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수주는 ‘청신호’, 숙련인력 확보는 ‘적신호’
선박 수주는 ‘청신호’, 숙련인력 확보는 ‘적신호’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8.12 16:03
  • 수정 2021.08.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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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만들 사람이 없다”… 조선산업 ‘인력난’ 어쩌나
금속노조·조선노연, “원·하청 구분없이 인력 감소해… 숙련노동 유출 심각”
“다단계 하도급 폐지하고 정규직 중심으로 숙련인력 양성해야”

수주 호황에도 불구하고 선박을 건조할 인력이 없어 국내 조선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도 기술 인력 양성 등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기술 인력 양성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의 인력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현대중공업
ⓒ 현대중공업

수주 호황에 활짝 웃는
한국 조선산업

올해 상반기 국내 조선사 실적에 훈풍이 불고 있다. 국내 조선사의 주력인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가 늘어나면서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상선 발주량은 2,401만CGT를 기록해 2020년 연간 발주량이었던 2,216만CGT를 가뿐히 넘어섰다. 이 중 1,047만CGT(43.6%, 267억 달러)는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했다.

하반기의 시작인 7월도 좋은 실적을 유지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은 401만CGT로 집계됐는데, 한국은 181만CGT(24척)를 수주해 점유율 45%로 5월부터 3개월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산업의 ‘빅3’로 불리는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올해 수주 목표 달성은 순조롭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말 기준 174억 달러를 수주하면서 연간 수주 목표(149억 달러)의 116%를 달성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연간 수주 목표의 82%, 74%를 달성하면서 이르면 3분기에 100%를 달성할 것으로 보여, 3사 모두 올해 연간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드나?
인력난에 ‘한숨’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실적과는 다르게 국내 조선사들은 고민이 크다. 수주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배 만들 노동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산업은 2000년대 중반 초호황기 이후 2016년 불황의 정점을 찍고 지금의 호황을 맞이하기 전까지 ‘몸집 줄이기’에 몰두했다. 조선산업 1차 구조조정 시기로 볼 수 있는 2009년부터 부도, 법정관리, 폐업, 매각 등의 절차를 통해 다수의 중·소형조선소가 퇴출됐고, 간신히 명맥을 이어간 대형조선소도 과잉설비 해소와 유휴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구조조정을 반복했다.

당시 정부는 “지속되는 공급능력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조선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보다는 ‘금융주도 구조조정’에 정책 초점을 맞췄다. 노동계에서는 향후 다가올 수주 회복과 호황을 대비해 숙련노동자 유출을 막고, 유휴인력은 교육 휴직과 휴업 등을 통해 붙잡아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을 버티지 못한 숙련노동자들이 하나둘 조선소를 떠났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조선소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했던 이들은 새로운 일자리, 주로 건설산업 일자리를 찾아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과 거제, 창원 등 지역을 떠났고, 지역을 떠난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같은 과정이 선박 수주가 늘어났음에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지금의 인력난을 낳았다.

실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조선분과와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가 지난 3년간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와 함께 조사한 ‘조선산업 인력 문제와 대안’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HSG성동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8개사의 노동자 수는 지난 3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 8개의 노동자 수 추이 (자료=금속노조·조선노연)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 1월 조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수는 원·하청 포함 10만 1,058명이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 10만 7,615명으로 고점을 찍은 노동자 수는 2020년 7월 9만 9,934명으로 감소했고, 이후 꾸준히 떨어져 2021년 5월 말 기준 9만 771명까지 떨어졌다. 약 10%의 노동자가 감소한 것이다.

노동자 감소는 원청과 하청 양쪽에서 함께 나타났다. 2019년 1월 4만 3,493명이던 원청 노동자의 수는 2021년 5월 3만 9,921명까지 줄어들었고, 하청 노동자 수는 2019년 1월 5만 7,575명에서 2019년 10월 6만 4,680명으로 증가하다가 점차 감소해 2021년 5월 5만 850명을 기록했다.

하청 노동자 수가 원청 노동자 수보다 많은 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가진 특징 중 하나다. 2021년 5월을 기준으로 봐도 하청 노동자의 수가 원청 노동자보다 20% 이상 많다. 금속노조는 “원청 노동자의 상당수가 기술 영업,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므로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직 노동자의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하청 노동자들의 수는 원청 노동자의 200% 이상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규직 중심으로 숙련인력 양성해야”

금속노조는 현 인력난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조선산업의 다단계 하도급 폐지와 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를 제시했다.

과거 장기간 이어진 조선업계 불황과 주 52시간제 도입이 겹치면서 하청 노동자의 상당수가 조선업계를 떠났기 때문에 과거처럼 하청 노동자를 자유롭게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금속노조는 “과거 조선산업 호황기 시절에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지 않았는데 20년간의 불황을 겪으면서 하청 노동자는 물론, 원청 노동자의 임금도 삭감되면서 이제는 조선소 노동자의 임금이 오히려 낮은 상황”이라며 “그동안 조선산업에서는 정규직 신규 채용이 거의 없었고, 자동차산업처럼 하청으로 일정 기간 일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신규 채용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조선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대표주자인 조선산업에서 숙련노동자 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선산업도 스마트·자율운항 선박 출현, IMO 환경규제 등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수 자동화가 이뤄진 여타 산업과 비교하면 여전히 개별 노동자의 숙련이 산업 경쟁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금속노조는 “조선소는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로 나눈 시스템도 부족하여 물량팀, 돌관팀, 프로젝트팀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재하청 노동, 불법 파견이 분명한 다단계 하도급을 양산하고 있다”며 “조선소 노동시장을 정규직 노동자 위주로 전면 재편해 조선산업에 만연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 길만이 다시 호황기로 접어든 조선산업을 제대로 살리고 조선 노동자들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 한국의 조선산업은 지난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규직 노동자,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해고했다”며 “조선산업을 다시 한국 제조업의 대표 산업으로 만들고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조선업계 경영진들은 외국인 노동자 전면 고용이나 52시간 유예와 같은 근시안적인 땜질 처방을 그만두고 노동조합과 함께 새로운 노동시장 만들기로 조선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