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면 불법’되는 공무원노조 단협, “법 갈아엎자”
‘정권 바뀌면 불법’되는 공무원노조 단협, “법 갈아엎자”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8.01 17:19
  • 수정 2023.08.0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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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열어
최미경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 지부장(왼쪽)과 전은숙 종로구지부 지부장(오른쪽)이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송파구청 공무원들은 민선 8기가 들어서며 지난 23년 동안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을 빼앗겼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당선된 지 5일이 지난 시점 직원 조례에서 그간 지자체장들과 노조가 맺은 단협을 파기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단협의 내용이 불법이라는 게 이유였다. 공무원노조법 제8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으로 행하는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의 행사 등 그 기관의 관리·운영에 관한 사항 등 근무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아니하는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송파구청의 단협안에는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한다”, “인사위원회나 승진심사위원회에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최미경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 지부장은 “단협안에 인사, 승진, 예산만 들어가면 고용노동부 단체협약 시정명령 대상이 된다. 공정한 인사는 부정부패 척결에 주요하고, 승진과 예산은 조합원의 처우와 직결된다”며 “우리의 단협은 기관장님이 마음만 먹으면 불법으로 바뀐다. 그 중심에 공무원노조법이란 악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종로구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타임오프가 아직 따로 없는 공무원노조 간부들은 사측과 합의를 거쳐 경미한 업무를 보는 부서로 발령내는 내용의 단협을 그간 맺어왔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이 단협 내용을 무시하고 지부장·수석부지부장·지부장을 타 부서로 발령냈다.

전국공무원노조 종로구지부의 조합원 100여 명이 탈퇴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사측은 공무원노조법의 노조 가입 대상을 안내하는 공문을 직원들에게 4차례 내려 보냈다. 공무원노조법 제6조는 “업무의 주된 내용이 다른 공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공무원의 업무를 총괄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노조 탈퇴는 주로 6급 공무원 상당에서 이뤄졌는데, 기초단체의 경우 6급을 업무분장에 ‘업무총괄’이라 관행적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반발한 전은숙 종로구지부 지부장은 중징계가 의결될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편견과 오류에 기초한 공무원노조법
폐지 안 되면 개정이라도 해야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전호일)과 강성희·민형배·용혜인·이은주·진성준 의원이 1일 오전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노조법 대신 공무원노조법을 적용받는 공무원들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앞선 송파구와 종로구처럼 단협에 담을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단협이 부정당한 상황은 단체교섭권이 제약된 사례라 볼 수 있다. 6급 상당 공무원을 조합 가입 대상으로 보기 어렵단 종로구의 판단은 단결권을 축소한 공무원노조법의 조항을 활용했다. 또 공무원노조법은 단체행동권의 핵심인 파업권 행사를 금지한다. 전국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조법을 아예 폐지하고 민간 부문의 노동자들이 적용받는 노조법을 공무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무원노조법이 제약하는 노동3권이 과도할 뿐더러 노조 탄압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단 주장이 주로 나왔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현재 정부는 공무원들의 단체협약 조항을 불법 단협이라고 규정하고 단체협약 시정명령 이행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불법이라 지적한 부분은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한국의 공무원노조법이 가진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며 “한국의 공무원노조법은 단결 활동을 제한하고,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단체교섭 대상을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공무원노조법처럼 별도의 특별법적 규율이 바람직하지 않다. 일반 노동자와 동일한 노조법 적용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현행 공무원노조법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실현하려면 단체협약의 효력을 강화·확장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주영 부원장이 제안한 제도 개선안은 △비교섭사항 폐지와 단협 효력 이행을 보장하는 법적 의무절차 도입, 불이행에 대한 징계 등 근거규정 마련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지를 통한 자유로운 노사교섭 활성화 △임의적 교섭 사항이라도 결렬될 시 중재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보장 등이다.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도 “(국제노동기구 산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이 행하는 공공서비스나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의 경우 파업권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본다”며 “쟁의행위권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은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기준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공무원을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로 해석하는 것은 파업권이 제한되는 공무원의 개념을 확장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편견과 오류에 기초가 있다면 기초 자체를 허물고 새로운 기초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공무원노조법은 기초 자체가 잘못돼 있기 때문에 폐지 후 노조법 개정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 기초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박은정 교수는 덧붙였다.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진행됐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개정’ 이야기만 수십 년
공무원노조 과제는?

“공무원노조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의원들과 이야기하면 ‘개인적으론 동의하는데 솔직히 우선입법 법안이 되는 건 어렵다’고들 말한다”고 운을 뗀 박정윤 진보당 정책실장은 “오히려 지금 던지고 싶은 질문은 공무원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해 노동조합은 무엇을 할 거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윤 정책실장은 “진단도 냉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단결한 조합원의 힘이 중요하다면 조합원이 임금, 연금, 승진 문제만큼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을 정말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며 “조합원 교육, 특히 청년 노동자 교육에 각별한 관심과 투자가 중요하다. 청원에서 입법으로 가는 고단한 과정도 조합 중앙의 국회 사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이 직접 움직이는 대국회 사업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노동수석전문위원도 “공무원노조가 원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오늘 처음 봤다. 솔직히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다”며 “사회적 여론과 국민 공감대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숙고와 숙의도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토론회를 들은 공무원들은 답답함을 전했다. 김상호 강북구지부 지부장은 “우리도 (지자체장들이) 이렇게까지 할지 상상 못 했다”며 “이런 토론회 수백 번 했다. 이것(개정)도 안 할 거지 않냐. (야당이) 집권하면 좀 제대로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열 서울지역본부 본부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동일한 국민으로 존재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민형배·이은주·진성준 의원 등은 토론회 끝까지 자리했다. 공무원들의 토로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송파구와 종로구의) 사례발표를 듣고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됐을까 싶었다. 공무원노조법은 국회가 만든 것이고, 입법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탄압은 받아들이면 더 심해진다. (노조가) 더 거칠게 행동하고 국회를 향해서도 더 세게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