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노동자 4인이 말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간접고용 노동자 4인이 말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10.26 00:27
  • 수정 2022.10.26 0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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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금속노조 소탕단 김형수·변주현·이영수·차헌호
“원청과 대화할 수 있는 데서 변화 시작될 것”
가로·세로·높이 1m 철 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금속노조
가로·세로·높이 1m 철 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금속노조

지난 여름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선박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1㎥ 철 구조물에 들어갔다. 그러자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위험노동, 저임금 현실이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이 장면의 주인공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당시 상황이 “얻어걸린” 일이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노동조합 활동이었고 답이 없는 조선소였다. 답이 없었기에 답을 찾고자 여러 가지로 궁리를 했고, 할 수 있는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까 얻어걸린 것 같다”는 것이다.  

조선하청지회는 사회의 이목을 조선소로 끄는 덴 성공했지만, 초기 요구안(임금 인상률 30% 등)에서 크게 후퇴한 안(임금 인상률 4.5% 등)에 하청업체 교섭 대표단과 합의해야 했다. 그리고 파업이 끝난 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하청지회 간부 5명에게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조합 활동부터 교섭, 파업 이후까지 유최안 부지회장은 “법, 법, 법은 도움이 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말한 법은 구체적으로 노조법 2·3조다. 현행 노조법 2조는 사용자를 근로계약의 상대방으로 제한한다. 사용자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피하고자 형식적인 사용자를 중간에 넣거나(간접고용), 근로계약이 아닌 위·수탁 계약 등으로 노동자를 사용(특수고용)한다. 두 방식을 합치기도 한다. 간접·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이라도 할 경우엔? 손해배상 면책 대상을 근로계약 중심의 ‘노조법에 의한’ 쟁의행위로 제한하는 노조법 3조에 따라 ‘손배 폭탄’을 떠안을 수 있다.

특히 IMF 이후 ‘간접고용-비정규고용’이 일터에서 본격화되면서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면책 범위를 넓히는 노조법 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그러다 올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 ‘얻어걸려’ 국회에서 다시 노조법 2·3조 개정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 금속노조는 최근 소탕단 활동에 나섰다. 소탕단엔 금속노조의 간접고용 노동자, 손배가압류 고통을 겪는 노동자 등이 모였다. 이들은 1주차(9/27~30)에 이어 2주차(10/4~7)까지 총 8일간 전국을 누비며 ‘노조법 2·3조 개정’ 목소리를 냈다. 

올해 소탕단에 함께한 금속노조 김형수 조선하청지회 지회장, 변주현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이영수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지회장에게 노조법 2·3조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각 사업장에서 투쟁 중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인 이들이 노조법 2·3조의 한계로 겪은 일은 공식 같았다. 

ⓒ 금속노조
(왼쪽 위 시계방향) 김형수 지회장, 변주현 조합원, 이영수 지회장, 차헌호 지회장 ⓒ 금속노조

‘바람 앞의 등불’이라던 하청업체,
노조 출범 1년 만에 폐업

변주현 씨는 현대건설기계의 사내하청업체 서진이엔지(ENG)에서 굴삭기 암(arm)대 용접 일을 했다. 용접 뒤에 도장, 조립 과정을 거치면 ‘HYUNDAI(현대)’ 로고가 찍힌 굴삭기가 완성됐다. 

변주현 씨를 비롯한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노동 강도, 제자리걸음 임금, 불투명한 노사협의회 등을 바꾸기 위해 2019년 9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교섭장에서 노동조합과 마주 앉은 서진이엔지 대표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변주현 씨는 “업체 사장과 교섭을 수차례 했지만 잘 나오지도 않았다”며 “우리가 뭔가 요구하면 본인은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만 했다”고 기억했다.

그 사이 서진이엔지에서 용접하는 현대건설기계의 물량은 점점 줄었다. 노동조합이 생긴 지 1년이 채 안 된 2020년 7월 서진이엔지는 폐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됐다. 4개월 뒤 고용노동부는 현대건설기계 정규직과 함께 작업하고, 정규직의 지시를 받아온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불법파견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대건설기계 측은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았고, 변주현 씨는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는
노조 결성 1개월 뒤 폐업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는 2004년 구미4공단에 디스플레이용 유리를 만드는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이하 아사히글라스)을 설립했다. 이곳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5년 5월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를 결성했다. 

하청업체와 교섭에서 지회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길 들었다. 차헌호 지회장은 “공장 안 모든 것이 원청 소유라서 하청업체는 노동조합 사무실 하나 내줄 수 없다고 했다”며 “하청 사장은 원청 핑계를 대면서 권한이 없다 하고, 원청은 우리와 고용관계가 없으니 요구를 들어줄 법적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 출범 한 달 뒤 원청은 사내하청업체 GTS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어 GTS는 노동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한 뒤 폐업했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는 8년째 복직 투쟁 중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소탕단이 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삼성역까지 '현대자동차판매비정규직 고용승계 거부 규탄 및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국금속노동조합 소탕단이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삼성역까지 '현대자동차판매비정규직 고용승계 거부 규탄 및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원청은 법 뒤에 숨고, 정부는 뒷짐
“사방이 꽉 가로막혀”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물량이 줄어들면서 고용위기에 노조를 만든 한국지엠 부평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들은 말도 같았다. 이영수 지회장은 “매번 구조조정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잘려 나가는 문제, 낮은 임금 등 풀어야 할 의제를 들고 하청업체와 교섭까진 이뤄졌다”면서 “하지만 하청업체의 대답은 하나같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다 알지 않느냐’면서 현실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는 원청에 교섭 요청을 했고, 한국지엠 측은 ‘교섭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영수 지회장은 “(교섭이 안 돼) 고용노동부에 원청과 중재를 요청하면 법적으론 문제가 없기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원청은 법적으로 교섭을 안 해도 된다며 뒤로 숨고, 고용노동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은 이영수 지회장은 “사방이 꽉 가로막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영수 금속노조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장이 12일 서울시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해고1호, 노동절 대량해고! 한국지엠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br><br>
이영수 금속노조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장이 지난 4월 12일 서울시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해고1호, 노동절 대량해고! 한국지엠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투쟁은 ‘극단으로’
“사회적으로라도 호소 위해”

막힌 벽을 뚫을 수 없었던 노동조합의 투쟁은 극단으로 갔다. 그렇게 투쟁한 노동자의 표현으론 “극단으로 내몰렸다.”

조선하청지회는 조선업 불황의 파도가 거세진 2017년 2월 출범했다. 지회는 각 하청업체에 임금 인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교섭했지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업체가 아예 폐업하는 일도 있었다. 

수주 물량이 점점 회복되면서 조선하청지회는 올해 단체교섭에서 조섭업 불황시기 줄어든 실질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원청 대우조선해양의 기성금(배 건조 대가) 인상률이 3%에 그쳐, 기성금 인상분을 넘기는 임금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청업체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조선하청지회는 지난 6월 2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동시에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결정권은 원청에 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상 주요 결정권은 산업은행에 있다”며 산업은행과 정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개입할 수 없다”는 산업은행, “협력업체의 노사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대우조선해양, “노사 자율 해결의 원칙”을 앞세운 정부의 뒷짐으로 사태는 장기화됐다. 

조선하청지회는 원청과 정부를 더 압박하기 위해 파업 21일째인 6월 22일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원유운반선 탱크 안에 들어가 고공농성(6인)에 돌입했다. 이날 유최안 부지회장도 탱크 바닥에 철판을 용접해 스스로 가뒀다. 파업 43일째인 7월 14일엔 조합원 3명이 산업은행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거제에서 결의대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결국 파업 51일째인 7월 23일 하청 노사 간 합의는 타결됐다. 이날 김형수 지회장은 “금속노조 이름 하나 합의서에 넣기 위해 6년을 싸웠다”며 “초라한 합의서지만 드디어 금속노조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15년간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을 한 이영수 지회장은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하면 원청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업체를 계약 해지하고 ‘합법적으로’ 비정규직을 손쉽게 해고할 수 있으니, 노조 가입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비정규직은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노조 설립 이후 고공농성, 단식투쟁 등 극한투쟁으로 내몰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청도 고용노동부도 법조문 뒤에 숨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 사회적으로라도 호소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8월 26일 현대종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중식 및 퇴근투쟁을 하고 있다. ⓒ 현대중공업지부
2020년 8월 26일 현대종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중식 및 퇴근투쟁을 하고 있다. ⓒ 현대중공업지부

투쟁할수록 드러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선 곳’

서진이엔지의 폐업 이후 2주가 지나도 퇴직금과 남은 임금을 못 받은 변주현 씨는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아침마다 현대건설기계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점심엔 식당에서 선전전을 했다. 그래도 안 통하자 2020년 9월 11일에 조합원 30여 명과 본관으로 갔고, 원청 관리자들은 ‘왜 여기서 따지냐’며 노동조합과 다퉜다. 조합원들은 나오는 길에 몰려든 경비들에게 출입증을 뺏겼다. 저항하다 폭행당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투쟁의 수위를 높일수록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변주현 씨는 “막막하고 어처구니없었다”며 “원청이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도 무시하는데 피해 노동자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원청을 바라보며 현대건설기계 직원들도 이용하는 현대중공업 그룹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당사자 포함 협의 테이블 구성하고 직접고용 이행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옥상 꼭대기에서 고공농성을 하며 현수막을 펼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결국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옥상문을 부수고 현수막을 찢어버렸고 농성 물품을 탈취하면서 농성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손배 청구로 돌아온 투쟁 결과

이런 투쟁은 원청의 손해배상 청구로 돌아왔다. 변주현 씨는 “돌아오는 것은 대화가 아닌 폭력진압이었고 2,000만 원이 넘는 손해배상이었다”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처한 현실을 알렸다. 그런데 전국을 돌며 본 현실이 더 경악스러웠다. 수많은 비정규직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면 범죄자가 되고 막대한 손해배상과 오랜 기간 해고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대우조선해양에 손해배상 청구 470억 원을 “맞은” 김형수 지회장은 당시 “착잡한 심정이었다.” 김형수 지회장은 “물론 걱정도 많이 됐다. 개인적인 삶에 대한 걱정도 있겠지만, 세상이 이렇게 가도 되나 생각이 들었다”며 “정말 만약에 법적으로 우리에게 470억 원을 청구하는 게 가능한 일이더라도,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는 2019년 공장 입구 도로에 래커칠을 했다고 5,200만 원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집회를 하면서 공장 정문 앞 바닥에 래커로 불법파견 해결하고 직접고용 이행하라는 글을 썼는데 회사가 도로 자체를 재포장해 조합원 4명에게 5,200만 원 손배청구를 했다. 아직도 민사소송 중”이라며 “도로를 새로 깔지 않고 사람이 지우면 50만 원이 안 드는데 손배액을 키우기 위해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억울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은 우리인데 회사가 노조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많다”며 “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버티기뿐이라 절망스럽다. 그러니까 손배당하고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7월 10일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농성장 앞에서 ‘아사히 투쟁 5주년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 금속노조
2020년 7월 10일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농성장 앞에서 ‘아사히 투쟁 5주년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 금속노조

노동조합의 선택지는 ‘버티기’

차헌호 지회장이 말한 ‘버티기’ 중 하나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는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8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4년여 심리 끝에 아사히글라스가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7월 대구고등법원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아사히글라스가 상고장을 제출해 대법원에 가 있다. 노조는 이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

2021년 8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파견법 위반으로 아사히글라스 원·하청 전 대표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또 지난 8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부당해고 기간에 임금을 받지 못한 해고노동자 22명에게 아사히글라스가 임금 64억 13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아사히글라스는 강제집행 정지 결정을 위해 법원에 공탁금 70억 원을 냈다. 

차헌호 지회장은 “밀린 임금을 주는 대신 70억 원이라는 돈을 과감하게 내는 것을 보며 정말 아사히글라스가 마지막까지 왔단 생각이 들었다”며 “8년째 거리에 있는 해고노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생계인데 끝까지 회사는 가혹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장에서 장갑 하나도 아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던 회사가 끝없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이성적이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가 이 정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중인 한국지엠 비정규직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영수 지회장은 “완성차 회사의 불법파견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만 가면 함흥차사”라며 “금속노조 차원에서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을 촉구하는 1박 2일 농성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사이 올해 초 한국지엠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공정과 간접공정, 1차와 2·3차 하청업체, 재직자와 해고자로 구분한 후 임의로 직접공정·1차 하청·재직자에 해당하는 이들만 발탁채용한 바 있다.

변주현 씨는 “원청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도 대법원의 판결을 받기까지 수년에서 십수 년이 걸린다”며 “우리도 해고된 지 어느덧 3년차가 됐지만 아직도 민사재판 1심이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재판장에서 판사가 ‘OO회사는 10년 넘게 걸렸다. 3년이면 이제 막 시작한 거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불법파견을 바로 잡아 달랬더니 장기간 피 말리는 재판을 진행하고 그러는 동안 비정규직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피해와 생활고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과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폐기 및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앞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사전대회를 가진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결의대회 장소로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과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폐기 및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앞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사전대회를 가진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결의대회 장소로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원청과 대화, 변화의 시작 될 것”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노조법 2·3조가 개정되더라도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4명의 노동자가 기대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뭘까? 

김형수 지회장은 “노조법 2·3조가 개정됐다고 모든 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세상일이 단순히 뭐 하나 바꿨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서도 “다만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이 대우조선해양에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또 대우조선해양과 조선하청지회가 대화는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원청이 우리를 다르게 볼 것 같다”고 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원청이 비정규직 노조를 공장 망하게 하려는 악성 바이러스처럼 본다고 느꼈다”며 “우리가 교섭에서 요구한 건 도시락 질 개선, 작업복 교체, 노조 사무실 제공 등이었다. 대화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요구인데 우릴 마주하려 하지도 않아서 답답했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법적으로 원청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명시하는 것 자체도 중요한 축”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법 2·3조가 개정이 된 상황을 상상해본 변주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왠지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요. 애초에 노조법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면 회사들이 알아서 불법파견 사업장을 안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럴 여지가 있으니까 불법파견을 활용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불법을 저지를 사용자들은 또 저지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법으로 인정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것 같아요.”

이영수 지회장은 비정규직 노조가 더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영수 지회장은 “비정규직 노조는 항상 원청과 대화할 수 있는 정규직 노조를 통해서 이야기해야 해서 주체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정규직 노조든 비정규직 노조든 사용자와 똑같이 대화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비정규직 노조가 더 주체적으로 사업도, 투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노조법 2·3조 개정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우리 사회와 노동자의 삶을 밝힐 수 있는 빛이라고 생각해요.” (김형수 지회장)

“나에게 노조법 2·3조 개정은 ‘숨 쉬는 것’입니다.” (변주현 조합원)

“노조법 2·3조 개정이 최종 목표는 아니에요. 비정규직 철폐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전보다 노조 활동을 더 가깝게 고민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조직해 더 큰 비정규직 운동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요.” (이영수 지회장) 

“최소한의 변화요.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 인정, 최소한의 노동자 인정이요.” (차헌호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