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40일 넘긴 와이퍼분회··· 끈질기게 쌓이는 농성의 시간
단식 40일 넘긴 와이퍼분회··· 끈질기게 쌓이는 농성의 시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12.19 01:46
  • 수정 2022.12.19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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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43일차, 한국와이퍼노동자들 일본으로 투쟁 확장
[인터뷰]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려가 무색했다. 단식 40일차를 하루 앞뒀지만 밝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키 153cm에 40kg까지 몸무게가 줄어든 작은 체구는 여전히 생생한 에너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 힘 뒤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더 버텨야겠단 마음밖에 안 든다”는 최윤미 분회장은 조립공정 담당으로 한국와이퍼*에서 18년간 일했다. 그런데 지난 7월 한국와이퍼는 미래차 전환 등을 이유로 청산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와이퍼 노사는 지난해 9월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명시된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일본 자동차 부품기업 덴소가 100% 지분을 가진 한국와이퍼는 덴소코리아를 통해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2차 벤더다. 

게다가 덴소코리아의 와이퍼 사업부(한국와이퍼·덴소코리아 화성공장·EHE) 세 곳 중 80% 이상 높은 조직률로 노조가 활동 중인 한국와이퍼를 뺀 두 곳만 현대차 1차 벤더인 DY오토가 매수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한국와이퍼의 청산계획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기획청산’이란 의혹을 받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도 특별근로감독을 진행 중이다. 

국회나 정부가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해고일(31일)은 2주도 남지 않았다. 해고를 막기 위해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7일 국회 앞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농성을 한 지 40일이 흘렀지만 투쟁 중인 조합원 222명의 고용을 지키기 위한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통화 뒤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최윤미 분회장은 “우리가 정당한 요구를 할수록 우리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어갈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안정, 평화와 꿈꿔온 미래가 무너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단식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더 버텨야겠단 마음밖에”

- 단식농성 40일이 넘어간다. 어떤 마음인가? 

사측이나 고용노동부가 단식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단식이 끝나길, 투쟁을 포기하길 바라는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버텨야겠단 마음밖에 안 든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는데 아이들(6살 아들·12살 딸)이 많이 보고 싶다.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지 벌써 40일이 된 거다. 

항간에선 청산하겠다는 회사를 상대로 이렇게 투쟁하려는 게 ‘몸값을 올리려는 거다’, ‘기업에서 더 뜯어내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이렇게 아이들과 생이별할 수 있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돈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행복은 행복한 부모가 만드는 거다. 행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은 안정감이다.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일터가 사라지면 가족의 평화가 무너진다. 가족의 평화를 바탕으로 꿈꿔온 미래도 무너진다. 결국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거다.  

40일 넘긴 단식농성
정부와 회사는 무엇을 했나?

- 한국와이퍼분회는 정부의 역할도 촉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조합은 한국와이퍼뿐 아니라 실제 사용자인 덴소코리아도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등에서도 덴소코리아와 한국와이퍼 간 내부 기밀문서가 드러났다. 덴소코리아는 한국와이퍼 노사관계를 직접 지배 개입해왔고, 한국와이퍼의 단체협약 한 구절 한 구절을 결정해왔단 과정이 문서로 남아있다. 한국와이퍼의 기획청산, 각종 노조법 위반행위는 덴소코리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결이 어렵다. 약속과 법을 어긴 건 기업인데,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이 기업과 의견을 조율해서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한국와이퍼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나? 

회사는 일방적으로 천막농성장에 한 번 찾아와 단식 중단을 협박하듯이 요구했다. 회사는 (고용보장 합의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부제소 합의를 전제로 한 조기퇴직제도를 운영한 적이 있다. 이는 결국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식농성 기간에 또 조기퇴직제도를 시행했다. 회사가 천막농성장에 들른 지 3~4일 만이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긴급 중재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특별근로감독을 하고 있는 조사관이 ‘회사가 불법행위를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처벌 내용은 같다. 가중 처벌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더라. 기가 막혔다.  

ⓒ 노동과세계
국회 앞 한국와이퍼분회 농성장 ⓒ 노동과세계

끈질긴 농성장에 모이는
끈질긴 연대

- 노동조합은 투쟁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 

조합원들은 하루 2시간 일하고 6시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국회, 세종시 고용노동부, 덴소코리아의 와이퍼 사업부 매수처인 DY오토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새벽에 안산 고가에서도 우리 상황을 알리고 저녁엔 안산 시내에서 촛불집회를 한다. 

- 투쟁 초기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은 230명(조직률 약 82%)이었다. 현재까지 투쟁 중인 조합원 수는?

이번에 조기퇴직에 응한 8명을 뺀 222명이다. 

-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조합원들의 이탈이 거의 없다. 

누가 봐도 기업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와 언론 보도를 거치면서 이는 더 명백해졌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고용노동부와 사측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회사의 잘못이 낱낱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더라.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서주는 안산 시민들, 노동계 동지들이 있다. 또 덴소 먹튀 방지법 제정을 고민하고 고용노동부를 압박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속속 모여서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다. 이들의 연대는 투쟁 대오가 더 단결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 단식농성장에 연대하러 온 이들 중 떠오르는 사람은?

시흥 시민 한 분이 편지를 써서 오셨다. 한국와이퍼가 안산에 있지만 노동자들은 시흥에도 많이 산다. 몰라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그런 분들에겐 책임이 없는데 마음이 아팠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지만, 알고 난 뒤에 우릴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는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금속노조 조합원 중 내년에 정년퇴직하는 분이었다. 내가 회의하는 동안 계속 기다리다가 투쟁기금을 전하고 돌아간 분도 기억난다. 회사 조퇴하고 온 조합원도 있었다. 

어떤 언론사에서 단식농성장에 취재를 왔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한 시민이 우리 대자보를 보고 취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보를 해서 온 거였다. 열거하기 어렵게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 앞서 단식은 참을 만하다고 말했는데, 주변에선 건강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활동 단식이라고 표현하는데 끼니 때마다 효소를 먹고 있다. 소금과 물도 먹는다. 나는 모든 음식을 끊고 여기에서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수 없다. 단식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최소한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도 이렇게 농성장에 앉아 있는 건 편한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단식 시작 전에 평소 몸무게(53kg)에서 한 달간 6kg 빠졌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됐다. 상황이 답답하니까. 그 상태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먹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키는 153cm에 40kg 정도인데 몸무게가 더 빠지면 위험할 순 있을 거다. 아무튼 그렇다. 그저 지금 상황이 풀리지 않고 있어서 답답할 뿐이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을지로입구역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금속노조 사전대회'에 참가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이 가면을 쓰고 피켓을 몸에 걸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1월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을지로입구역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금속노조 사전대회'에 참가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이 가면을 쓰고 피켓을 몸에 걸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일본으로 넓히는 투쟁
고용승계 방안 나와야 단식 끝낼 수 있어

- 향후 투쟁 계획은?

우리 상황을 일본에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오는 20일부터 1차 일본원정대가 일본으로 출발한다. 일본 덴소 본사 노조에도 공문을 보내서 면담을 요청했다. 공문엔 덴소 자본이 노조와 약속을 어기고 일방적인 회사 청산을 진행한다는 데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일본에 계속 알려 나가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사회가 신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 투쟁에 공감을 잘해줄 거라고 하더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일 국회의원 문화교류 차 지난 12일 일본에 갔는데 일본 의원들에게 우리 상황을 알리고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언급하겠다고 했다. 

- 단식농성 해제 조건은 여전히 덴소코리아, DY오토와 교섭 테이블이 마련되는 건가?

그렇다.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방안이 나와야 단식을 끝낼 수 있다. 그런데 DY오토는 ‘한국와이퍼를 따로 인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한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비공식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은? 

노동자들은 무쇠 같다고 생각한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 강해지고 달궈지는 존재다. 덴소 자본이 우리를 아무리 흔들어도, 고용노동부가 뒤에서 노사 합의를 시키려고 해도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정당한 요구를 할수록 우리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이라도 자본과 정부가 올바른 해결 방안을 가지고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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