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녹색연합 기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8.01 10:03
  • 수정 2023.08.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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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올해 장마는 평년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 강수량과 50명에 달하는 인명피해로 기록됐다. 산림청은 7월 한 달 동안 전국에 무려 890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산사태 피해가 가장 컸던 경북 지역에서만 사망과 실종된 이가 27명에 달한다. 서둘러 산사태 현장을 찾은 활동가가 보내온 사진에는 무자비한 재난의 실체가 담겼다. 애당초 필사의 탈출이란 불가능했다. 정부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사고 이후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정하고 관리해왔지만 극한의 폭우를 대비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2020년, 최장기간 장마 속에서 발생한 산사태 대부분이 부실한 산지 관리로 인한 인재임이 드러났다. 우리는 유사한 유형의 재난이 올해도 반복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달 15일 경북 예천 은풍면 금곡리에서 벌어진 산사태의 시작점은 양수발전소의 관리를 위해 비탈을 깎아 만든 도로였다. 도로를 따라 3개 지점에서 땅이 덩어리째 내려앉았고, 산비탈을 타고 토사가 흘러내렸다. 이 작은 산사태에서 비롯한 거대한 토사류는 1.5킬로미터 아래 마을을 덮쳤다. 마을 뒷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주민 2명이 대피할 틈도 없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산에 건설된 관리도로의 물 빠짐, 즉 배수체계의 부실함을 문제로 지적했다. 관리도로가 오히려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물받이 역할을 해서 지반 침하를 불러일으켰다는 진단이다. 예천양수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관리도로의 배수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례적인 호우가 있던 만큼 자연재해로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경북 예천 은풍면 금곡리 산사태의 시작 지점은 양수발전소 관리를 위해 만든 도로이다.
경북 예천 은풍면 금곡리 산사태의 시작 지점은 양수발전소 관리를 위해 만든 도로다. ⓒ 녹색연합

자연재해 뒤에 숨어 인재의 책임에서 발뺌하려는 한수원의 태도는 20년 전 유사한 기록을 소환시킨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관통한 2002년. 산청양수발전소 송전탑 작업도로가 유실되면서 경남 산청 시천면 반천리 일대에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계곡을 따라 토사류가 쏟아지며 계곡 폭은 200미터까지 확장되었고, 골짜기는 통째로 휩쓸렸다. 누군가 평생을 일궜을 집과 농경지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한국전력에서 무리하게 연약한 급경사 지반에 송전탑 작업도로를 건설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한국전력과 중앙정부, 지방정부는 이 재난을 철저히 외면했다. 천재지변이므로 책임이 없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다, 이듬해 청와대 간담회까지 가서야 복구를 약속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공산업이란 명분으로 시작된 양수발전소 건립에 주민들은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서울이 아니라서 뒷전이냐는 주민들의 울분은 재난의 불평등한 민낯이었다.

지난해 수도권과 중부지방의 집중호우가 큰 인명피해로 이어진 뒤, 이미 우리사회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 재해‧재난을 복구하기보다 예방해야 한다는 공감을 형성한 바 있다. 취약한 대상과 지역별 맞춤형 대안이 실제로 가동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사회적 인식은 20년 전과 달라졌지만, 국가의 대응은 그대로다. 이번 경북 산사태 사고는 농촌‧산촌 지역의 긴급재난 대응 취약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돌봄을 바탕으로 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만, 띄엄띄엄 분산 거주를 하고 있어 긴급 대피에 어려움이 있었다. 주민 고령화로 인해 피해는 노인층에 집중됐다.

복구보다 예방이 우선되도록 산사태 취약 지역에 사방댐 같은 산사태 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산지 이용을 위한 인허가와 관리를 더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해가 발생했다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인명피해를 줄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도와 정밀도 높은 재난경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경보수위에 따른 대응, 대피 시 집결지, 집별 방법 등 사전 대피 계획이 수립되어 충분히 인지되어야 한다. 정보통신 매체를 통한 정확한 안내와 함께 마을 안에서 대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역할과 권한이 명확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재난은 과학적 수치나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지 않아도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다급한 일인지 알려준다. 피해 지역의 재난 이전과 이후는 ‘있다’와 ‘없다’의 차이처럼 삶이 송두리째 바뀐 세상이다. 취약한 곳에서도 안전 시스템이 작동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여름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년에 구조 대상은 없어야 한다.

이번 재난으로 돌아가신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 피해를 입은 이들의 빠른 회복과 복구에 힘쓰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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