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산별노조, 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산별노조, 왜?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12.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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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 체계론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구책 모색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추진 양상은 모두 달라
[이슈 인 이슈] 심층진단 산별노조 ② 산별노조의 오늘

얼마 전 노동부는 2007년 노동조합조직현황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71%가 산별노조 조합원이며, 한국노총은 조합원의 24%가 산별노조 조합원이다. 여기에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는 노조 중에서도 조합원의 28%는 산별노조 소속이다. 전체 조직노동자의 44%가 산별노조 조합원인 셈이다.

여전히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조직된 노동조합은 산별노조로 형태전환이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지금도 각 산별연맹 내에서는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왜 산별노조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 산별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조합들로부터 이유를 찾아보자.

ⓒ 참여와혁신 포토DB

산별노조 깃발을 올려라

지난 9월 9일, 전력관련산업노동조합연대회의(전력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력산별노조의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전력산별노조에는 전국전력노조, 한국수력원자력노조, 한전KPS노조 등 7개 노동조합이 참가하기로 했다. 전력연대는 올해 안에 각 조직별로 산별전환을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해 산별노조에 결합하기로 했다. 최근 이 일정이 약간 미뤄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년에는 공식적인 집행부를 구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을 상급단체로 하고 있는 발전노조는 이번 전력산별노조에 일단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전력산별노조를 설립하면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상급단체 문제. 현재 전력노조는 한국노총 소속 산별노조이고, 한전KPS노조는 한국노총 공공연맹 소속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노조는 상급단체가 없는 상태다. 전력산별노조는 집행부 출범 이후 의견수렴을 거쳐 상급단체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전력노조 김주영 위원장은 전력산별노조 추진 이유에 대해 “정부가 사용자로 노사관계가 아닌 노정관계에서 정부에 대항하려면 전체가 산별이 돼서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산별전환 과정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공운수연맹은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현재의 공공운수연맹에는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산별 미전환 사업장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2007년 1월 출범하면서 2007년 말까지 통합산별노조를 건설하기로 결의했다. 그 과정에서 공공운수연맹은 미전환 사업장을 산별노조로 전환시키고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조직적 결의를 거쳐 통합산별노조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 일정은 3차례 연기돼 내년 4월 말까지 통합 작업을 완료하고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통합산별노조로 출범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현재의 통합 작업 진행속도에 비춰볼 때 이 일정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11월 출범하기로 한 통합산별노조준비위원회 구성이 사실상 올해 안에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공공운수연맹은 지난 8월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연맹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됐다. 애초에 결의한 대로 통합 작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부터, 무리한 일정 따라가기 식으로는 향후 통합산별노조의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입장, 힘 있는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우선 소산별 혹은 업종산별을 거쳐 궁극적으로 대산별로 가야 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입장이 개진됐다.

이날 한 참석자는 “공부 안하다 뒤늦게 공부해서 운수대학 가볼까 했는데 내년에 공공운수대학원 생긴다고 하니 내부에서는 못 간다, 재수해서 가라, 궤도전문대로 가라 등 의견이 분분하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연합노련은 산별노조 건설을 두고 고민이 크다. 연합노련에는 환경미화원, 전기검침원, 유통, 항공운수 등 크게 4개 업종 노동조합이 포함돼 있다. 이들을 당장 대산별로 묶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업종별로 소산별노조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소산별로 묶는 것도 현재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 못해 연맹 간부들을 애태우고 있다.

산별전환 제동 걸리다

산별노조 추진에 제동이 걸린 곳도 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은 2006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올해 11월까지 산별노조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연맹은 그동안 산하 단위노조들을 대상으로 산별전환을 위한 교육 등을 실시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21일 중앙위원회에서는 산별노조 추진 중단을 의결했다. 이번 중앙위원회 결정은 의사결정구조상 대의원대회 결의를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보류를 결정한 것이지만, 사실상 산별노조 추진을 폐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식적으로는 산하 단위조직 중 산별전환을 결의한 사업장이 15개밖에 되지 않아 산별전환의 동력이 미약하다는 것이 원인이다. 물론 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산별전환을 위한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평가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안 간다는 데 어쩔 거냐?”가 아니라 “왜 안 간다고 하는가? 지도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리해야 향후에 다시 산별전환을 추진하더라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화섬연맹은 애초에 화섬노조를 건설한 후 금속노조와의 통합을 통해 제조산별로 나아가기로 했지만 이는 무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금속노조가 15만의 산별노조로 전환한 데 비해 화섬연맹은 지금 스스로의 앞길을 추스르기에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화섬연맹은 산별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작년 2월에는 연맹의 주력 사업장 중 하나였던 금호타이어노동조합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금호타이어지회로 전환되기도 했다. 또 맹비 납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5월과 10월에는 대규모의 제명으로까지 이어졌다. 연맹에서 제외된 한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지역본부에 직가입했을 때 연맹에서 이에 대한 징계를 요청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화섬연맹의 재정상황도 갈수록 악화돼 지역 상근자나 연맹 상근자 급여 지급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고, 민주노총 의무금도 체납돼 있는 상태다. 연맹은 대의원대회에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맹비 인상을 주문했지만 부결됐다. 조합원 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상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어려움 있지만 우리는 산별로 간다

산별노조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는 아니다. 산별전환의 경로를 놓고 한창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곳도 있고, 여러 가지 걸림돌에 막혀 산별추진이 중단된 곳도 있다. 몇 년째 산별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환이 매끄럽지 않은 곳은 물론 오히려 조직이 위축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산별전환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점차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를 대체하고 있는 양상이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산별노조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속노련 정문주 정책기획실장은 “기업별 체계로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같은 노조의 기본적인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단위사업장을 넘어 산업,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고용유연화에 대응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며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산별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산별전환은 운동 논리가 아닌 생존 논리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산별노조들은 이런 경험을 거쳐 산별로 전환했다.

금융노조는 외환위기 당시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조직이 통·폐합되고 퇴출되면서 5만 명의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금속노조에서 가장 강력한 투쟁력을 자랑한다는 현대자동차지부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1만여 명이 정리해고 되는 과정을 겪었다.

연합노련 서일억 사무처장은 “산별노조는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규정한다. 영세사업장 노조의 자생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대규모 노조와의 격차도 날로 커지는 현실에서 영세사업장 노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결국 산별노조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갈수록 비정규직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에서 정규직 위주의 기업별노조로는 노조운동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전임 연맹간부도 있다. 그는 “개별 자본과 단위노조가 교섭하던 시대는 갔다”면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비정규직 조직화, 산업정책 등은 노동자의 삶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데, 이런 문제를 개별기업에서 풀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서 사무처장은 “내년이면 복수노조, 전임자임금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별기업에서 노사가 아무리 협의해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며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산별노조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한두 가지의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기업별노조 체계의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산별노조가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산별노조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명제로 굳어지고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가 되고 있는 만큼 산별노조가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교섭도 풀리지 않아 고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사관계가 정착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