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철수·폐업·해고가 ‘코로나19’ 탓? ‘위장 구조조정’에 노동자 죽는다
자본철수·폐업·해고가 ‘코로나19’ 탓? ‘위장 구조조정’에 노동자 죽는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15 18:30
  • 수정 2020.10.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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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산하 5개 지회, “해고 바이러스 막는 새로운 방역 투입해야”
15일 오전 11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재난시기 고용위기 방조하는 문재인 정권 규탄’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구조조정’이라는 바이러스가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코로나19가 발흥한 지 8개월 만에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을 찾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은 15일 오전 11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재난시기 고용위기 방조하는 문재인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 10월 4일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한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사무지회와 자본 철수를 결정한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그리고 불합리한 원하청구조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참석했다.

10월 4일 335명 해고 통보, “살인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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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재앙을 핑계로 올해 칼을 들었습니다. 코로나19을 핑계로 시작된 예고 살인 10월 4일 예고살인이 아닌 살인 면허로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그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이 공장에 모여서 공장 정상화를 외치며 천막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벌써 12일째 모든 조합원이 철야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위성도 없습니다. 공정성도 없습니다. 저희들은 조합원만 전체 해고가 됐습니다. 경영상 이유라고 이야기하지만 울산공장 전체 조합원이 해고됐다는 상황은 공장을 돌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최지훈 대우버스사무지회 지회장은 10월 4일 해고통보를 ‘살인’이라고 말했다. 자일대우상용차는 8월 31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경영상 이유로 인한 386명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했다. 이후 10월 4일 희망퇴직·정년퇴직자를 제외한 356명을 최종해고 했다.

현재 회사는 지회의 반발이 있자 임금 40% 삭감을 조건으로 165명을 재채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지회는 자일대우상용차가 소속된 영안그룹 계열사 노조와 함께 해고 철회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 참고기사 : ‘65년 역사’ 대우버스, 400여 명 대규모 정리해고 그림자

구조조정만 3번째, 한국산연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6년에는 금속노조 조합원인 생산직 사원만 정리해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본 본사에 방문하는 등 1년 넘게 투쟁해 마침내 2017년 공장으로 복직했습니다. 복직 후 3년간 공장이 어렵다며 임금동결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공장 폐업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노동자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안 됩니다.”

김형광 한국산연지회 사무장은 코로나19가 폐업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연은 1974년 일본 산켄전자가 지분 100%로 투자한 전자부품 제조기업이다. 마산 수출자유무역 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올해로 46년째 운영 중인 유서깊은 기업이지만, 지난 7월 일본 산켄 이사회는 ‘자본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산연지회는 일본 산켄이 번번이 자본 철수를 노려왔다고 지적했다. 1996년 민주노총 설립과 동시에 한국산연에 노동조합이 생기자 인도네시아 공장 이전 카드를 제시하면서 1차 구조조정이 발생했다. 이후 2008~2012년 경영 실패에 따른 일부 사업철수 및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2016년에도 구조조정 이슈가 있었다.

김형광 사무장은 외투기업의 일방적인 자본철수를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에 분개했다. 김형광 사무장은 “한국산연 폐업은 계획적이었다. 한국산연지회와의 단협과 OECD 가이드라인도 위반했다”면서, “하지만 외투기업의 횡포를 막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오늘까지도 미비하다”고 비판했다.

공장에 남은 25명의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한국게이츠는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고 매년 성장발전 했습니다. 연 매출 1,000억 원, 순이익 60억 원으로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알짜 우량기업이었습니다. 게이츠 자본은 한국에서 철수한 게 아닙니다. 판매법인은 그대로 두고 생산 공장만 폐쇄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하는 역수입 구조를 형성한 것입니다. 자국민 해고하고 물량 수입을 승인해준 것이 현대차그룹입니다. 아직까지 조합원 25명이 억울하고 부당해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10월 27일에는 공장 출입제한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옵니다.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그대로 둔다면 저희와 같은 노동자들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정민규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원은 느닷없는 한국게이츠 생산 공장 폐업을 황당해 했다. 한국게이츠는 다국적 자동차부품제조기업 게이츠의 한국법인이다. 자동차 및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를 생산한다. 주요 납품처 중에는 현대자동차가 있다.

한국게이츠는 2014년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게이츠를 인수하면서 경영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매출과 실적은 양호했으나 주주배당률을 이익의 98%까지 과도하게 설정하면서 재투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후 2020년 6월 26일 한국게이츠는 본사차원에서 국내 생산 공장 폐업이 결정됐다고 알렸다.

한국게이츠지회는 이번 생산 공장 폐업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국으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해 납품하겠다는 것을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파견 소송 포기 강요받는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현대 위아 평택공장에서는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앞두고 현대자본의 대대적인 탄압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회사 설립 거부하자 일방적으로 평택 2공장을 이전시켰습니다. 평택 1공장도 라인 개설 공사 기간을 틈타 울산 2공장으로 조합원을 전보한 뒤 도급계약 변경됐다면서 조합원출입을 봉쇄하고 새로운 사내하청업체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있는 조합원들만 생산 물량도 없고 일할 자리도 없는 울산공장으로 출근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불법파견 소송 포기 각서를 쓰면 3,000만 원을 주고 자회사에서 채용해주겠다며 온갖 회유와 협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당한 법적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장 밖으로 내몰려 천막농성을 벌인지 오늘로써 146일째입니다.”

김영일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지회장은 현대위아에서 불법파견 소송을 저지하기 위해 자회사 전보를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014년부터 불법파견 소송에 나섰다. 2016년 1심에서 승소하고 이어 2018년 2심에서도 승소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지회는 현대위아가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자회사 설립했다고 주장했다. 자회사로 소속을 옮길 때 불법파견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 공장 이전 핑계로 불법파견 소송 포기 강요? 현대위아평택공장 갈등 지속

부당해고 반발하는 서진이엔지 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현대건설기계 하청업체인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바꾸기 위해서 지난해 금속노조에 가입했습니다. 9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서진이엔지는 해태했습니다. 그 후 단체교섭이 진행되는 중에 폐업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집단해고를 당한 것입니다. 이는 위장폐업입니다.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32명의 노동자들은 78일째 천막투쟁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성호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부당노동행위가 현대건설기계에서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서진이엔지는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의 하청업체다.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지회에 따르면 서진이엔지 노동자는 시급제로 급여를 받는다. 상여금이나 수당도 없다.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이 5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서진이엔지 노사는 9차례 교섭을 이어오다 2월 조정결렬, 5월 파업 등 극한 대치를 벌여왔다. 그러던 중 7월 24일 서진이엔지는 지회에게 코로나19로 인한 물량감소를 이유로 폐업을 통지한 것이다. 이성호 지회장은 “비조합원 직원 약 30명은 그룹사 차원에서 고용승계가 됐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32명은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면서, 부당한 해고라는 것을 밝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경제의 근간은 노동이고 노동은 고용의 유지가 있어야 한다. 당장 정리해고법을 폐지하고 국가적 재난시기 해고를 막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하면서,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강화 ▲기업 인수합병 고용보장, 단협 승계 제도화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화 ▲불법파견 근절 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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