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비, 이만큼 받았고, 이렇게 일했다
월례비, 이만큼 받았고, 이렇게 일했다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4.06 13:39
  • 수정 2023.11.05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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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안전작업 범위·월례비 액수 합의해야...노동자 때려잡기로 해결 안 돼”
[인터뷰]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인터뷰] 황옥룡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부지부장·이재빈 사무부장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황옥룡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부지부장(좌)과 이재빈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이재빈 사무부장(우)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최근 정부는 건설 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연일 건설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건설 현장 불법행위는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례비’(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지급하는 비공식적인 금품)다. 정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월례비라는 명목으로 건설사에 금품을 갈취한다고 말한다. 조종사들은 “월례비는 건설사가 공기를 단축을 위해 불안전한 노동을 지시하고 그 대가로 지급한 금액”이라며 맞서고 있다.

대치가 계속되던 지난 2월 27일 건설노조는 “3월 2일부터 월례비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동시에 그동안 월례비의 대가로 해오던 불안전한 작업 또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월례비를 문제 삼던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태업을 한다며 ‘타워크레인 조종사 불성실 업무 유형’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건설노조는 가이드라인이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위험한 환경으로 내몰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왜 임금 외에 따로 월례비를 받기 시작했을까. 그 대가로 어떤 작업을 해왔으며, 3월 2일 이후 어떻게 일하고 있길래 국토교통부는 이를 태업이라고 주장하고 있을까. 참여와혁신은 서울 은평구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사무실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 황옥룡(56), 이재빈(39) 씨를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황옥룡: 황옥룡이라고 한다. 2003년부터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일해 왔다.

이재빈: 2022년 1월에 타워크레인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이재빈이다.

- 월례비는 어떻게 시작됐나?

황옥룡: 건설 현장은 철저한 분업의 세계다. 현장에 150개 전문건설업체가 각자의 작업을 한다. 누구는 거푸집을 만들고, 누구는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타워크레인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훨씬 빨라진다. 그래서 전문건설업체에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슬쩍 담배 한 갑 쥐여주면서 “우리 물건 좀 먼저 옮겨줘”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안전 규칙에 위배되는 작업을 부탁하기도 했다. 조종사들도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가벼운 불법 작업을 도왔다. 이게 월례비의 시작이다.

-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종합건설사에선 아무 말도 안 했나?

황옥룡: 현장을 총괄하는 종합건설사 입장에선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돈을 조금 주더라도 공기(공사 기간)를 단축하는 게 훨씬 좋다. 말릴 이유가 없다.

- 담배 한 갑이던 월례비가 많이 늘었다.

황옥룡: 원래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건설사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이땐 월례비도 소액이었다. IMF 이후 많은 건설사가 구조조정을 했고, 그 과정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그러면서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가 건설사에 타워크레인을 임대하고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노동력도 함께 임대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현재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임대 업체에 고용돼 있으면서 현장에선 건설사의 지휘를 받고 있다. 고용과 지휘·감독의 주체가 달라지면서 (지휘·감독하는 이들이 지급하는) 월례비가 많이 늘었다.

금액이 커지면서 전문건설업체에서도 더 위험한 작업을 스스럼없이 부탁했다. 불법 잔업도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월례비가 또 올라갔다. 다시 불법적인 일을 더 많이 부탁했다. 이 사이클이 수십 년 돌았다. 월례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니까 월례비는 공기를 단축하고픈 건설사와 돈을 더 받고 싶은 조종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긴 금액이다. (전문건설사들이 모인 전문건설협회에서도 월례비는 수고비 형태의 담뱃값으로 시작됐으며, 고착화된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 최근엔 (월례비로) 얼마나 받았나?

황옥룡: 평균적으로 400~500만 원 정도 받았다. 다만 월례비가 공식화된 금액이 아니다 보니 현장마다 달랐다. 일이 많은 곳에선 월례비를 더 많이 주고, 일이 없는 곳에선 적게 준다. 월례비가 클수록 잔업과 불법행위가 많다고 보면 된다.

- 그동안 건설 현장에서 어떤 불법 행위들을 해왔나?

이재빈: 타워크레인은 고공에서 고중량의 물건을 옮긴다. 자칫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비화한다. 그래서 안전 규정이 까다롭다. 하지만 현장에선 온갖 물품을 다 옮겨달라고 지시한다. 타워크레인을 만능 기계처럼 쓰는 거다. 그중 조종사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3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먼저, ‘항공마대 인양’이 있다. 항공마대는 합성수지(플라스틱)로 만든 커다란 보자기다. 주로 현장에서 쓰레기를 담거나 흙, 모래를 옮길 때 사용한다. 1,000kg까지 내용물을 담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이 보자기는 지게차 등을 이용해서 옮기게 돼 있다. 그런데 월례비를 줬다며 이걸 타워크레인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보자기가 찢어지면 대형 낙하 사고로 이어지는 걸 알면서도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킨다.

타워크레인으로 항공마대를 인양 중이다.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타워크레인으로 인양하던 항공마대가 터진 모습.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두 번째, ‘호퍼 타설 작업’이 있다. 조종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호퍼는 콘크리트를 이동시킬 때 쓰는 커다란 통이다. 원칙은 호퍼로 콘크리트를 공사 현장으로 이동시킨 후 펌프카를 통해 타설하는 거다. 하지만 고층에 타설 작업을 할 때 펌프카를 이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타워크레인에 호퍼를 매달아 고층으로 이동시킨 후 호퍼 밑의 개방구를 열어 타설까지 시킨다. 콘크리트를 담은 호퍼 무게는 4톤이다. 타워크레인은 인양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타설 작업을 하면 호퍼를 이동시켜야 한다. 호퍼의 무게가 실시간으로 줄어 호퍼의 무게중심이 계속 바뀐다. 호퍼 타설이 위험한 이유다. 또 돌풍이 불면 호퍼가 쓰러져 밑에서 타설을 돕던 다른 노동자가 다칠 수도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호퍼를 이용해 타설 작업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건설노동자들이 호퍼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세 번째는 ‘제작야기리’ 작업이다. 야기리는 한마디로 벽에 설치하는 거푸집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져 오는 야기리들은 안전하게 설계돼 있어 옮기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건 비싸고 오래 걸린다며 현장에서 급하게 야기리를 만들어 쓴다. 이게 제작야기리다. 설계도 불안정하고, 소재도 (철재가 아닌) 목재를 쓴다. 위험하다. 이런 제작야기리를 “눕혀져 있으니 타워크레인으로 세워달라”고 하기도 하고, “이동시켜 설치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주 위험한 작업이다. 하지만 월례비를 줬다는 이유로 이런 작업을 부탁한다. 이 외에도 현장에선 “(수칙에 어긋나지만)한 번만 해달라”며 타워크레인에 온갖 일을 다 시킨다.

동그라미 친 부분에 있는 것이 제작야기리. 불안정하게 제작돼 있다.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 안전한 작업만 하겠다고 이야기한 3월 2일 이후론 어떻게 일하고 있나?

이재빈: 월례비를 받았기에 위험 작업도 참고 해왔다. 이제 월례비도 안 받으니 안전 수칙을 지키며 작업하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주 52시간도 지키며 일하고 있다. 비정상적이던 현장을 정상화했다. 이걸 태업이라고 하는 건 국토교통부가 불법행위를 권장하겠다는 거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3월 2일부터 안전 규정에 없는 작업 일절 안 합니다”하는 게 아니다. 작업을 하되 안전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호퍼 인양은 가능하다. 하지만 호퍼 타설은 하지 않겠다는 거다. 제작 야기리 인양은 가능하다. 하지만 눕혀져 있는 제작야기리를 세우거나 설치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거다.

- 현장 조종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황옥룡: 월례비가 400~500만 원이고, 임대사에게 받는 월급이 400만 원 수준이다. 수령하던 돈의 절반이 사라졌다.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갔다. 위험한 작업을 안 하니 좋다고 한다. 주 52시간 근무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 앞으로 현장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

이재빈: 문제의 핵심은 월례비의 액수가 너무 커진 상태로 고착화됐다는 거다. 여기에 부작용이 많이 생겼다. 월례비가 커진 만큼 건설사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위험한 작업을 더 많이, 더 과감하게 주문했다. 일부 조종사들이 과도하게 월례비를 수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월례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했다. 결국 노사가 만나야 해결된다. 전문건설협회와 건설노조가 만나 월례비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타워크레인으로 할 수 있는 일과 금지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합의해야 한다. 그렇게 절충선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지금은 월례비를 못 받는 노동자도 불안하고, 공기를 맞출 수 없게 된 건설사도 불안하다. (만나서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전문건설협회는 “(건설노조와) 대화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월례비는 애초에 종합건설사가 지급해야 할 돈을 전문건설사가 부당하게 지급하고 있던 것이다. 월례비에 대한 협상은 현장을 총괄하는 종합건설사들이 모인 대한건설협회와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건설협회는 “(월례비 문제는) 월례비를 지급하던 전문건설협회와 이야기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 협회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인정했지만, 책임 소재는 서로에게 미뤘다)

- 정부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황옥룡: 잘못 됐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건설노조 때리기’가 아니다. ‘대화 주선’이다. 모두가 이 방법을 원한다. 노사 대화 후에도 불법적인 행위가 계속된다면, 정부는 그때 나서야 한다. 지금은 현장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선제적으로 나섰다. 정부가 일을 망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황옥룡: 정부와 국민에게 “우리 이야기도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노동조합은 뿔 달린 악마가 아니다. 그저 자기 권리를 지키며 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양쪽의 이야기를 골고루 듣다 보면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가 쉽게 보인다. 월례비도 그런 문제 중 하나다.

우리 노동조합에서도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한 대다수의 국민(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이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