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줄인상과 사라진 국가
공공요금 줄인상과 사라진 국가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2.16 18:56
  • 수정 2023.02.16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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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공공서비스 국가재정 확대 촉구 기자회견
공공요금, 국민부담 말아야···국가책임 강화 투쟁 격화 시간문제
공공운수노조가 16일 오전 9시 30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서비스 국가재정 확대 촉구 에너지·교통·사회보험 부문 노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발전, 가스, 지하철, 버스, 택시,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국민이 ‘공공요금’을 내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날로 치솟는 공공요금의 부담을 국민에 전가하지 말고, 국가재정을 확대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대통령실에 전하기 위해서다. 공공노동자들은 정부가 공공요금의 부담을 국민에 지우려는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다시 전면화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위원장 현정희, 이하 공공운수노조)가 16일 오전 9시 30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서비스 국가재정 확대 촉구 에너지·교통·사회보험 부문 노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공공운수노조는 “연일 계속되는 공공요금 국민부담 확대의 이유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 회피”때문이고, “공공요금을 계기로 돌출된 공공서비스의 의미와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 재정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일자 정부는 당장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방향성을 최근 제시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선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제13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에서 “도로·철도·우편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은 최대한 상반기 동결 기조로 운영하고, 지방정부도 민생의 한 축으로서 지방 공공요금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신·금융 분야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과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많이 어려운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노력과 함께 업계도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공요금 동결 지시에 서울시도 4월로 계획했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수정해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운수노조는 “전형적인 조삼모사”라는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는 공공요금에 대한 국민 부담 증가가 “국민의 공공서비스 이용 기본권을 저하시키고, 이윤 중심 운영기조를 강화해 중장기적으로 민영화·영리화·시장화로 연결되는 효과를 동반하는 의제”라 보고 있다. 3월 중엔 공공요금 정부 책임을 촉구하는 노동자·시민 전국행진을 진행하고 상반기 중 전국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는 등 대응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대통령 한 마디에 서울시가 교통요금 인상 시기를 하반기로 미룬다고 한다. 인상이냐 아니냐, 상반기냐 하반기냐에 발이 묶인 논의가 불러온 촌극”이라며 “우리는 에너지, 교통, 사회보험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책임과 그 방안으로서 국가재정 확대를 요구한다. 모든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재벌과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 노동자 투쟁도 더욱 거세질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
문제는 민간 개방

기자회견에서 공공노동자들은 최근 줄줄이 인상되는 공공요금의 이면과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대안을 각각 짚었다. 전기 요금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한전에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바 있다. 관련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에너지 요금은 시장원리에 기반해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겠다”며 전기 요금 인상 기조를 재차 밝혔다.

제용순 한국발전산업노조 위원장은 “이미 가스 요금이 대폭 올라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기장판에 추위를 녹이던 서민들은 전기조차 마음대로 쓰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한전 최대 적자의 이면에는 민자발전사의 최대 흑자가 있었다. 유럽에서는 급등한 유가로 최대 이익을 본 기업에 횡재세를 도입하거나, 프랑스는 전력회사를 국영화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마냥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 아니라 횡재세 도입과 전기를 국민의 필수서비스로 제공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평균 가스 가격도 전쟁으로 2020년 대비 약 8배(지난해 기준) 상승하며 가스 요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국민 부담을 급격히 늘릴 수 없었던 한국가스공사는 가스 구매원가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9조원 대의 미수금을 떠안게 됐고, 결국 재무위험기관이 됐다.

신홍범 한국가스공사지부 지부장은 “적자는 정부의 가격 통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국민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개입이 있어야 한다”며 “오히려 국제가격이 상승하면 수급 책임을 공사에 떠넘기고, 가격이 하락하면 가스를 수입하는 민간 직수입자들의 이윤 중심 행태가 에너지 공공성과 공사의 재정 안정성을 파괴한다. 난방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민간 직수입을 중단하고 가스 산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 시대 공공 교통
‘돈벌이 수단’ 접근 안 돼

손근호 서울교통공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PSO(공익서비스 제공에 따른 손실 보전) 정부 재정지원이 지난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며 지자체가 지하철 요금 인상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손근호 수석부위원장은 “보편적 이동권인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세대 갈등과 혐오 프레임 부각을 통해 대립 여론을 조장하고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용 논리를 앞세운 지하철 필수 안전 인력 감축, 안전 업무 외주화 추진 등의 운영기관 자구책은 지하철 이용 시민과 종사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앙정부는 기후위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부재한 상황이다. 교통부문 예산의 절반이 도로 건설·운영 관리에 과다하게 편중되어 있다”며 “이러한 예산을 대중교통 이용을 위한 지하철 편익과 안전에 지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홍근 민주버스본부 본부장도 “지자체들은 또한 버스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각 지자체들은 시민의 세금으로 민간 버스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시민의 세금으로 버스 자본가들이 돈 잔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버스 시스템 개선을 먼저 손보지 않는다면 버스요금이 인상된 만큼 버스 자본가들의 지갑은 더 두꺼워질 것”이라며 “대중교통을 돈벌이 수단에서 복지의 영역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택시요금 인상에 최세호 택시지부 수석부지부장도 우려를 표했다. 지난 1일부터 서울 택시 기본요금은 4,800원으로 1,000원 오른 바 있다. 최세호 수석부지부장은 “택시노동자들도 밤 10시 이후에는 손님을 태우기가 어렵다고 하며, 차라리 이럴 바엔 연료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밤 11시면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실정”이라며 “승객과 택시노동자뿐 아니라 식당, 술집, 당구장 등 자영업자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공공요금을 인상할 때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파급 효과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검토한 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공공운수노조가 16일 오전 9시 30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서비스 국가재정 확대 촉구 에너지·교통·사회보험 부문 노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교통비 폭탄, 난방비 폭탄, 전기세 폭탄 등이 적힌 모형을 국가책임과 공공성 가위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에너지·교통 요금 인상으로 국민 부담 높이면서
건강보험·국민연금 공공성은 외면하나

사회보험에 종사하는 공공노동자들은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극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엔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건강보험은 국가의 재정으로 예상 수입액의 20%를 지원 받아왔지만, 관련 법 조항이 지난해 12월 31일로 일몰된 상황이다. 김철중 국민건강보험노조 위원장은 “현재 건강보험 국고지원의 법률적 근거마저 없어져 짜도 짜도 나올 게 없는 마른 수건이 돼 버린 국민들에게 난방비 폭탄에 이어 이제는 건강보험료 폭탄까지 떠넘겨야 할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아직까지도 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만약 올해 8월까지 건강보험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2024년 건강보험료율 결정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가계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강 국민연금지부 지부장도 “국회 연금특위는 한창 논란이 되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같은 모수개혁 말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초연금,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의 체계를 바꾸자는 구조개혁을 논의하자 하며 연금개혁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걷어찼다”며 “국민연금 개혁은 언제나 떠넘겨지다 좌초되고 말았다.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과거의 정부를 탓하기보다 현재의 국민을 생각하고, 미래의 희망까지 내다보는 개혁을 위해 이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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