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석탄의 일생
[녹색연합 기고] 석탄의 일생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5.08 06:20
  • 수정 2023.05.0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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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2006년 즈음, 전국의 폐석탄광산 현장 조사를 할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태백 함백산 기슭의 마을 입구. 계곡에서 흘러온 시냇물 색이 마치 밀가루를 풀어놓은 것 마냥 새하얬다. 계곡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니 어느 지점에서는 별안간 붉은색으로 변했다. 단풍보다 붉었다. 석탄을 채굴하던 갱도에서 쏟아져 나온 갱내수(坑內水)의 금속 성분에 의한 오염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눈부신 산업발전의 대가와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탄가루 위에 심은 나무, 키 낮은 지붕, 촘촘히 붙은 창문, 폐허가 된 마을. 그러나 문 닫은 탄광의 사택 마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국가의 요구로 산업 일꾼이 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현장이 폐쇄되고 나서 그 서러운 삶을 어떻게 꾸렸을까. 잠시나마 그들의 아픔을 떠올리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광산의 폐업을 불러온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은 1989년 갑작스럽게 시행되었다. 탄광도시도, 탄광업계도, 교육행정도 몰랐던 중앙 정부의 정책. 전직 광부였던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 소장은 장기적 안목으로 준비되지 않은 정책의 후과를 우리가 겪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학교는 한두 해 졸업생을 배출하다 폐광과 동시에 폐교를 맞았고, 광부 입주를 위해 건립하던 신규 사택도 결국 일반인에게 불하된 것을 보면 갑작스런 정책이었음이 틀림없다. 80년대 후반은 기름값이 하락하며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던 때였다. 비슷한 시기 독일 루르 지역의 탄광역시 정부 정책에 따라 불가피한 변모를 선택했다. 시작은 한국과 같았으나 그 과정은 달랐다. 독일은 오염정화와 생태복원, 사회정의, 산업유물 활용, 문화, 도시계획 등을 함께 고려해 30여년의 긴 시간을 두고 전환을 이끌어 냈다. 무엇보다 비슷한 산업유산이 있는 도시 간 협의체를 구성해 공동의 포괄적인 전환을 꾀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손꼽는 독일의 대표 폐탄광 졸페라인(Zollverein)은 산업유산의 활용과 창의적 디자인을 인정받아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석탄 채굴이 사라져가는 산업이라면, 석탄 소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필요한 에너지의 3분의 1을 석탄을 태워 얻는다. 기후위기가 본격화하고,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화석연료 석탄이 지목되면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커졌으나, 아직도 석탄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고 있는 상황은 혼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최근에 만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이자 발전비정규직노동조합 이태성 간사는 발전노동자의 75%가량이 기후위기를 늦출 대안으로 석탄발전소 퇴출과 에너지 전환에 동의한다고 전했다. 석탄산업합리화사업에 따른 산업 전환 과정에서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일자리와 지역침체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실행해야 한다고 이태성 간사는 강조했다.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소 59기 중에 28기가 밀집한 충남도는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위험도를 감당해야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광역지자체 차원의 정의로운 전환기금을 마련할 것이란 발표가 전환의 준비 없이 석탄발전 확대를 주도한 중앙 정부에 책임을 묻는 액션이란 걸 우리 정부만 모른다.

채굴-운송-연소-폐기에 이르는 석탄의 전 일생은 발전과 성장의 그늘, 환경오염과 지역 간 불평등, 피해의 부담 전가를 발생시켰다. 서울과 경기도는 가장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지역이지만, 석탄발전소가 없어 산업 전환의 위험도가 매우 낮다. 이 같은 지역 간 불평등은 부담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전환의 위험도가 낮다고 책임을 적게 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지 특정 지역의 소멸, 노동과 일자리 보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로 사회 안전망을 갖춘 전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발전의 1등 동력에서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전락한 석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석탄의 일생>은 투쟁기라 오해할 수 있으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국내 석탄 산업과 그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석탄 광부, 새로운 석탄발전소 건설이 지속되고 있는 강릉과 삼척 지역, 항만공사로 심각한 침식을 겪는 해변의 모습, 오랫동안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인해 건강 피해를 떠안아온 지역주민과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는 발전소노동자, 한국기업이 관계된 호주의 석탄 광산 개발에 맞서 싸우는 해외 탈석탄 운동까지 다양한 석탄의 현장들을 폭넓게 보여준다. 빚진 삶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석탄 없는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어떤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녹색연합은 전국 각지에서 <석탄의 일생> 상영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6월 1일부터 7일까지 진행되는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메가박스 성수점, 자세한 상영일정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홈페이지 참고)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석탄의 일생 예고편 보기 : https://youtu.be/FfI2SwIG2zg
녹색연합 회원가입 : https://www.greenkorea.org/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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