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농성 7일차 한국게이츠, "대성산업에 사회적 책임 있다"
단식농성 7일차 한국게이츠, "대성산업에 사회적 책임 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1.15 21:51
  • 수정 2021.11.15 2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흑자 폐업’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 1년 5개월째 투쟁 중
한국게이츠 부지 인수하는 대성산업 본사 로비에서 단식농성 돌입
‘먹튀’ 외투기업, 뒷감당은 노동자만… “대성산업 사회적 책무 있어”

[인터뷰] 송해유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수석부지회장

'흑자 폐업'으로 한순간 일자리를 잃은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서울 신도림역 앞 대성산업 본사 11층 로비에서 7일째(15일 기준)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성산업은 “한국게이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당사 사무실을 불법으로 점거하여 농성 중인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과 금속노조 조합원 전원의 즉시 퇴거를 강력히 요청”하는 상태다. ‘원활한 퇴거’를 위해 대성산업은 11층 출입과 음식물 반입을 막고 있다.

“저희들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 완전히 감금됐어요. 음식이고 뭐고 다들 반입이 안 돼요. 열 끼째 굶고 있어요. 밤에 추워서. 담요도 못 올라오게 막아가지고.”
- 12일 채붕석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지회장과의 통화 내용

단식 7일차였던 15일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와 함께 단식했던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본부장은 건강상태 악화로 고려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는 지난 10월에도 대구시청 앞에서 한국게이츠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한 바 있다. 이들은 왜 한국게이츠의 문제를 대성산업이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대성산업 본사 11층에 동료들을 두고 밑에서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송해유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수석부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12일 오후 4시경 천막농성장에서 진행했다.

12일 서울시 신도림역 앞 대성산업 본사 앞에서 송해유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수석부지회장과 인터뷰 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공장장도 몰랐던
한국게이츠 폐업

한국게이츠는 대구 지역에서 ‘알짜배기’ 자동차 부품회사로 알려져 있다. 현대·기아차 및 한국지엠의 1차 협력업체로 미국 글로벌게이츠와 일본 니타가 합작해 1989년 설립됐다. 2017년~2019년 연 매출 1,000억 원, 순이익 50억 원을 기록하는 소위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런데 지난해 6월 26일 한국게이츠는 돌연 폐업을 통보했다. 7월 20일까지 전 직원 147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7월 31일 최종적으로 공장을 폐업하겠단 내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출근해서 제품을 만들던 노동자들에게 내일이 없어졌다.

“26일 아침에 본사에서 손님이 왔다고 노동조합 임원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어요. 책임 있는 사람이 왔으니까 그때 막혀있던 교섭이 좀 풀리겠네 생각하면서 갔는데, 제일 먼저 던진 얘기가 그거였어요. ‘공장 폐업한다.’ 반갑다 뭐 인사도 할 것도 없이 공장 폐업합니다. 아무도 몰랐던 거죠.”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교섭 시기마다 ‘폐업’이라는 단어를 종종 들었기에 사측의 폐업 통보에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7일 출근을 해보니 정말로 제품 생산을 하지 않았다. 한국게이츠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도 공장에 들어오려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게이츠 협력업체에게도 날벼락 같은 폐업 소식이었다.

“27일, 28일에도 부품 납품 업체가 물건을 싣고 왔어요. 그러니까 공장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몰랐던 거죠. 미리 알았으면 자재과에서 취소를 했을 건데. 조합원뿐만 아니라 사무직들도 아무도 몰랐죠. 관리이사나 공장장도 처음에는 아예 몰랐어요.”

서울시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앞 디큐브파크에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잔인했던 2020년 여름

한국게이츠지회가 맨 처음 회사의 폐업소식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게이츠가 현대차‧기아‧한국지엠의 1차 하청업체이기 때문이었다. 엄격한 수직계열화 구조에 묶인 하청업체가 완성차업체에 납품하는 부품을 돌연 생산 중단하는 일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었다. 한국게이츠지회가 투쟁 초기 원청사인 현대차그룹의 책임을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했죠. 왜냐하면 저희가 현대차, 기아, 한국지엠 완성차에는 다 납품을 하거든요? 여기가 문을 닫으면 중국이나 미국, 일본 다른 나라에 있는 부품을 납품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원청사랑 사전에 협의가 돼야 하는 거죠.”

2020년 7월 여름은 한국게이츠지회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계절이었다. 흔히 직장생활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삼키라고 말한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직장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일터가 사라지는 ‘흑자폐업’조차 그저 삼켜야 할까. 한국게이츠는 7월 20일까지 전 직원 147명에게 소정의 위로금을 받는 대신 해고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끝까지 사인하지 않은 사람은 25명. 나머지는 울며겨자먹기로 흑자폐업의 부당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남은 25명 중에서도 6명은 '어쩔 수 없는 생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7월 20일까지 사인을 해라. 사인하면 회사에서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25명을 제외하고는 다 사인을 했죠. 하루아침에 돈 몇 푼 쥐여줄 테니까 ‘너 나가라.’ 대부분이 못 받아들여요 그런데 회사에서 조합원들한테 ‘7월 20일까지 사인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위로금도 없다.’ 이런 문자를 2~3일에 한 번씩 계속 보냈어요. 집으로도 등기를 보내는 거예요. 가족들 보라고요.”

“한 7월 17일이나 18일쯤에는 저희 조합 간부했던 분이 집에서 ‘당신 오늘 가서 사인하고 오든지 아니면 이혼 서류를 갖고 오든지’라는 소리를 들은 거예요. 정말 저하고도 친했던 친구인데. 7월 20일에 사인하고 미안하다고 울면서 바로 집에도 못 가고 차에서 한 시간 울다가 마지막으로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문자 남기고. 그렇게 조합원들이 떠나갔죠. 그때는 진짜 뭐 이러면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는 4일부터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현재(15일기준) 천막농성 12일차.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부당한 해고

한국게이츠는 최종적으로 8월 1일 전 사원을 해고했다. 남은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원들은 한국게이츠의 폐업이 위장폐업이라는 점을 밝히려 했다. 한국게이츠가 위탁생산 등으로 한국에서의 생산을 유지하는데도 불구하고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폐업을 했다는 것이다. 몇 달간 가능한 모든 수를 쓴 끝에 한국게이츠가 위장 폐업한 것이라는 단서를 일부 찾았지만, 법리적 검토를 거쳐보니 처벌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장 폐업이라는 단서를 찾기만 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죠. 실제로 부품사 찾아다니고 별짓을 다 해서 작년 10월쯤에 의심되는 공장을 하나 찾았어요. 그런데 변호사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니까, 이게 위장 폐업이 한국 공장에 있는 기계를 가지고 나와서 생산을 하면 위장 폐업이고, 기계를 새로 사들여서 생산하는 건 위장 폐업이 아니래요. 그 얘기 들었는데 얼마나 충격이. 몇 달을 고생해서 찾았는데.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안 걸린다는 거예요.”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은 해고 뒤 8~9개월 동안 실업급여로 버텼다. 이후에는 금속노조 장기투쟁기금 3개월이 있었다. 투쟁이 1년을 넘어서자 그마저 다 떨어져 갔다. 그 무렵 한국게이츠지회는 대구시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차렸다.

“대구시에 책임이 크다는 판단이 내렸어요. 정확하게 30년 전 자료인데. 대구은행으로부터 60억 원을 사입했더라고요. 그 돈을 지금까지 한 푼도 안 갚다가 10월 6일에 공장 설비를 빼가면서 채무를 다 갚았어요. 혜택은 다 받았는데 나갈 때 대구시는 뭘 하고 있었냐는 거죠. 적자도 아니고 흑자 나는 회사가 나가는데. 유치가 문제가 아니고 먹튀 하는 기업들에 대해서 뭔가 제재가 필요한 거 아니냐.”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올해 10월경. 한국게이츠 대구 공장 부지가 누군가에게 팔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다. 앞서 8~9월경부터는 공장 설비가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초 LPG 차량용 자동차 부품 회사인 모트닉이 인수 대상자로 추정됐지만 차후에 대성산업으로 밝혀졌다. 한국게이츠지회가 이 소식을 접한 건 10월 20일경 한창 대구시청 앞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진행하던 때였다.

“공장 부지를 누가 인수하는지 대구시에다가 계속 물어봤는데, 대구시는 끝까지 대답을 안 해 줬어요. 대구시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을 때거든요. 4명에서 돌아가면서 한 70여 일 정도요. 인수자가 대성산업인 거 알고 나서는 대구시청보다는 대성산업 앞에서 하는 게 낫겠다고 해서 서울로 올라왔죠.”

송해유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수석부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대성산업에 '사회적 책임' 있다
맹꽁이와 해고노동자

한국게이츠지회는 대성산업에 고용을 승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를 인수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공장 부지만을 샀기 때문에 대성산업에 고용승계를 해야 하는 법적인 책무는 없다. 하지만 한국게이즈지회는 “사회적 책무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화요일에(9일) 대성산업 고문이사가 ‘우리가 투쟁하는 바람에 한국게이츠에서 땅을 싸게 내놨는데도 아무도 안 가져가더라. 그래서 샀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부지를 매입했다는 것에서 대성산업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어요. 만약 대성산업이 공장 부지를 안 샀으면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한국게이츠랑 끝장을 볼 건데. 대성산업이 부지를 사는 바람에 문제가 더 어렵게 됐어요.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 문제에서 절대 대성산업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커피 한 잔에도 지구 반대편 커피 생산국 노동자들의 처우와 열대우림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를 깊이 사색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는 최근 ‘ESG’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성산업도 ESG의 가치를 오래전부터 생각한 기업이다. 송해유 수석부지회장은 끝으로 대성산업의 맹꽁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0년대 초에 대성산업이 디큐브시티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맹꽁이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맹꽁이를 확 뒤덮지 않고 50억 원을 들여서 서울의숲에다 이주시키고, 본사 건물 앞에 공원을 지어서 다시 데려왔어요. 맹꽁이 서식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기업이면, 부지 매입하면서 남아 있는 해고자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