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기업 한국산연 폐업에 눈물밖에 남지 않은 노동자들
외투기업 한국산연 폐업에 눈물밖에 남지 않은 노동자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1.20 19:23
  • 수정 2021.01.20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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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켄, 한국 자회사 한국산연 지난해 7월 철수 결정 … 20일 폐업
노조‧지역사회 반대에도 외투기업 규제 없어 … “청춘 다 바쳤는데...”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2020년 10월 15일 오전 11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재난시기 고용위기 방조하는 문재인 정권 규탄’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지금 그런 걸 물어보시니까 눈물이 나네요. 억울하고 암담하고... 스물다섯 살에 들어가서 진짜 청춘을 다 바친 곳이거든요? 시작도 여기서 했고. 여기서 가정도 꾸리고…. 명절 때 회사에 홍수 나서 물난리가 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진짜 열심히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고. 특근이면 특근, 사람 빠질 때 땜빵이면 땜빵, 이런 거 수도 없이 했지만 돌아오는 결과가 이러니까 너무 억울하고 눈물밖에 안 납니다.”

2003년 4월 한국산연에 입사한 김현진 씨가 흐느끼며 말했다. 김현진 씨가 18년 동안 몸 바쳐 일한 한국산연은 1월 20일자로 폐업했다.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는 외투기업인 한국산연의 폐업이 일방적이며 기획된 폐업이라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지회장 오해진)는 20일 오전 경남 창원 마산자유무역지구에 위치한 한국산연 앞에서 기자회견과 삭발식을 진행했다. 폐업 결정 이후 한국산연은 텅 빈 상황이지만 한국산연지회는 수개월째 회사 앞을 지키고 있다.

“회사는 빈 상태예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2명이 출근을 하긴 하는데 아르바이트 식으로 출근을 한다고 하더라고 하더라고요. 출근을 왜 하냐고 물어보니까 저희들 퇴직금하고 정산을 해야 하는 게 있나 봐요. 청산 과정에는. 그거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도 퇴사를 한 상황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국산연의 모회사 일본 산켄전기는 2020년 7월 9일 지속적인 적자경영을 이유로 한국산연의 폐업을 결정했다. 한국산연지회는 이 내용을 한국산연 경영진으로부터 들은 게 아니라 산켄전기 홈페이지 공시를 보고 알게 됐다. 한국산연지회 전 조합원(15명)은 7월 13일부터 회사 앞에 천막농성장을 꾸렸다. 20일 기준 192일째다.

한국산연의 노사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과 2010년, 2016년에도 엇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모두 ‘경영상황이 좋지않아 투자를 철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특히 극한갈등을 빚은 건 2016년이었다.

산켄전기는 2016년 2월 한국산연의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3월 생산부문 폐지, 10월 생산직 노동자 69명을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국산연지회는 246일간의 투쟁을 벌였다. 끝내 한국산연지회는 원직복직에 성공했지만 희망퇴직 등으로 69명의 노동자는 17명으로 줄어든 뒤였다.

“그때는 생산부문 폐지해서 저희 조합원들만 해고를 했었거든요? 관리자들은 있었으니까. 끝까지 싸우면 우리가 복직할 수 있을 거라는 신념과 의지가 강했다고 해야 되나? 회사가 있으니까 당연히 싸워서 이기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심정이 있었고요. 지금은 관리자들도 완전 정리를 하고 아예 없는 상태여서 마음이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

한국산연지회에게 이번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에 회사가 더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의 당사자가 빠져 버린 셈이다. 여기서 따져볼 문제는 정말 자본 철수를 감행할 정도로 한국산연의 경영이 나빴냐는 것이다. 한국산연지회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산연지회는 “산켄전기는 한국산연의 채용규모나 생산량에 비춰볼 때 나올 수 없는 연간 50억 원의 적자를 주장하면서도 경영상태 공개 요구는 거절한 채 기획된 적자를 내세워 청산을 서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해진 한국산연지회 지회장은 “공장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서 “산켄전기가 2018년 160억 원을 투자해서 EK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또한 LG와 산켄전기가 한국에 합작법인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켄전기의 투자여력은 충분하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한국산연’에는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는 주장이다.

ⓒ 금속노조
ⓒ 금속노조

“외자기업과 관련해서 정부에서는 법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산자부 장관을 한 번 만난 적있습니다. 산자부가 알아보겠다고 답변서가 왔었을 때 지회에서 이야기하기로는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외자기업과 관련한 규제 법안이 전무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법에 대해서 전혀 알지는 못하지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투기업’이라는 한국산연의 특성 탓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 배경에는 현행 제도상 외투기업 철수와 관련한 규제가 전무하다는 것이 있다. 김형광 한국산연지회 사무장은 “가까운 중국만 봐도 외투기업이 와서 그 나라를 떠날 때 설비나 자료를 두고 가게 하는 등 여러 제재가 있다”면서,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외국인투자유치법을 봐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일본산켄이 서류 한 장 내고 떠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한국산연지회는 “20일 폐업으로 법인격이 말소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산연의 본사인 산켄전기가 있고, 외투기업 철수에도 규제방안을 외면하고 법안을 표류시킨 국회와 정부, 지자체가 있다”면서 “기어이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