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재정난, 구조조정이 해법일까
지하철 재정난, 구조조정이 해법일까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8.07 00:05
  • 수정 2021.08.06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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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하철노조,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 정착 우려
서울교통공사 노사 “공익서비스의무 정부가 지원해야”
“코로나19가 지하철을 멈추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의 선전물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코로나19가 지하철을 멈추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의 선전물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코로나19가 지하철을 멈추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궤도협의회)가 서울 내 지하철 역사와 차량 곳곳에 붙인 선전물에 담긴 표어다. 광고판에는 “어르신 무임승차 지속을 위해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서울교통공사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용객이 급감하며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한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한목소리로 국가의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구조조정을 포함한 강력한 자구안을 서울교통공사에 요구했지만, 노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2017년 서울교통공사가 통합 출범한 이래로 쌓여가는 적자는 내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심각한 재정난,
강력한 구조조정안 내놔라”

6개 지하철노조가 국가의 ‘공익서비스의무(PSO)’ 비용 지원을 촉구하며 총파업의 뜻을 밝혔다. 재정 악화에 따른 구조조정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7월 21일 궤도협의회 산하 6개 지하철노조(서울교통공사노조·부산지하철노조·대구지하철노조·인천교통공사노조·대전도시철도노조·광주도시철도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행위 발생 결의안’을 94.1% 찬성으로 가결했다.
* 공익서비스의무(Public Service Obligation, PSO): 철도의 공익성을 위해 노약자, 학생 등에 대해 철도요금을 할인해주거나 적자 노선 및 적자 역을 유지함으로써 빚어지는 적자 부분을 정부가 의무보조금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

현재 서울교통공사는 심각한 재정적자에 빠져있다. 코로나19로 이용객이 급감한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1조 1,137억 원이다. 올해도 1조 6,000억 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 공사와 서울시는 공사채 발행으로 시급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려 했지만, 승인 기관인 행정안전부는 고강도 자구안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직후인 5월 “정부에 손을 벌리고 공사채로 해결하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이라며 서울교통공사에 구조조정을 포함한 강력한 자구안을 촉구했다.

‘노 對 사’가 아닌 ‘노사 對 정부’

서울교통공사는 6월 7일 열린 2021년 임단협 1차 교섭에서 공사 전체 인력의 10%를 웃도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밝혔다. 공사는 근무제도 개편과 궤도시설보수 등의 업무 외주화, 심야 연장운행(12~1시) 완전 폐지를 통한 충원인력 감축 등의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 20년 이상 근속자의 희망퇴직 유도, 교대제 폐지, 업종 간 업무 통폐합, 비숙박 근무 형태 도입 등도 제시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위원장 김대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공사는 구조조정안을 고수했다. 7월 14일 3차 본교섭에서 노조는 ‘노동개악 철회’를 요구했고 공사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쳤다. 결국 서울교통공사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사가 대립을 이어가는 양상을 보이지만, 실상 공사의 입장도 노조와 다르지 않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 관해선 같은 목소리다.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인 도시철도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속히 통과시켜 PSO 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는 입장이다. 전국 6개 도시철도 노사 대표자들은 7월 26일 국회를 방문해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앞서 2월 18일 열린 ‘전국 도시철도운영기관 노사대표자 공동협의회’에는 관련 법안 통과에 집중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도시철도법 개정안과 철도산업발전법 개정안 등은 PSO 비용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서울지하철, 수입은 막히고 비용은 가중
“공공성 비용 부담은 온전히 공사의 몫”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는 조직이 내부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각에서 얘기한 것처럼 ‘공사의 뼈를 깎는 경영합리화’로 지하철 운영 적자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노사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지하철의 특성으로 만성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PSO를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PSO는 시민의 이동권이라는 공공성을 위한 비용이다. 노약자, 학생 등의 요금을 할인·면제해주거나, 적자 노선·역을 처분하지 않고 유지하는 식이다. 지하철 환승 할인도 같은 이유다. 전국 교통공사에 높은 기준의 ‘안전 중시’ 경영 기조가 요구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PSO 비용 중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 무임수송이다. 정부지침과 법령준수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에 국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9년 기준, 서울교통공사의 영업손실 5,324억 원 중 무임수송 비용은 약 70%(3,709억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무임수송제도는 1984년 시작됐다. 당시 노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65세 이상의 시민은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됐다. 이후 무임수송 대상은 국가 법령에 따라 장애인, 유공자 등으로 확대됐다.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교통복지정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무임수송으로 인한 손실은 실제로 발생한 손실이 아니다. ‘무임손실’은 무임수송자가 지하철 요금을 지급했을 경우 발생하는 기대 수익으로, 회계에 반영되지 않는 수치다. 다만, 회사의 손익을 좌우하는 운수사업에서 적지 않은 무임비용이 발생하는 탓에, 서울교통공사 노사는 ‘무임수송 비용 보전’을 얘기하게 되는 상황에 몰려있다. 2019년 기준, 서울교통공사의 수익에서 운수사업은 80% 이상을 차지한다.

적자를 이유로 ‘무임수송 폐지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단지 교통복지의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편익을 보더라도 무임수송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무임수송의 주요 수혜층(전체 82%)인 노인의 경우, 서울연구원이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한 사회적 편익 비용은 3,650억 원에 달한다. 무임수송으로 인한 이동 활성화로 노인의 경제활동 증가와 자살 감소, 교통사고 의료비 절감 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2015년 이후 6년째 동결 중인 지하철 요금도 문제다. 2020년 기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승객 1명당 770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지하철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시민들의 반발과 이를 의식하는 정치권으로 인해서 요금 인상은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 계획 중인 사업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로 보인다. 광고 수입 증대, 지하철 내 공유오피스 개발, 역명병기 유상판매 확대 등은 연간 740억 원의 수익을 내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무임수송 비용을 지원할 목적으로 올해 처음 시 예산 500억 원을 편성했지만,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액수다.

6월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6월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시민과 노동자 위협하는 인력감축은 해법 아냐”

서울교통공사의 자구안처럼, 인력감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매해 발생하는 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통상 55%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력감축은 노동자의 근무환경으로 이어지는 사안이다. 현장의 일손이 부족해져 장시간 노동이 발생하면 노동자는 건강에 타격을 입게 된다. 궤도협의회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4월 발표한 철도·지하철 노동자 산재실태에 따르면, 교대·교번근무, 야간근무를 이어가는 철도·지하철노동자는 다른 산업보다 높은 비율로 정신질환, 뇌 심혈관 질환, 직업성 암 등을 겪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의한 지하철 안전 문제도 거론된다. 안전 관련 핵심 업무 인원을 감축하거나 외주화하면 인명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공사는 이번 구조조정안에서 “비핵심 업무”라며 차량기동반, 궤도시설 보수 등을 외주화한다고 밝혔지만, 어디까지를 안전인력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역무원도 이용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사실 어떤 인력이나 현장에서 일하면 다 안전인력이라고 볼 수 있다”며 “지금도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이 많아서 인력감축 계획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이동권과 지하철 안전을 유지하며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은 ‘정부와 서울시의 재정 지원’이라는 게 서울교통공사 노사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국가가 6년째 동결 중인 지하철요금,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지하철 환승 할인을 모른 체하며 인력감축만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공교통의 재정난 해소
상시적 구조조정 정착으로 이어져선 안 돼”

지난해 코로나19로 급격한 재정 위기에 빠졌지만,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2017년 5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통합으로 출범한 서울교통공사는 매년 약 5,000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하철 재정난은 서울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6개 운영기관의 당기순손실을 모두 합하면 총 1조 8,005억 원에 달한다.

전국 6개 지하철노동조합은 서울교통공사의 구조조정안을 두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가 정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일시적 처방이 아닌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교통공사노조 관계자는 “PSO로 적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경영난 해법으로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정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익서비스의무를 법률로 규정한 국가에는 책임을 지우지 않고 운영기관에만 부담을 지운다면, 재정난으로 인한 논란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실이다. 다른 주요국처럼 다양한 할인제도, 시간대별 탄력적인 무임수송 운영, 손실보전 등 중앙 정부 차원의 공론이 필요하다.

6개 지하철노조는 8월 16~19일 나흘간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6개 지하철노조는 공동투쟁에 돌입한다. 김대훈 궤도협의회 상임의장은 9월 내 PSO 관련 법안 통과를 목표로 총파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