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유연화·4대 보험 체납, 하청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나는 이유
고용유연화·4대 보험 체납, 하청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나는 이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9.14 20:22
  • 수정 2021.09.14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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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업체 ‘본공’에 고용승계 대신 “물량팀 가라”
​​​​​​​‘유일한 노후수단’ 국민연금, 업체 폐업 시 피해 회복 어려워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장 김형수, 이하 지회)는 14일 오전 10시 30분 거제시청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발판업체 진우기업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국민연금 체납 피해 해결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선업 불황 이후 열악해진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전망이 어둡다. 조선업 회복기에 맞춰 ‘배를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빗발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고용유연화, 4대 보험료 체납 등으로 일자리의 질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장 김형수, 이하 지회)는 14일 오전 10시 30분 거제시청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발판업체 진우기업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국민연금 체납 피해 해결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본공이 사라진다

“9월 10일 아침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산업을 확고한 세계 1위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8,000명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내년이면 조선소 노동자가 많이 필요해서 ‘인력 보릿고개’가 온답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은 진우기업이 폐업하면서 고용승계가 안 된다고 합니다. 재하도급 물량팀은 다른 업체로 옮겨 계속 일하게 하면서 오래 일해온 저 같은 본공들은 나가라고 합니다.“ 진우기업 노동자 나윤옥 씨의 발언 中

진우기업은 대우조선해양의 발판업체다. 총 직원 100여 명 규모 기업이다. 작업 발판 설치는 조선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할 때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작업은 위험하지만 높은 곳에 발판을 만드는 일은 더욱 위험하다. 발판공은 조선소 내에서도 위험직종에 속한다.

진우기업은 지난달 말 오는 10월 1일 자로 폐업을 예고하고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의 고용구조는 상용직인 ‘본공’과 재하도급격인 단기계약 ‘물량팀’으로 나뉜다. 하청업체 폐업 시 일반적인 경우 본공은 다른 하청업체로 고용이 승계된다.

그런데 지회에 따르면, 이번 진우기업의 폐업 과정에서 본공들은 고용승계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회는 본공이 아닌 물량팀으로 고용형태를 바꾸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본공은 ‘하청중심 생산구조’로 돌아가는 한국 조선업이 숙련 기술력을 보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일감을 찾아 이곳저곳 조선소를 이동하는 물량팀과 달리 본공은 해당 지역에 정착해서 근무한다. 하청업체가 폐업을 해도 본공들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하청업체로 고용승계됐기 때문에 숙련도가 보전될 수 있었다. 진우기업의 사례처럼 본공을 줄이는 방식이 확대된다면 한국 조선업의 숙련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직사업부장은 "한국 조선업이 하청중심의 생산구조이면서도 세계적으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본공 중심의 생산구조였기 때문"이라며 "본공들은 업체를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한 원청사에서 10년, 20년을 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숙련과 기술력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이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회는 “재하도급 물량팀 노동자는 업체 폐업에도 고용을 유지하면서, 진우기업에 직접 고용돼 일해 온 본공들은 대책 없이 해고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물량이 늘어나고 조선업이 다시 호황기를 맞아도 필요한 노동자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재하도급 노동자로 최대한 채우겠다는 것이다. 한국 조선업의 가장 큰 문제인 ‘다단계 하청 고용’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일한 노후수단’
국민연금 체납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나윤옥 씨는 진우기업이 “유일한 노후대책인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지회에 따르면 진우기업의 국민연금 미납액은 4억 5,000만 원에 달한다. 노동자 1명당 400~500만 원 정도 연체된 셈이다.

나윤옥 씨는 “국민연금 체납은 진우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2021년 7월 기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의 국민연금 미납금액은 20억 9,000만 원에 달한다. (▶ 관련기사 : 거제 양대 조선 하청업체, 4대보험 체납금 412억)

진우기업이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던 배경에는 ‘4대 보험 납부 유예제도’가 있다. 2016년 7월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지원 정책 중 하나로 4대 보험료 납부 유예제를 실시했다. 4대 보험료 납부 유예 제도는 납부 ‘유예’이지 ‘탕감’은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의 부담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일부 사내하청업체에서 ‘내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생각하여 다른 곳에 쓰거나 심지어는 착복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사용자가 4대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경우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진우기업의 사례처럼 업체가 폐업할 시, 4대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용자에게 보험비를 징수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 지회는 “건강보험공단이 강제 징수에 손 놓고 있는 동안 진우기업 같은 장기 체납, 고액 체납 업체의 피해가 현실로 터져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우기업 노동자들은 13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선각 사거리에 농성장을 차렸다. 지회는 ▲진우기업 노동자의 고용 보장 ▲국민연금 체납 피해 해결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요구하는 동시에 국민연금을 체납한 진우기업의 하대한 대표의 구속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