 우리에게 호랑이는 동화 속에서 떡 하나와 목숨을 거래하던 호환(虎患)이나 육식동물의 잔인함보다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의 친근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고양이과 야생동물, 호랑이의 사연을 대신 풀어본다.

우리나라 호랑이는 우리나라와 러시아 연해주, 만주 지방에 걸쳐 살아 아무르 호랑이라 불린다. 현재 러시아 지역에 약 400~500마리가 남아있다. 아무르 호랑이는 더운 나라 호랑이보다 덩치도 크고, 선명한 줄무늬의 멋진 겨울털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호랑이의 마지막 기록은 1920년대 남한에서 포획된 것이다. 그 후 우리 숲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멸종의 결정적인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실행된 생태계 파괴 정책, ‘해수구제사업’ 때문이다. ‘사람과 재산에 해를 끼치는 동물(해수)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에서 호랑이의 자취를 없앴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농사를 중히 여긴 조선 초기부터 이미 호랑이와 사람의 서식지 싸움은 시작됐다. 어린 시절 비디오 테이프 앞부분에 나오던 호환은 사람의 상해만을 의미하지 않고, 경작에 쓰이던 소와 같은 가축의 상해도 해당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지방마다 호랑이와 표범 사냥을 전담하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조직을 두고, 범을 잡는 포수를 별도로 뽑아 운영했다. 조선 중기에는 해마다 호랑이와 표범을 1,000여 마리 진상한 것으로 추정할 기록이 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이후 육식 야생동물이 환영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인명사고의 빈도와 무관하게 호랑이는 해수의 오명을 벗지 못한 동물이었다. 현지 활동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아무르 호랑이의 가장 큰 생존 위협은 러시아와 중국 국경에서 벌어지는 밀렵과 밀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통제할 수 있었던 야생동물 보호정책이 자본주의가 들어서며 통제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아직 500마리나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같은 큰 고양이과 동물로 범으로 불리던 아무르 표범은 호랑이보다 체격이 작고 개체수가 많아 1970년대까지도 드물게 포획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조금 늦게 사라졌을 뿐, 희귀하고 아름다운 매화 무늬 가죽이 다양한 쓰임새를 가져 긴 시간 수탈의 표적이 돼왔다. 조선총독부 공식 기록으로만 따져도 일제강점기 18년 동안 포획된 표범이 600마리나 되고, 1930년대에는 1년에 60마리씩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지린성 지역에 50여 마리가 남아 있다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겨울털을 가진 우리나라 표범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우리 숲에 호랑이와 표범이 다시 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이 상상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현실적인 한계를 넘어야 한다. 

첫째, 남한 지역에 호랑이가 살만 한 땅이 있는가. 가장 넓은 육상 국립공원인 지리산 국립공원의 총 면적이 약 483㎢인데, 이마저도 도로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중 면적 50㎢ 이상인 지역이 단 1곳, 40~50㎢인 지역도 1곳에 불과하다. 아무르 호랑이의 행동반경이 400~1,000㎢인 것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 겨우 한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남한은 남북을 가르는 철책으로 분단돼 단절된 섬이나 다름없다. 지도상의 경계로만 국경이 존재하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처럼 야생동물의 자연스러운 이동과 복원이 불가능한 조건이다. 대형 육식동물의 복원은 북한과 동북아 지역을 배제하고 고려하기 어렵다.

두 번째 한계는 사회적 설득과 합의의 문제다. 대형 육식동물이 늘 숲에 존재했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는 수십 년을 호랑이, 표범, 늑대를 동물원에서만 봐 오지 않았는가. 호랑이, 표범, 늑대 같은 동화 속 육식동물은 모두 사라졌다. 어느 야생동물 연구자의 말처럼 우리 숲에는 긴장감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 

대형 육식동물들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숲에 들어가는 마음가짐과 원칙은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편히 즐기는 취미로 등산을 꼽는다. 대형 육식동물이 숲 속으로 들어온다고 했을 때 등산이라는 취미는 불편을 넘어 생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나라 숲에서 맨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포유 야생동물은 20여 종 남짓이다. 삵, 너구리, 반달가슴곰, 오소리, 수달, 담비, 족제비, 쇠족제비, 산양, 노루, 고라니, 사향노루, 멧돼지, 멧토끼, 청솔모, 다람쥐, 하늘다람쥐, 집쥐, 생쥐, 멧밭쥐, 뉴트리아, 고슴도치 정도이다. 특수한 서식지, 야행성을 고려하면 겨우 17종 정도를 볼 수 있다. 볼 수 있다는 것이지 보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보기 힘든 야생동물은 동화 속 호랑이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광고 속 북극곰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소풍을 간 공원에서 청솔모가 쪼르르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순간을 떠올려 보자.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과 호들갑스러운 감탄! 이것이 바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야생동물 공존의 권리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다. 호랑이해, 숲에서 맨 눈으로 야생동물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모두가 한 번쯤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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