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이제는 바다의 시간! ‘파란’을 일으키다
[녹색연합 기고] 이제는 바다의 시간! ‘파란’을 일으키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7.06 14:01
  • 수정 2023.07.12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별혹산호 ⓒ 녹색연합
별혹산호 ⓒ 녹색연합

큰비가 여러 날 요란히 내렸습니다. 탈 없이 지내시는지요?

초록으로 일렁이는 여름 숲에 감탄하다가도, 불어난 물에 뭉텅뭉텅 쓸려간 삶이 애통한 날이었습니다. 자연의 흐름이 우리가 삶의 균열을 감당할 만한 속도로 와주길 바라봅니다.

생애 첫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나서 마음이 온통 바다에 가 있을 때 다큐멘터리 영화 ‘산호초를 찾아서(Chasing Coral)’ 보았습니다.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호주 북동부 해안의 거대한 산호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The Great Barrier Reef)는 규모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는 곳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광경이라는 수식어가 단번에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양과학자가 보여준 바다 속은 평화롭기보다 처절했고, 황홀하기보다 경악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산호는 점점 높아지는 수온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열을 흡수하려고 형광의 자외선 차단 물질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지요. 가장 찬란한 생존전략으로, 죽을힘을 다해 죽음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존엄’이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이 기록이 ‘존재해야 다음을 약속할 수 있고, 회복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에게도 산호의 바다가 있습니다.

분홍바다맨드라미, 금빛나팔돌산호, 해송, 별혹산호, 검붉은수지맨드라미…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07년 서귀포 앞바다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보려 산호와 바다 생태계의 어울림을 조사하면서 그 신비로운 존재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해군기지를 막아내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바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꾸준히 생태계를 살피면서 인간의 활동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 수온상승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 증거를 추적할 수 있었지요. 양식장 방류수와 생활 오폐수 오염, 레저 스포츠 확대, 생태를 침범하는 관광잠수함 운영 등 다양한 위협 요인들을 함께 조사했습니다. 그때부터 녹색연합은 바다 기후변화의 맨 앞이자 뛰어난 생물다양성의 공간인 제주바다를 중심으로 해양 보호활동을 펼쳐보자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제주는 쉼과 여행, 낭만의 상징 같은 곳입니다. 혼자든, 함께든 찾고 싶은 제주에 만약 바다가 없다면, 오름과 숲이 제 모습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남쪽 화산섬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없고 맛집과 테마파크뿐이었다면 온 국민이 사랑하는 섬이 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산호의 바다, 돌고래의 바다가 갖는 생태 가치가 제주의 정체성입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의 꼴을 갖춰 산호의 바다를 지키는 해양생태계 보호 활동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반도 남쪽의 ‘바다’라는 공간, 그 자체로의 생태가치에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푸른 바다의 온전한 모습과 변화의 물결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시나요?

기후재난의 징후나 훼손의 증거만으로는 공간과 존재의 가치를 온 마음으로 껴안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제 제주 바다의 상징, 산호가 중요한 연결자가 되겠지요. 사선(死線)에 선 바다에서 마주한 산호의 소식을 꾸준히 전하고, 우리에게 이 바다가 어떤 의미인지 알리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정치적 수용보다 주민과 시민의 자기결정권으로 공간의 존엄을 지키고 싶습니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시민에 의한 기록’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죽었다', ‘멸종했다’는 각박한 말보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가혹하게 느껴지듯 존재해야 다음을 약속할 수 있고,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뒷배 삼아 바다를 지키는 변화의 큰 물결로 만들겠습니다. 또 시민의 참여를 과학으로 이끌고, 배우고, 교육하며, 시민 해양 과학자로 함께 성장하겠습니다.

7월 8일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나와 연결된 바다의 온전한 회복을 꿈꾸며 우리의 바다, 산호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바다의 존엄을 지키는 ‘파란’의 창립 회원으로 함께 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풍경이 아닌 바다의 진짜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흐르고, 머금고, 발산하며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고, 의문투성이 바다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공간을요. 결국 땅과 바다는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생태계라는 진부한 구호가 날카로운 통찰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바다를 위한 시간에 함께 해주십시오.

파란 창립 회원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