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김호규 집행부 4년, 어떤 ‘디딤돌’ 남겼나
금속노조 김호규 집행부 4년, 어떤 ‘디딤돌’ 남겼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2.31 12:50
  • 수정 2022.01.05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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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환 참여, ‘시기상조’ 아닌 ‘준비 부족’
퇴장하는 87년 세대의 운동 전망 ‘집단적으로’ 논의하자

[인터뷰] 김호규 전국금속노동조합 10기·11기 위원장

김호규 금속노조 10기·11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2017년 10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금속노조 10기와 11기의 4년 3개월은 ‘김호규 집행부’로 기록될 예정이다. 지난 4년 동안 금속노조를 포함한 한국사회는 급격하지만 조용한 변화 속에 있었다. 산업적으로는 ‘제조업의 위기’라는 의제가 ‘4차 산업 혁명’을 거쳐 ‘디지털전환’과 ‘산업전환’으로 변모했고, 사회적으로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87년 세대’의 점진적 후퇴가 시작했다.

여기서 김호규 집행부는 10기에서는 ‘구조조정 개입’, 11기에서는 ‘산업전환 참여’를 내걸었다. 변화의 흐름 속에 금속노조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전환의 흐름은 빨라지고, 노동의 참여는 아직도 멀다. 금속노조의 지난 4년은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할까. 김호규 전 위원장은 ‘세상 탓’보다는 “우리의 실력과 조건”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정년이 1년여밖에 남지 않은 김호규 전 위원장과 함께 금속노조의 지난 4년을 되짚어 봤다. 인터뷰는 23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안타까움”

- 임기를 마친 소감이 듣고 싶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마디로 얘기하지 못할 것 같다. 여러 방면에서 안타깝다. 사안별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임기 동안 전체적인 기조를 볼 때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더불어 이를 돌파할 금속노조의 조건과 상황도 잘 맞지 않았다. 뭔가 해야 하는데 발만 동동 구르는 느낌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굳이 표현한 게 안타까움이다.

- 안타까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2017년 10월 1일부터 금속노조 10기 임기를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임기 시작 전부터 이미 수많은 사람이 구조조정을 당했다.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고령자, 간접부서, 여성 노동자 등 6~7,000명이 희망퇴직했다. 하청업체, 물량팀, 기자재업체, 자영업자 등 모두를 고려하면 울산 동구에만 정주 인구가 3만 명 줄었다. 현대중공업이라는 대형 조선소도 그런 상황인데, STX조선, 성동조선 등 중소형 조선소는 더욱더 힘들었다.

금속노조의 본령은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싸움의 동력을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할 것인지, 더불어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 상황이 단순히 싸운다고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컸고 안타까웠다. 단위 사업장에서 뺏기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구조조정 싸움을 경험하면서, 냉정하게 말해서 기업별 교섭의 실효성이 낮다는 걸 느꼈다.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단계였다.

특히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한 기업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조선산업이 처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개입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금속노조 10기 당시 화두였다. 기업을 뛰어넘는 교섭까지는 안 된다더라도 최소한 협의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조선업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2018년 5월)라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 이전인 2018년 1월 산업은행의 관리체제에 있던 금호타이어의 매각 문제가 먼저 터졌다. 금호타이어는 더블스타라는 중국계 기업에 인수됐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 금속노조와 금호타이어지회는 해외매각은 안 된다고 엄청나게 싸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외매각이 결정됐다. 금호타이어 매각 주체는 4명이었다. 금호타이어 노사와 매각 주체인 더블스타, 그다음이 매각을 담보한다는 취지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있었다. 난생처음 경사노위가 해외매각에 개입하는 일을 목격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여기서 키워드는 경사노위와 산업은행이다. 경사노위가 됐든 산업은행이 됐든 단위 사업장의 문제에 노사 대등한 관점으로 일관되게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 2020년 초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추진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로 주제가 이어지는 듯하다. 당시 금속노조는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진통 속에서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경사노위의 민주노총 참여를 추진했다. 2019년부터 논의를 시작했고, 2020년에 실제 논의 테이블을 만들었다. 나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경사노위 참여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민주노총 내에 교섭주의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투쟁만 하자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자는 생각이다. 최소한 활용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이고, 우리 실력은 어떠하냐는 문제가 남는다.

당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안이 나오는 과정에서 철저히 우리 실력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용론에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놓친 지점이 제법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조건과 실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활용론을 추진한 게 독이 돼서 다가왔다고 바라보고 있다. 그런 면들이 안타깝다.

더불어 경사노위가 당시 금속노조가 요구한 최소한 3개의 제조업 업종별 위원회 구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로서 경사노위가 민주노총 및 산하 조직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파트너 개념으로 받아 줘야함에도 오히려 의도적으로 반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사노위의 필요성과 활용론을 적극적으로 얘기했던 나로서는 결론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게 됐다.

 

“참여로 조합원들에게
어떤 희망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 금속노조 11기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당선되자마자 터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 대의원대회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기존 사업에 더해 갑작스레 코로나19 대응도 준비해야 했다. 한편으론 구조조정보다 더욱 힘들었다. 애초 계획했던 걸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금속노조 10기 집행부 슬로건이 ‘구조조정 개입’이었다면 11기에서는 ‘산업전환 참여’였다.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모티브는 아주 단순하다. 함께 살자는 거다. 노조 운동을 30년간 하다 보니, 싸우는 것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코로나19 상황과 급속한 기술 발전 흐름에서 우리도 참여해서 할 얘기를 하자는 거다.

먼저 구조조정 관련해서 기업이든 정부든 다 준비해놓고 우리에게 통보하는 방식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거다. 한국게이츠 같은 상황 만들지 말자는 거다. 자동차 산업전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수소차로 간다는 것을 뻔히 다 안다. 이에 따라 자동차 부품수가 줄어든다는 것도 안다. 가만히 있는 게 바보 같은 짓 아닌가.

산업전환 참여는 구조조정 개입보다 좀 더 확대된 의미의 사전 개입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노동조합도 함께 한다고 했지만 정부와 기업이 아직까지 믿지 않는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의 실력이 부족하고, 조건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력도 갖춰야 하고 조건도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참여를 통해서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김호규 금속노조 10기·11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개인적인 가설이지만 노조가 있어야 회사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경쟁력은 이윤을 내는 문제와는 다르다. 노동조합이 자극이 된다는 거다. 현대자동차는 컨베이어와 관련한 모든 합의를 대의원과 한다. 초보적인 단계지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방관하거나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 아니다. 이런 관심은 100% 품질과 연결된다. 현대자동차의 컨베이어 노사 합의가 이런 관심을 만든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산업전환에서 노조의 참여를 말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노동조합이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노조 밖에 있는 사람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전환 과정에서 그냥 전부 다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센터다.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면 정비 일감이 크게 줄어든다. 여기서 ‘자동차 노동조합이 왜 그것까지 고민해야 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고민해야 노조의 사회적 이미지도 ‘귀족’에서 탈피할 수 있다.

-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무산된 이후, 금속노조는 산업전환 참여를 위한 여러 시도를 진행했다. 모든 교섭 단위에서 ‘산업전환 협약’을 주장한다든지, 국민동의청원을 통해서 산별교섭 법제화 및 공동결정법 제정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국민동의청원 10만 명을 달성하지 못했다. 내부적으로 대중적인 언어 표현을 하지 못한 점, 간부들과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에게 산업전환 참여에 대한 가치를 잘 설명하지 못한 점이 있다. 조합원들한테 진정으로 다가가는 활동가가, 간부들이 별로 없었다는 거다. 내부 평가는 혹독하게 받아도 좋다. 그러나 공동결정법 등 ‘산업전환 참여’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기상조가 아니라 준비 부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 민주노총은 공동결정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지역 업종별 노사정 협의체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후유증 때문에 해당 조항이 논란이 됐다. 노사정협의체라는 게 제2의 경사노위가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지역별, 업종별로 공동결정을 하려면 정부가 들어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논란 끝에 결국 민주노총은 공동결정법 추진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직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노사정 협의체 문구 하나 때문에 민주노총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중앙 교섭 차원에서 산업전환 의제를 끌어냈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초보적인 단계지만 대한민국의 노조 운동에서 처음으로 노사 간 기후위기 대응 선언을 만들어냈다. 중앙교섭 차원에서 노사 간 상견례도 하고 노동조합이 추천한 강사에게 교육도 함께 받았다.

기업별 노사관계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여러 방향으로 선회하려는 시도와 노력이라고 본다. 내가 잘 쓰는 표현처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한 발이라도 디딤돌이라도 놓을 수 있는 역할을 한 점에 대해서 조직 내외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별화 내지 파편화의
반대말은 노조 중심성“

- 2017년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조합원의 개별화를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현재 현장은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
(▶관련기사 : 조합원 눈높이에 맞는 투쟁을 약속한다)

아직은 진행형이라고 본다. 개별화의 의미는 노동조합의 가치가 자기 사업장에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금속노조 중앙이 가장 멀다. 조합원 입장에서 자기 사업장 지회장과 대의원이 눈에 제일 잘 띈다. 그다음이 지부장(기업 지부장은 또 다르지만), 금속노조 임원, 사무처다. 물론 사안별로 다를 수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집중도는 100점 만점으로 봤을 때 50점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이 조합원에게 있는 건 아니다. 공동결정법 10만 명 청원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가 조합원의 탓에 있지 않다고 본다. 철저하게 나를 포함한 간부들 내지 활동가들이 조합원에게 그 가치를 심어주는 데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대안으로 금속노조 12기부터 간부 의무교육이 시행될 예정이다. 금속노조 10~11기 동안 준비한 내용이다. 금속노조 12기부터는 위원장, 지부장, 지회장, 임원 전체가 6개월 안에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차기에 출마할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의무교육을 통해 금속노조가 가져가야 할 지향점에 대한 내부 동의를 만들어야 갈 수 있다고 봤다. 의무교육은 최소한 금속노조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가이드다.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다가가야 개별화 내지는 파편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정년연장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평균적으로 대부분 다 정년연장을 요구한다. 정부에서도 늘어난 평균 수명과 20~30대 인구 감소로 4대 보험 재정 문제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연금 지급 시기 유예나 연금 수령액 감축 등도 이야기되고 있다. 연금 고갈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정년연장뿐만 아니라 그에 파생되는 부가적인 문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노동조합도 고려해야 한다. 전체 국민의 시각에서도 수긍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정년연장의 내용을 주도하고 끌고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조합원에게 정년연장이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전체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자는 거다.

다른 사례로 하후상박이 있다. 하후상박은 철저하게 하박상박 당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후상박의 가치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노동운동 책자에만 나와 있는 가치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나라 노조 운동은 어렵다고 본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2000년대 초반 주40시간을 시행할 때 금속노조가 현장을 설득하는 핵심 키워드는 ‘토요일 특근’이었다. 단체협약으로 따내면 주휴일인 일요일만 특근하는 게 아니라 토요일도 특근할 수 있다. 즉 임금 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주40시간에 동의한 측면도 있었던 거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는데 노동시간을 더 늘려버린 결과로 다가왔다.

노조 운동은 내 이해관계만을 보는 게 아니다. 노조 운동이 인간과 노동의 해방을 얘기한다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볼 수 있도록 조합원의 눈높이를 맞춰가야 한다. 이 작업이 지금 방치돼 있다. 이런 모습이 내게 개별화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개별화와 파편화에 반대되는 말은 노조 중심성이라고 본다.

- 1970~80년대는 역동의 시기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굵직굵직한 변화가 많이 있었다. 다만 현재로 오면서 역동성이 점차 줄어가는 것 같다. 그런 데서 오는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나?

현장에서 제일 놀라웠던 것 중에 하나는 스포츠 토토가 유행한 거다. 스포츠 토토를 하려면 분석을 해야 한다. 분석하려면 정보가 많아야 되니 스포츠 신문을 쫙 펼쳐 놓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조합원들이 많이 무료한 거다.

우리 세대가 무료할 때는 같이 어울렸다. 산도 다니고, 미꾸라지도 잡으러 다니고, 낚시도 하면서 지냈다. 우리 세대는 선배 세대들하고 같이 움직였지만, 지금은 사회문화적으로 콘텐츠가 워낙 다양하다. 그런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젊은 사람들이 신나고 재미나게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쫀다’고 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예전에는 가족들끼리도 함께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나눴다. 그래서 투쟁할 때면 가족대책위도 결성해주기도 했다. 다만 이런 방법이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87년 세대, 이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 30년 노동운동을 되짚어볼 때 전환점이라고 기억되는 지점이 있나?

사건적인 전환점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나 98년 정리해고 투쟁이었다. 하지만 ‘노조 운동 진짜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을 본격적으로 펼친 건 사실 91년, 92년, 93년, 현총련(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공동투쟁 이런 과정들이었다. 노조 운동하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건 교육이었다. 90년 현대정공 입사 후 91년 투쟁을 겪으면서 교육 사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현대중공업의 금속노조 전환을 위해서 2011년부터 6년 동안 교육한 경험도 기억도 많이 남는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금속연맹 사무처장직(2002~2005년)을 수행할 때 제명했던 조직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김호규 금속노조 10기·11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 정년까지 1년여 남은 것으로 안다. 남은 1년 동안은 현장에서 일할 생각인가?

재판이나 조사가 아직 많이 남았다. 올해 코로나19 집회금지 때문에 워낙 건수가 많다. 병합이 안 되면 월차를 모두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든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 일단 건강하게 잘 사는 게 목표다. 혹시나 교육 요청이 오면 응할 생각이지만 공식적인 직책은 맡지 않을 생각이다.

- 금속노조 11기 공약으로 퇴직자 재조직화가 기억에 남는다. 퇴직 이후 삶을 계획한 게 있나?

퇴직자 재조직화에 대해서는 다음 집행부에서 추진할 것이다.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다만 일자리나 월급 이런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87년 세대들이 이후 어떠한 운동 전망을 가질지 집단적으로 정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퇴직자 조직화가 아니라 ‘재조직화’라는 말을 쓴 이유다. 재조직화의 핵심은 ‘너는 어떤 삶을 살래?’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고 본다. 단순하게 귀농 후 전원생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형식이든 노동조합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역할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도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얼마 전 공공운수노조에서 정년퇴직한 동지는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국어 교육을 하려고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땄다.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국 노동운동을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가족별로 금속연수원을 찾는 조합원들에게 할 수 있을 노동 인권 감수성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