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저지르고 해외 도피, 외투기업 전횡 어떻게 막을까
불법 저지르고 해외 도피, 외투기업 전횡 어떻게 막을까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7.14 10:50
  • 수정 2022.07.1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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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대규모 해고, 노조탄압 스스럼 없는 외투기업
핀셋규제보단 모든 자본에 적용할 제도개선 필요
교섭·투쟁 위해 본사에 사용자성 적용시켜야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외국인투자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외국인투자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의 ‘먹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매각·폐업을 단행하는 일부 외투기업들은 대량 해고와 노조탄압, 기술·자본 유출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외투기업의 ‘먹튀’가 확산할 거란 전망도 있다. 산업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사업이 축소·전환되는 과정에서 외투기업의 구조조정과 투자 철수가 늘어날 거란 주장이다. 합당한 이유 없이 외투기업에서 매각·폐업을 시도할 경우 이에 대응할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 12일 국회에서 ‘외국인투자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다수의 외투기업 노동조합들이 참여해 현장에서 경험한 문제점을 발표했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제시됐다.

토론회는 양대 노총과 국제사무노련 한국협의회(UNI-KLC), 참여연대, 김주영·류호정·박대수·신동근·우원식·윤미향·이수진(비례) 국회의원 등이 공동 주죄했다. 민주노총 외투기업노조연석회의와 한국노총 제조연대 외투기업 노조협의회가 공동 주관했다.

인위적 적자구조 만들고 사업 철수

한국산연은 ‘고의 적자’를 통해서 폐업에 이른 외투기업 사례로 꼽힌다. 모회사인 일본 산켄전기는 한국산연에 부가가치가 적은 제품의 생산을 몰아주며 2017년부터 약 3년간 5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산켄전기는 적자와 코로나19 등에 따른 경영악화를 빌미로 2020년에 한국산연의 폐업을 결정한 바 있다.

차량용 와이퍼 부품을 제작하는 한국와이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와이퍼는 덴소와이퍼시스템즈(DNWS)의 자회사다. DNWS는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인 덴소의 계열사이며, 두 회사가 한국와이퍼의 지분을 100% 갖고 있다. 한국와이퍼는 현대차와 기아에 제품을 공급하는 2차 벤더로, 1차 벤더이자 덴소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의 발주를 받으면 부품을 생산한다.

지난 7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내년 1월부터 회사가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적된 적자가 이유였다.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280여 명의 임직원은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노동조합은 덴소와 모회사가 ‘의도된 적자’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한다. 2012년 덴소는 부가가치 창출이 가장 낮은 부품(와이퍼 암)의 생산을 일방적으로 한국와이퍼에 맡기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 창출이 높은 부품(와이퍼 블레이드)을 일본 덴소와이퍼에서 생산토록 했다. 이로 인해 한국와이퍼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한국와이퍼·덴소코리아·덴소와이퍼·덴소 등 4개 사는 국내 신차 수주를 중단하기도 했다. 회사가 신사업을 모색하던 상황도 아니었고, 기존 차량이 단종되면 생산할 부품이 사라지니 폐업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고용불안을 우려한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덴소·덴소와이퍼·덴소코리아·한국와이퍼 등은 지난해 5자 교섭을 통해 고용보장 안 마련에 합의하고. 청산·매각·공장이전·구조조정을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하도록 했다. 하지만 사측은 합의안 시행을 미루다 9개월이 지난 시점에 청산을 발표했다.

또한 2차 벤더인 한국와이퍼는 매출 중 약 80%를 덴소 계열사에 의존하며, 그중 70%가 덴소코리아의 발주로 발생한다. 이익률을 올리려면 덴소코리아가 더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매입해야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덴소코리아는 납품 과정에서 자사의 창고를 거쳐간다는 명목으로 한국와이퍼로부터 관리비를 받는다.

이처럼 한국와이퍼는 독자적으로 이윤을 내기 어려운 형태다. 최근 5년간 한국와이퍼의 매출원가율은 평균 99.3%로, 아무리 판매관리비가 적더라도 흑자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매출원가율은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번 돈인 매출액에서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에 들어간 비용(원가)의 비율이다. 매출 원가율이 높아지면 수익성이 낮아진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은 “외투자본의 운영방식상 원래부터 독자적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 만든 회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의 재무 상태만 놓고 청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러한 구조적인 현황을 외투자본의 모기업 스스로가 인정한 가운데 노사 간의 고통 분담으로 체결된 고용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불리하면 도망가는 사장들,
대립적인 노사관계 만들어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프랑스에 본사를 둔 외국계 주류회사 페르노리카코리아는 극심한 노조탄압을 겪었다. 시작은 2016년 장 투불 전 대표이사가 취임한 이후부터다. 회사는 팀장급의 노조 가입 차단을 모의하고 노동조합 위원장을 15개월간 대기발령했다. 2019년 1월 임페리얼 브랜드 매각 후 130여 명 정리해고를 단행할 당시, 대상자의 90%가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다. 다양한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법 위반 수사를 받게 된 장 투불 전 대표이사는 2021년 5월 해외로 출국해 한국에 오지 않았고, 같은 해 7월 싱가포르 지사장으로 발령됐다.

노조탄압은 외투기업과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문제점 중 하나다. 외투기업 노동조합들은 대표이사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외투기업의 특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박기일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외국인 대표이사들은 3~5년간의 임기만 끝내면 대부분 글로벌 본사가 있는 본국 혹은 다른 나라의 지사로 발령이 나게 된다”며 “법을 무시하며 대한민국의 노사 문화를 악화시키고 대한민국의 국민인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조합원 대상 징계, 최저등급 급여 적용, 승진 대상에서 제외 등을 겪은 JTI코리아노동조합 창종화 위원장의 생각도 같았다. 창종화 위원장은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을 대형로펌에 지불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자신들의 임기 동안에는 어떠한 책임이나 처벌 없이 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면 된다고 생각으로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은 “노조탄압으로 형사 처벌이 예고되더라도 해외 도피로 모면할 수 있다”며 “형사권이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적 처벌 부담 없이 부당노동행위 등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고 했다.

외투기업이 외국 본사의 영향을 받아서 교섭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은 “페르노리카코리아 대표이사와 교섭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본사가 지령을 내리면 한국에선 따를 수밖에 없다. 아시아태평양 본사는 프랑스 본국에서 지령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렇다고 프랑스 가서 교섭할 수 없는 노릇이다. 노사상생과 자율에 기반한 교섭은 허황된 얘기란 게 대한민국 외국계 기업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홍석만 연구실장은 “해외 모기업과 한국 법인은 일종의 (글로벌) 하청 관계를 갖기 때문에, 한국 법인 소속 노동자는 정규직이더라도 모기업 전체에서 보면 하청 노동자가 된다”며 “노사관계에서도 ‘원청 교섭’ 문제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핀셋규제보단 모든 자본에 적용할 제도개선 필요”
“교섭·투쟁 위해 본사에 사용자성 적용시켜야”

외투기업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지만, 그를 해결하기 위해 외투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법·제도 마련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통상조약 위반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장석우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외국계 자본에만 핀셋 적용되는 법·제도적 규제를 도입할 경우, 한국이 세계 각국과 체결하고 있는 투자조약상 내국민대우나 최혜국 대우, 공정공평대우 원칙 등에 위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그 경우 국가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절차(ISDS)에서 외국계 자본에 향후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모펀드와 같이 자본의 국적이 모호한 경우도 상당히 많을 수 있으니 노동관계법과 상법 개정 등의 모든 자본에 적용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장석우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상법, 채무자회생법 등을 개정해 ▲정리해고에 대한 사용자 책임 범위의 확장과 요건 강화 ▲지배주주 책임 강화 ▲고용 영향 큰 기업의 폐업·청산 규제 마련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투기업 모회사나 본사를 사용자로 규정해 노동조합의 교섭과 투쟁이 가능하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종래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사업 전략과 생산 물량에 대한 결정 및 배정 권한이 해외 본사에 있다는 점이었다”며 “한국 자회사는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기에 노동자들의 끝없는 양보를 요구해온 근거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노조법 2조를 개정하더라도) 이를 국내 원하청 관계를 떠나 국내에 자회사를 둔 해외 모기업이나 본사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ILO 결사의자유위원회 제소 등의 방식을 통해 다퉈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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