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자, 노동 없는 한 달 보냈다
윤석열 당선자, 노동 없는 한 달 보냈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4.11 11:42
  • 수정 2022.04.12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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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당선 직후 경제단체 회동·행사 참여...노동계 만남은 불투명
“반노동 정책 관철시키려 하면 노정 갈등 첨예해질 것”
3월 18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재계는 가까이, 노동계는 멀리. 20대 대통령 당선 후 30일이 다가오는 시점까지 드러난 윤석열 당선자의 행보다. 20대 대통령직에 당선된 지 10여 일 만인 3월 21일,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6단체장과 오찬 회동을 했다.
*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경제단체장들은 이 자리에서 건의 사항을 전했다. △사업장 점거 등 노동조합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규정 완화 △주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 구분 적용 △상속세·법인세 완화 등이다. 노동계에선 반대하는 내용이지만, 윤석열 당선자가 대선 기간에 밝힌 공약·발언과 대체로 일치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경제단체장과 ‘핫라인 구축’을 약속했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며 민간 주도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기업 규제가 너무 많아 기업 활동에 큰 걸림돌’이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말에 “기업을 자유롭게 운영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답했다.

3월 31일에는 한국무역협회 요청으로 ‘지역특화 청년무역전문가 양성사업 수료식’에 참석하고,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4대 학회 공동학술대회에 축사를 전했다.

반면 노동계와 윤석열 당선자의 직접 만남은 당선 후 한 달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6단체장과 오찬 회동이 있던 날, 민주노총은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자와 만남을 촉구하며, 국정운영 계획에 포함해야 할 요구안을 인수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노동권 보장의 문제,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시급하게 당선인과 대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자 측은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소통 없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 노동계와 윤석열 당선자 측이 공식 만남을 가진 건 경제 6단체장과 만나고 약 열흘 뒤였다.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임이자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는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 등과 30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동호 사무총장은 윤석열 당선자의 한국노총 방문을 요청하며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해야 할 노동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3월 21일 윤석열 당선자와 경제6단체장 오찬 회동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3월 21일 윤석열 당선자와 경제6단체장 오찬 회동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노동계, 정책의 ‘하위 파트너’ 우려

양대 노총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요구한다. 반(反)노동적 정책을 채택, 시행할 것을 우려해서다. 노동계에서 반발하는 정책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1년 이내로 확대 △직무·성과형 임금체계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최저임금 구분 적용 등이다.

먼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는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자가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게 제도의 취지이지만, 1년간 평균 근무시간이 주52시간을 넘지 않는다면 24시간을 연속으로 일해도 무방하다. 일정 기간 철야로 일하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크런치모드’로 과로사와 자살이 불거진 IT업계 노동자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는 불분명한 평가 기준, 조직 내 줄서기 문화, 임금 정체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노동계에서 반발하는 부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계의 의견을 수렴할 경우 처벌 수준이 낮아지고 그 대상도 좁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법의 실효성을 현저히 떨어뜨려 산업재해를 막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도 소득 양극화와 특정 업종의 저임금 고착화 등이 우려된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자 측이 노동계와 만나더라도 실질적인 정책파트너로 대할지는 미지수다. 자유시장경제를 중요시하는 윤석열 당선자의 일자리·산업 정책의 특성은 민간 주도, 기업 자율, 낙수효과 등으로 정리된다. 이에 따라 기업 규제 완화와 노동개혁을 중시하는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가 노동계와 소통을 절차적 정당화의 대상이나 ‘하위 파트너’로 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는 양대 노총이 지금의 기조를 바꿔야 노동이 유연해져서 기업이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며, 그에 따라 경제가 발전하고 전체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필요하면 대화를 하겠지만, 경직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근거로 판단하는 양대 노총과 굳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는 절차상 과정 관리용 기구로 그 역할이 축소돼 탄력을 잃거나 명목상 유지하겠지만, 노동유연화를 시도·추진하기 위한 채널로써 경사노위 등 법정 협치 구조가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약집에서 노동조합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당선자는 노사관계 분야에서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을 근로자 직접투표로 선출하도록 한다”고 약속했다. 현행 근로자참여법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조합 대표자와 그 노동조합이 근로자위원을 위촉하도록 한다. 이에 대해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노동조합 위촉 방식을 직접투표 방식으로 전환해 노사협의회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민주노총, 윤석열 정부 출범 정책 진단 토론회, 2022.03.30.). 다만 해당 공약은 근로자참여법을 개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여소야대 국면에선 시행이 어려울 전망이다.

기업만 보는 인수위 행보에
노동계는 투쟁 기조 강화 예고

윤석열 당선자가 차기 정부 출범 후에도 반노동정책을 추진하면 노동계는 투쟁을 강화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3월 24일 단위노조 대표자 결의대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노동계와 소통하지 않으면 5년 동안 중단 없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새 정부가 역대 정권처럼 반노동, 반민중, 불통 행태를 답습한다면 2,000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우리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거대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재벌 대기업들과 핫라인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 2,000만 노동자들과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민생 핫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3월 21일 인수위 앞에서 열린 ‘새 정부에 요구한다! 민주노총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3월 21일 인수위 앞에서 열린 ‘새 정부에 요구한다! 민주노총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한국노총은 기존 ‘연대를 통한 개입과 견제’에서 ‘투쟁에 무게 중심을 둔 협상’으로 활동 기조를 변경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현장 활동을 강화하고, 바뀐 활동 기조에 맞도록 각 본부와 부설기관의 사업 계획을 수정한다.

윤석열 당선자 측이 노동조합의 집회에 강력 대응할 의지를 밝힌 상황이라 현장에서 충돌이 빚어질 우려도 있다. 인수위는 지난달 24일 경찰청의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경찰이 민주노총 집회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국민 불신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선별적 법 집행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불법에 대해 일관되고도 엄정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약집에는 “무단사업장 점거, 폭력행사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적용으로 공정한 노사관계 관행 확립”을 명시한 바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자가 앞으로도 사용자 단체와 궤를 같이하면 반노동정책이 확산할 소지가 크다. 정권 초기 무리하게 반노동정책을 꺼내 들고 관철시키려 한다면, 노사관계는 불안해지고 노정 갈등은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코로나19 팬데믹, 물가급등, 금융시장 불안, 미·러·중 간 대결 격화 등의 위기 국면에서 서민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불행한 시기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여당과 협치하고, 노동계를 아우르는 국민통합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