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이퍼, 경찰 지원 힘입어 생산설비 반출 완료
한국와이퍼, 경찰 지원 힘입어 생산설비 반출 완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3.15 18:34
  • 수정 2023.03.16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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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부당하다는 법원 판정받은 한국와이퍼
노조 저지에도 15일 생산설비 반출해
업무방해 막는다며 경찰은 600여 명 현장 배치
ⓒ 금속노조
15일 한국와이퍼가 조합원들의 반대를 막고 생산설비를 빼내고 있다. ⓒ 금속노조

‘위장청산’ 의혹을 받으면서 ‘집단해고 사태’를 일으킨 한국와이퍼가 15일 공장 생산설비 반출을 완료했다. 경찰은 공장을 지키던 노동자들을 막고, 길을 터주며 회사의 설비 반출을 도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분회장 최윤미)는 이날 오전 7시경부터 회사가 설비 반출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분회는 “반출 작업자 15명보다 경찰 약 600명이 먼저 현장에 투입됐다”며 “경찰은 물리력을 행사, 조합원 다수가 부상당하고 일부 노동자가 병원에 이송된 일까지 발생했다”고 전했다. 

앞서 한국와이퍼는 노조와 고용안정협약(단체협약)을 맺은 지 1년도 안 된 지난해 7월 청산계획을 밝혔다. 당시 한국와이퍼 직원은 약 280명, 금속노조 조합원은 약 230명이었다. 집단해고 사태에 국회는 국정감사에서 한국와이퍼의 위장청산 의혹을 제기했고,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하고 있다. 또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은 한국와이퍼가 ‘단체협약 절차에 따른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조합원들을 해고해선 안 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한국와이퍼는 법원의 이 결정에 따라 해고 통보를 보류했다. 

그런데도 한국와이퍼가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공장 생산설비를 반출한 근거는 수원지방법원의 지난해 11월 판정이다. 당시 수원지방법원은 회사 재산 매각 등의 금지 여부는 “보다 면밀한 심리를 통해 정해져야 할 사항”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한국와이퍼는 노동자들을 해고하진 않겠지만, 청산 절차는 계획대로 진행해도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 판결에 이의신청해 항고한 상황이다. 고용안정협약에는 ‘회사가 청산, 매각, 공장 이전을 할 경우 반드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금속노조는 “한국와이퍼 노사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회사가 설비 반출을 시도하는 것은 곧 노동자 고용을 위해하는 것으로 합의에 어긋난 행위에 해당한다”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 약 200명과 안산지역 금속노조 간부들은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설비 반출을 막기 위한 투쟁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이어 “회사 관계자는 오늘 설비를 반출해 창원으로 옮길 것이라고 현장에서 밝혔다”며 “한국와이퍼는 창원에 위치한 ㈜엘소 공장에서 불법적인 대체생산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 50분경 생산설비는 회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권오진 금속노조 조직부장은 “한국와이퍼 공장 두 곳 중 한 곳은 쇠를 녹이는 주물 공장 형태고, 다른 한 곳은 조립·생산이 이뤄지는데 조립·생산 공장에 있는 모든 설비를 회사가 빼간 것”이라고 전했다.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15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국회에서 '한국와이퍼 대량해고 사태 관련 공권력 투입 규탄 및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와이퍼 대량해고 사태의 본질은 사측의 고의적자 및 기획청산 의혹”이라며 “한국와이퍼뿐만 아니라 일본덴소그룹의 계열사들까지 연대보증하며 노동자들과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방적 청산 절차와 대량해고를 강행한 사안이다. 결국 일본기업이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와이퍼 공장에 대한 대규모 공권력 투입은 왜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으로 출국한 오늘인가”라며 “일본 정부가 불편할까 봐 일본기업에 맞서는 눈엣가시 같은 한국노동자들을 정리해준 것인가. 경찰은 왜 오늘 강제진압작전에 가까운 행위를 누구의 지시로 한 것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따졌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설비 반출 저지가 업무방해 혐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조처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경찰이 곧 직무집행법 제6조에 따른 ‘즉시 강제’를 실시한 것”이라며 “즉시 강제는 범죄 행위가 목전에 있다고 판단될 때 집행하는 것인데, 노동자들의 반출 시도 저지가 범죄 행위의 목전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번 공권력 행사는 위법하다”고 반박했다. 

금속노조는 오는 16일 오전 한국와이퍼 본사 앞에서 ‘한국와이퍼 설비 반출 경찰 공권력 폭력 침탈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한편 설비 반출이 끝난 뒤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했던 조합원 4명을 풀어줬다.

ⓒ 금속노조
15일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생산설비가 빠져나가고 있다. ⓒ 금속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