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녹색연합 기고]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9.06 13:11
  • 수정 2022.09.13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의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기후정의행진 홍보에 문소리 배우가 함께하고 있다.  
기후정의행진 홍보에 문소리 배우가 함께하고 있다.  

3년 전 가을을 기억합니다. 2019년 9월, 절박한 마음에 기후위기를 외치며 수많은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였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기후대중운동이 등장한 것입니다. 연이은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후위기가 초래한 또 다른 현실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세계 곳곳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난은 현실화되고 또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간  국회와 지자체들이 기후위기비상선언을 하고,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했고,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내세우며 녹색 상품을 앞다퉈 내놓았습니다. 기후위기가 익숙한 말이 되고, 정부와 기업이 앞장서 변화를 일구는 것 같았던 지난 3년입니다. 하지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해결되고 있습니까? 세상은 달라지고 있습니까? 기후위기를 겪는 세계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까? 

코로나19로 줄어들었던 온실가스는 다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외치며 변화하는 것처럼 보였던 세상은 다시 전처럼 굴러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삶을 위한 생산과 소비로의 전환이 아니라, 기업의 새로운 돈벌이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온갖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강요하는 해법 속에서, 우리는 ‘녹색 소비자’가 되거나 절약과 금욕의 삶을 선택하는 ‘개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책임감을 죄책감으로 바꿔버리는 ‘체제’에 맞선 ‘우리 모두’의 싸움이 절실합니다. 

기후위기는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화석연료 때문만이 아닙니다. 화석연료는 자연과 인간을 희생시켜 더 많은 상품을 만들고 팔아치워 이윤을 쌓아야만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과 자본이 필연적으로 선택한 에너지일 따름입니다. 이러한 권력과 자본의 폭력 앞에서 농촌과 자연은 생명과 삶이 아닌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 기계의 부속품처럼 쓰고 버리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지역주민 등 차별받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 대한 폭력 아래 가능했습니다. 지난 수백 년간 지구적 규모로 자행된 폭력의 역사이며, 화석연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제 기후정의를 외치고 요구합시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현 체제에 맞서고, 다른 세계로의 전환을 향한 가치이자 방향타입니다. ‘체제전환’이라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어 ‘녹색성장체제’가 되고, ‘기후정의’라는 우리의 요구가 기존 권력관계 아래에서의 ‘공정’이 되는 현실을 단호히 거부합시다. ‘기후정의’는 녹색성장과 탄소중립을 빌미 삼아, 농민이 땅에서 쫓겨나고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는 현실에 맞서는 싸움입니다. ‘기후정의’는 그동안 착취당하고 억압받아온 모든 이들의 권리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가오는 9월 24일, 기후정의를 기치로 거대한 행진을 시작합시다. 세상을 이렇게 망쳐놓은 이들에게 또다시 세상을 맡길 수 없습니다. 기후정의행진으로 모인 우리가 대안이 됩시다. 기후위기 시대, 모두가 함께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합시다. 9월 24일,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하고 불평등 해결을 촉구하는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해주십시오. 9월 24일 토요일 오후 3시, 광화문 일대로 모입니다. 같이.

*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참여 제안문 전문을 옮겨 적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