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생각도 하기 싫어!
산별? 생각도 하기 싫어!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12.0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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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은 산별, 제도는 기업별 … 곳곳에서 엇박자
산별노사관계에 대한 편견 극복해야
[이슈 인 이슈] 심층진단 산별노조 ③ 노사관계로서의 산별

올해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가 산별교섭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산별교섭을 포함해 산별노사관계 정착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이들이 애를 먹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어떤 점을 극복해야 할까?

내 짝을 찾아줘

산별노조가 당면하고 있는 첫 번째 문제는 사용자들이 교섭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섭에 참가하더라도 대화에는 소극적이다.

금속노조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핵심 사업장인 완성차업체 사용자를 중앙교섭 테이블에서 마주할 수 없었다. 보건의료노조의 파트너인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는 올해 교섭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금융산업 산별교섭에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참가한다는 사용자들의 약속은 올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참가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중복교섭, 중복쟁의의 우려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교섭구조가 중앙교섭-지부교섭-사업장교섭과 같이 이중·삼중으로 돼 있기 때문에 교섭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노동부가 용역을 줘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산별교섭의 경우 기업별교섭보다 최고 2.8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또 사용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산별노조에서 파업하고, 지부에서 파업하고, 사업장에서 파업할 수 있다”는 것. 이러면 사업장과 관련 없는 중복파업으로 인해 개별사업장의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 사용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중복교섭이 아니라 의제의 분리다. 중앙교섭에서 논의하는 의제와 사업장에서 논의하는 의제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의제가 분리되면 교섭기간이 오히려 단축되고 개별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덧붙여서 “15만이 파업 하는 게 쉽지가 않다. 실제 통계를 보면 보건의료노조나 금속노조가 산별로 전환한 이후 파업일수가 줄었다. 중복파업 주장은 사용자들이 산별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한 대기업 노무 담당자는 “우리 회사 노조에서도 산별 교섭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면서 “노조에서 중앙의 일정과 상관없이 현안에 대한 논의를 원하는데 굳이 우리가 나서서 중앙 교섭에 참여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한 기업 노무 담당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산별 교섭에 별 무리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경영진 입장에서는 산별 교섭에서 나오는 정치적 의제들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기업별 제도에 산별을 맞춰라?

보건의료노조 홍명옥 위원장은 “노조는 산별이고 교섭도 산별로 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법은 하나도 없다. 기업별노조에서는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 받는데 산별교섭에서는 안 나오면 그만”이라며 법적·제도적으로 산별노사관계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필수공익사업장이라서 반드시 중노위 조정을 거치게 돼 있다. 그런데 중노위에서는 교섭대상에서 임금 외에는 산별협약을 다루지 못한다. 파업전야제 때 중노위 가면 언론이 들어오는데, 조정대상이 임금밖에 다뤄지지 않으니까 임금만 언론에 나온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은 재계도 마찬가지다. 한 업종협회 담당자는 “우리는 법률적으로 볼 때 사용자단체가 아니다”고 전제하고 “그런 상황에서 노조의 주장대로 교섭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협회 관계자는 “협회라는 게 결국은 주요 회원사들의 방침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인데 개별 기업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협회가 나서 노사관계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밝혔다.

업종도 규모도 모두 다르지만

보건의료노조나 금융노조와는 달리 금속노조에는 서로 다른 업종이 소속돼 있다. 물론 부품을 포함해 자동차업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이나 철강, 전기·전자 등 상이한 업종이 함께 포함돼 있다. 이렇게 업종이 다른 사업장이 하나의 산별노조로 묶여있다 보니 교섭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업종 간 격차는 어떻게 좁힐지도 고민거리다.

격차는 업종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규모의 단위들 사이의 격차도 무시하지 못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원청과 하청 간 격차는 특히 심하다. 이들의 격차는 임금이나 복리후생뿐만 아니라 인격적 대우에까지 걸쳐있다.

정 위원장은 “금속노조 15만 조합원 중에는 임금이 3배까지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중앙교섭에서 이들의 임금 교섭을 하려면 지금은 엄두를 못 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당 기업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해 있는 한 기업 임원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 교섭에서 할 수 있는 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조직은 대산별 형태로 하되 교섭 단위를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업종 단위로 다양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치투쟁 하는 산별노조가 싫다?

일부에서는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기업별노조일 때도 정치 지향적이었던 노동조합이 더욱 정치 지향적으로 가게 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투쟁 등 사업장과는 상관없는 정치적 사안으로 무분별한 정치투쟁이 만연했다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노동조합이 근로자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법·제도 개선 노력에 나서는 것은 노동조합의 당연한 임무”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비정규직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 산별노조의 활동을 정치 지향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산별노조에게는 산별노사관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산별노조에 대해 비우호적인 사용자들의 시선에서부터 내부에 존재하는 격차까지, 산별노조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은 하나같이 가볍지 않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산별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