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눈앞···노동자들, “왜 해야 하나?”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눈앞···노동자들, “왜 해야 하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9.13 18:42
  • 수정 2022.09.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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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시 출연기관 통·폐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열려
13일 오후 2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에서 ‘서울시 출연기관 통·폐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지방공공기관의 통·폐합이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가운데 서울시 출연기관 노동자들이 “왜 통·폐합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공공기관의 통·폐합은 윤석열 정부의 공공부문 축소 흐름에 따른 것이다. 지난 7월 29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상정·의결했다.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기관별 혁신계획을 수립하고,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민간경합·유사중복 기능의 조정 △조직·인력 슬림화 및 정원 감축 △자산 매각 및 출자회사 정리 등의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내용이다.

행정안전부도 7월 27일 지방공기업정책위원회를 열고 ‘새 정부 지방공공기관 혁신방향’을 발표했다.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공공기관 혁신을 지방공공기관에도 적용시켜 효율성과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자율·책임·역량 등을 강화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공기관들은 스스로 유사·중복기능을 조정하고 민간과 경합하는 사업을 정비해야 한다. 부채규모 1,000억 원, 부채비율 200% 이상의 ‘부실 지방공공기관’은 부채중점관리제 평가를 받고, 기준에 미달되면 폐쇄된다.

여·야 모두
지방공공기관 ‘슬림화’ 중

전국의 각 자치단체장들은 재정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기조로 지방공공기관 슬림화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 18개를 11개로 통·폐합하는 ‘통합공공기관별 개정 조례안’이 7월 22일 대구시의회를 통과했다. 대구 도시철도공사·도시철도건설본부가 통·폐합됐고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은 대구테크노파크에 통·폐합됐다.

부산시도 산하 9개 공사·공단과 16개 출자·출연기관 등 25개 공공기관 중 일부를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국제교류재단·부산영어방송재단을 부산글로벌도시재단으로, 부산지방공단 스포원을 부산시설공단 경륜본부로 통·폐합 등이다.

울산시는 여성가족개발원과 사회서비스원이 유사하고 중복되는 기능이 많아 두 기관의 기능을 통합한 복지가족진흥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고, 8월 31일 관련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7월 6일 “지방 공공기관 혁신을 위한 경영·조직 진단 로드맵을 검토해 보고해 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남도도 8월 2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추진방안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연구용역의 과업지시서는 착수 배경을 “충남도 산하 공공기관의 주요사업·조직·기능·인력 등을 분석해 유사·중복 기능 수행 등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는 경영효율화 방안 마련(공공기관 통·폐합, 기능조정, 민간위탁 등)”이라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 지방공기업사업단에 따르면,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총 10곳이다. 서울, 인천, 충남, 전북,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부산 등이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 국장은 “경기와 강원의 경우 직접적인 추진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도지사의 공무원 감축 공약과 최근 발언을 볼 때 추가로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광주, 세종, 대전, 충북, 전남 등은 아직 지방공공기관 구조조정 동향이 파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은?

서울시는 지방공공기관의 통·폐합과 관련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경영효율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고, 결과는 오는 10월 나온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지난 2월 전체 투자·출연기관에 조직·인력·내부 규정·경영 실태 등의 현황을 분석하고 효율화 방안을 제시하는 조직진단을 요청한 바 있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 ‘관계자’의 여러 언론 인터뷰에 따라 산하 기관 중 일부의 통·폐합은 이미 점쳐지는 상태다. 공공운수노조는 서울시 지방공공기관 통·폐합의 시작이 서울기술연구원,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특별시공공보건의료재단이 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서울기술연구원은 서울연구원으로, 공공보건의료재단은 서울의료원으로, 서울50플러스재단은 평생교육진흥원으로 통·폐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3일 오후 2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에서 ‘서울시 출연기관 통·폐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정재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출연기관지부 서울시50플러스재단지회 지회장이 발제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논의
절차·내용 “밀실·바람직하지 않아”

서울시 출연기관 노동자들은 13일 오후 2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에서 진행된 ‘서울시 출연기관 통·폐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통해 “지방공공기관 통·폐합의 절차는 밀실이고, 거론되는 방향성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조합과 시민 등 주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 배제된 통·폐합이 우려되고, 재무건전성을 기조로 한 통·폐합은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와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토론회 발제는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세 기관의 노동자들이 맡았다. 조요한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출연기관지부 서울기술연구원지회 지회장은 “우리 기관이 설립되기까지 총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서울연구원과 서울기술연구원의 중복성 문제도 정리됐는데 서울연구원은 인문·사회·경제 쪽, 서울기술연구원은 기술을 연구하게 됐다”며 “이미 기관을 설립할 때 중복될 여지가 있는 부분을 충분히 나눴던 것이고, 이런 것을 이야기할 통로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의 투자·출연기관이 26개인데, 이들은 시민의 촘촘한 공공복리를 위한 시스템 그 자체”라며 “결론 자체를 통·폐합으로 찍어놓는 게 아니라, 26개 기관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처음부터 같이 논의해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전체 공공서비스와 직결되기에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출연기관지부 서울시50플러스재단지회 지회장도 “(통·폐합) 결과를 정해놓고 과정을 끼워 맞추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재수 지회장은 “10월 나올 경영효율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양 기관의 사업이 얼마나 중복됐는지 나오지도 않았는데 서울시는 벌써 통·폐합을 추진하려 한다”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평생교육진흥원의 기능은 중복되는 게 거의 없다. 이 두 기관을 통·폐합할 경우 정책 수행의 주체와 예산의 운용에서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준희 한국노총 공공연맹 서울특별시공공보건의료재단노조 위원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 ‘서울형 공공의료 확충’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그 첫 추진과제가 다름 아닌 공공보건의료재단 통·폐합이라는 것은 모순적”이라며 “통·폐합 논의를 철회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약자와 동행하는 건강안심도시 서울이라는 정책 의지를 입증하라”고 주장했다.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분명한 기준과 충실한 논의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원은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논의에서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는 배제돼 있다. 계획에 조직 통합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나 구체적인 운영방안도 담겨 있지 않다”며 “기관의 설립취지와 존속의 필요성, 통·폐합 대상 등을 시민과 구성원에게 설득할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통·폐합과 구조조정의 문제점, 해결방안 제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충실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서울시의회 시의원들은 “지방공공기관 통·폐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토론회는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서울본부·서울시출연기관지부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민생정책위원회가 함께 주관했다.

이병도 서울시의회 시의원은 “과정 자체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지방공공기관 통·폐합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동료 의원, 다양한 단위들과 소통하고, 통·폐합의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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