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안전하게 조종하면 면허정지?
타워크레인 안전하게 조종하면 면허정지?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3.14 14:57
  • 수정 2023.03.14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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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타워크레인 조종사 성실의무 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건설노조, 안전 작업한다는 노동자 위험한 환경으로 내모는 규정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GS자이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010년 한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 당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여와혁신 포토DB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타워크레인에 이상을 느껴도 원도급사가 승인하지 않으면 작업 개시 뒤엔 안전 점검을 할 수 없다. 강풍이 불어도 원도급사가 승인하지 않으면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 국토부)가 12일에 발표했다.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 밝혔지만, 건설노조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내몰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건설사에 불법적인 월례비를 강요하는 관행이 있다며 이를 뿌리 뽑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건설노조는 "월례비는 조종사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건설사가 불법행위를 시키기 위해 추가 지급한 금액"이라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지난 2월 27일 건설노조는 앞으로 월례비를 받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그동안 월례비의 대가로 해오던 불법행위 또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며 그동안 암암리에 해 왔던 불법행위에 대한 지시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준법 운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업을 통해 "의도적으로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판단해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성실의무 위반(태업)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처벌 규정 또한 제시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총 15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 후속 공정 지연 등의 차질이 발생한 경우 ▲작업 개시 이후 원도급사 또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 안전 점검을 한 경우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원도급사의 승인 없이 조종석에서 임의 이탈하는 경우 ▲원도급사가 인정한 하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요청을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등을 성실의무 위반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위 사항을 위반하면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는 최대 12개월까지 정지된다.

건설노조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작업중지권)을 넓히고 있는 최근의 경향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실제로 현장에서 위험을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자는 현장의 노동자"라며 "타워크레인은 사고도 잦을뿐더러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노동자 스스로 안전에 신경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태업을 이유로 그런 권한을 좁힌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목숨 걸고 일하게 만드는 것이 국토부의 역할은 아니지 않냐"고 덧붙였다.

전재희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풍속이 셀 때조차 원도급사의 승인을 받아야만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대표적인 문제 항목 중 하나라고 짚었다. 전재희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풍속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규정은 극단적으로 보자면 태풍이 와도 조종석에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콘크리트의 이동에 쓰이는 장비인 호퍼를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 쓰기 위해 타워크레인으로 인양하는 작업을 거부하는 것을 태업으로 규정한 항목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전재희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콘크리트가 담긴 호퍼의 무게는 최소 4톤이다. 이를 장시간 인양하면 타워크레인 주요 부위에 무리가 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며 "현재 현장에서 하는 호퍼 인양 작업들은 사고 예방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이 진행돼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작업을 거부한다고 무조건 면허를 정지하겠다고 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건설노조는 "하루 2명, 1년이면 400명이 죽는 곳이 건설 현장"이라며 "이런 현장에서 준법 작업을 하겠다는 것을 태업으로 규정해 죽어가는 노동자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엄중히 적용해 산재를 줄이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며 국토부를 규탄했다.

한편, 나귀용 국토부 사무관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며 "안전에 관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제한하려고 만든 것 또한 아니"라고 반박했다. 다만 "현장의 다른 노동자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데, 타워크레인 조종사 혼자 안전 규정을 과도하게 해석해 일방적으로 작업을 중지하는 일이 반복해 일어나면 공사 현장에 큰 피해가 간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런 일을 막으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