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도시재생의 가능성, 지역을 넘어서라
[녹색연합 기고] 도시재생의 가능성, 지역을 넘어서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1.06 18:52
  • 수정 2023.01.0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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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산업 유산과 지역 활성화③]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에프

이번에 소개할 유럽의 산업 유산 재생 사례는 화물철도 시설에서 프랑스의 창업기지로 거듭난 파리의 ‘스테이션에프’다. 글쓴이는 지난해 ‘로컬비’와 함께 유럽 연수를 다녀왔다. 한 시대를 이끈 유럽 산업시설이 그 쓰임을 다한 이후 지역 재생에 어떻게 새롭게 기여하고 있는지 문화와 환경의 관점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로컬비’는 ‘아산 프론티어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스테이션에프(STATION F) ⓒ 녹색연합

길이 400미터, 폭 80미터. 1927년에 지어진 파리 13구역 화물철도 정비창 구조물은 프랑스 창업 정책의 중심지인 ‘스테이션에프(STATION F)’로 변모했다. 입주기업 1,000개, 상주인구 3,000명의 창업기지는 특이하게도 프랑스 벤처기업 1세대인 프리통신사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확보한 공간이다. 낙후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다음 세대 창업자들이 가치를 실현할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자비에 회장의 의지가 이 공간에 반영됐다.

민간이 만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스테이션에프는 프랑스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과 맞물려 전 세계 기업들이 가장 가길 원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테이션에프가 프랑스의 이미지를 바꿨다고 생각하느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질문에 스테이션에프 상주자 86%가 그렇다고 답했을 정도다. 한때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화물철도 정비창은 어떻게 민관협력의 성공모델이자 세계적인 창업생태계를 이끄는 거점시설이 되었을까. 스테이션에프의 액셀러레이팅 기관 중 하나인 ‘크리에이티브밸리'에서 창업기업 보육 업무를 총괄하는 호지연 매니저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 낙후지역에 아무리 좋은 공간이 들어와도 결국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어렵다. 2017년 스테이션에프 초기에 어떻게 창업자들을 모을 수 있었나.

어도비나 구글 등 디지털 기반의 유명 글로벌 기업을 우선 입주시켰다. 이내 창업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코칭과 컨실팅이 이어지며 투자·지원·교육이란 창업생태계의 첫 그림이 그려졌다.

- 지금 창업기업들이 스테이션에프에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사업, 교육, 투자, 코칭, 정책 혜택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원스톱서비스가 스테이션에프 창업생태계의 핵심요소다. 외국에서 들어온 창업기업의 경우 비자 발급이 가장 큰 혜택이다. 프랑스 정부는 취업비자에 준하는 특별 창업비자를 발급한다. 정상적인 창업활동을 영위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연장할 수 있다. 게다가 해당 업무를 지원하는 라 프렌치 테크 사무국이 스테이션에프에 입주해 있어 이용도 편리하다.

- 스테이션에프의 도심재생 효과는 실제 어느 정도인가.

설립 당시 파리 13구역은 저임금 노동자의 주요 거주지로, 인프라 또한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스테이션에프가 세계최대 규모의 창업단지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유동 인구가 늘었다. 또 중앙도서관이 인근에 건축되고, 프랑스 정부 재정국이 입주하며 고소득 계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늘어난 유동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생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면서 13구역은 파리의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변모했다. 창업기업을 위한 숙박시설도 처음에는 스테이션에프 바로 옆에 조성될 예정이었지만, 인근지역 공간 활성화를 위해 시와 논의하여 조금 떨어진 지역에 건축했다. 모든 효과가 스테이션에프로부터 발생한 건 아니지만, 시설 중심 공간 재생이 아닌 지역 중심의 재생 효과로 이어지게 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 스테이션에프에서 발생하는 투자 성과와 투자로 이어지는 사업은 주로 어떤 것인가?

스테이션에프는 연평균 1,000여 개의 창업기업이 입주해있다. 50% 이상이 스테이션에프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투자를 끌어내고 있으며, 스테이션에프에서만 연간 약 250건의 사업투자가 발생한다. 최근 채식이나 탄소중립 같은 환경 분야, 도시화나 지역소멸 등 지역사회 분야, 이민자·난민·성소수자 등 소외계층 분야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스테이션에프의 창업생태계는 다양성과 유기적 연결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 스테이션에프를 ‘소통마을, 커뮤니케이션 빌리지’라고 부를 정도다.

- 도심의 낙후지역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꼽힌다. 창업거점이 아닌 도심재생의 관점에서 볼 때 스테이션에프란 공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스테이션에프는 개조 공사를 진행할 당시 뼈대를 최대한 남겨서 기존 구조물을 재활용했다. 외관은 지붕을 없애고 전면 채광창을 설치한 것이 전부이다. 재건축을 한 것이 아니기에 열차정비창으로서의 외관을 유지했고, 그로 인해 주변 경관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설 보존을 높게 평가한 프랑스 정부는 이 건축물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건물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사유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소유자가 임의로 철거·매각할 수 없게 됐다. 사회 기여 측면으로 보면 한국의 기부채납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 결국 사람이 모이고 그들을 위한 인프라가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스테이션에프가 지역사회에 공헌 또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설립 당시 13구역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스테이션에프 내에 창업기업을 위한 레스토랑 구역을 만들었다. 지금은 꽤 입소문을 타서 ‘스테이션에프는 몰라도 입주 레스토랑과 카페는 알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결국 가치 있는 거점 공간과 서비스가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였다. 유동 인구 증가는 인근지역의 인프라 발전으로 이어졌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도시정화 효과와 교통 경제 활성화는 덤이다.

- 창업이란 공간의 특정 기능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의 발전까지 가져온 것은 지역소멸의 대안으로 꽤 의미 있는 사례일 것 같다. 앞으로 스테이션에프가 어떤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는가.

스테이션에프는 초기 인큐베이팅 이후에 입주 기업의 자국 내 기여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스테이션에프에 머무는 동안 이미 네트워크·교육·고용 등으로 충분히 공헌했다고 본다. 유기적 네트워크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지역에 대한 기여보다 이곳의 창업생태계가 글로벌 기여로 연결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경매에 나온 노후 시설을 창업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강력한 의지가 마침 세계적인 스타트업 열풍과 맞물려 세계적인 장소가 됐다. 공간의 새로운 용도를 고민할 때 지역주민에 한정해 주거 시설을 짓거나 공원·박물관 등을 만들기보다, 국내 또는 세계적 관점에서 폭넓게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 인프라로 재탄생시킨다면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