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에게 반발 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노사 모두에게 반발 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7.09 18:20
  • 수정 2021.07.1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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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빠진 것 많고 한정적’ 노동현장 안전 개선되지 않을 것 비판
경영계, ‘포괄적이고 불분명’ 현장 혼란 우려도… 경총 경영계 공동건의서 제출 예정

정부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위임한 내용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내달 23일까지 입법 예고한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한다”,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등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으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고 있어 시행령 확정까지 큰 혼란이 예상된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재난참사 피해자들 입장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어떤 내용 담겼나

지난해 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으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 사망 시 1년 이상 징역, 상해(사고·질병) 시 7년 이하 징역을 부과한다. 올해 1월 26일 공포돼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9일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 제정안에는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등이 담겼다.

먼저,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 범위(제2조 제2호 다목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를 24개 질병으로 구체화했다. 급성 중독 등 급성으로 발생한 질병이면서 인과관계가 명확해 사업주 등의 예방 가능성이 높은 질병으로 선정했다. 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사업장 안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다.

법에서 말하는 중대시민재해 공중이용시설의 범위도 구체화했다. 실내공기질관리법에서 말하는 ‘다중이용시설’ 대부분을 적용하되 실내주차장, 오피스텔·주상복합, 전통시장은 제외하기로 했다.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 피해 발생 우려가 높은 주유소와 가스충전소, 놀이공원 등 종합유원시설, 준공 후 10년이 넘은 도로교량·철도교량·도로터널·철도터널도 중대시민재해 공중이용시설 범위에 포함됐다. 다만, 소상공인 사업장과 소규모 비영리시설, 교육시설, 공동주책 등은 적용 제외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도 8가지로 구체화했다. △안전보건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위험요인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업무처리절차 마련 및 이행상황 점검 △안전 및 보건 전문인력 규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수 이상 배치 △안전 인력, 시설, 장비 등 갖추기 위한 적정 예산 편성 및 집행·관리 체계 마련 △상시근로자 수 500명 이상 기업과 시공능력 상위 200위 이내 건설회사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업무 전담 조직 설립 △안전 및 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주기적 청취(연 2회, 반기 1회) △작업중지 등 대응절차 마련 후 반기 1회 이상 운영 확인·점검 △도급 시 재해예방 수급인 선정 등이다.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 등이 이수해야 하는 안전보건교육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방법 등 안전보건경영방안,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보건관계 법령의 주요 내용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교육 시간은 20시간 이내로 정했다.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의 공표’와 관련해서는 안전 및 보건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실에 대하여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사업장 명칭(본사 포함)·소재지 △발생 일시 및 장소 등과 함께 재해자 현황 △재해의 내용·원인, 의무위반 사항 △5년 내 중대산업재해 발생 여부 등을 공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표 기간은 1년이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및 업종별협회 대표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재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주요 경제단체 및 업종별협회 대표들이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재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사 모두 정부안에 반발
‘노동현장 현실 담지 못해’, ‘현장 혼란 우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노사 쟁점이 부딪히면서 노사 양측으로부터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동계는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 제정안으로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현실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직업성 질병을 급성중독에 준하는 24개 항목으로 한정한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급성중독만으로는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령 지금의 제정안만으로는 노동자가 사망하지 않는 이상 과로 등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성암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중대시민재해 공중이용시설과 관련해 “시행령 제정안에서는 법이 준용하고 있는 다른 법률의 일부 시설만을 적시하고 그 외의 시설에 적용될 여지조차 두지 않아 법이 적용되는 시설을 오히려 매우 협소하게 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위험작업의 2인1조, 과로사 근절과 안전작업을 위한 인력 확보 등 중대재해 근절의 핵심 내용이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재해예방 대책’은 시행령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하청노동자 및 특수고용노동자와 관련해서는 의견 청취, 안전보건에 관한 비용과 기간 보장만 명시하고 있어 경영계 요구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따랐다. 민주노총은 “법에서 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사업장 점검, 개선, 작업 중지 및 대피 보고 등 기본조치에서 하청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는 제외됐다”며 “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형식적이고 2차적인 책임만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가 들어야 할 안전보건교육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20시간 이내라고 시간을 한정한 것을 문제 삼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법원을 통해 200시간 이내의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병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20시간 이내라는 짧은 안전보건교육으로 산재예방의 제1의무주체로서 경영책임자의 역할을 제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2회 이상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시 가중교육 내용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의 공표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가 사업주 단순 처벌이 아니라 중대산업재해의 경각심 및 산재예방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기간을 1년으로 두지 말고 영구적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안전보건목표와 경영방침만 설정하도록 해 이행·평가·개선 등이 빠짐 점,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따로 둔다는 것은 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는 점 등을 예로 들며 “안전보건 확보의무인 시행령 제4조와 제5조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경영계에서는 경영책임자의 의무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포괄적이고 불분명하여 어느 수준까지 의무를 준수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간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담긴 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 처벌수준이 과도하다며 법 제정에 반대했다.

법 제정 이후에는 △중대산업재해 정의 엄격히 규정 △경영책임자·원청의 의무 구체적 명시 및 시행령 위임근거 마련 △경영책임자 형벌 상한 설정 방식 변경 및 면책 규정 마련 △법인 벌금 수준 하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3배 이내로 제한 △시행 시기 2년 유예 및 하청사고에 대한 원청 처벌 면제 특례 마련 등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직업성 질병에 대한 중증도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산업재해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고,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규정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주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안전보건관리체계에서 말하는 안전 및 보건을 위한 적정 예산 등이 불명확하고,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다했음에도 개인의 부주의 등 다른 원인에 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책규정이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경총은 위 내용을 포함해 산업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한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빠른 시간 내에 정부부처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