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설계 불가” 과기부 공무직도 미래를 꿈꾸고 싶다
“미래 설계 불가” 과기부 공무직도 미래를 꿈꾸고 싶다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8.25 16:00
  • 수정 2023.09.21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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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공무직 이야기③] 우정사업본부 우정실무원 박창근·김미영 씨
“미래 안 보여···합계출산율 0.78명 이해 간다”

끝나지 않은 공무직 이야기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을 뜻하는 공무직. 본래 일용인부, 기타인부 등으로 칭해졌던 그들은 공공부문에 존재했지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노동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통해 기간이 없는 근로계약을 대거 체결하게 됐다.

임금과 복지수준이 기관·지자체마다 다르고, 공무원과 각종 수당 등이 다른 공무직의 현안들을 논의하는 ‘공무직위원회’라는 기구도 국무총리 훈령에 근거해 꾸려졌다.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공무직위원회가 종료된 지금의 공무직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위원장 현정희, 이하 공공운수노조)와 조명하기로 했다. 환경부 4대강 물환경연구소, 문체부 국립중앙박물관, 과기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공무직들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동서울우편집중국의 야간 모습 ⓒ 김미영 민주우체국본부 동서울우편집중국지부 여성부장

‘전국 1등’ 택배 우체국소포
밤새 소포 분류하는 우정실무원

우체국소포는 전국 1등 택배 서비스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전국의 택배 사업자를 대상으로 택배 서비스 능력을 평가해 발표한다. 우체국소포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째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우체국소포의 택배(소포) 개수는 연간 3억 2,000만 통 수준이다. 10년 전인 2012년(1억 6,000만 통)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매일 87만 통의 소포가 우체국에서 보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소포는 누가 다 분류할까.

바로 ‘우정실무원’이다. 이들은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공무직이다. 우정실무원의 업무를 이해하려면 우체국소포가 배송되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전국 각지 우체국에서 오후 6시까지 취합된 소포 등 우편물은 가장 가까운 우편집중국으로 보내진다. 해당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우정실무원들은 받은 소포를 밤새워 분류한다. 우정실무원들은 이렇게 매일 87만 통의 소포를 배송하기 좋게 분류한다.

우편집중국엔 공무직뿐 아니라 공무원도 있다. 팀장급 공무원은 우체국에서 넘어온 우편물의 분류와 배송에 대한 포괄적인 업무계획을 세운다. 그 후 일선의 주임급 공무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한다. 일선 공무원들은 계획을 세분화해 우정실무원에게 날마다 처리해야 할 우편물 물량의 규모와 작업순서 등을 알려준다.

고강도의 야간노동
일의 중요성에 비해 대접 못 받아

고중량 물건을 쉴 새 없이 나르는 우정실무원의 노동강도는 세다. 5년 차 우정실무원 박창근 민주우체국본부 동서울우편집중국지부 사무부장은 일이 건설노동만큼 고되다며 “노가다”라고 표현했다. 박창근 사무부장은 “꾹꾹 눌러 담은 김치라도 맡게 되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근 전국민주우체국본부 동서울우편집중국지부 사무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미영 민주우체국본부 동서울우편집중국지부 여성부장도 “야간에 분류작업을 마쳐야 다음날 배송을 시작할 수 있어 우정실무원들은 주로 야간에 일한다. 강한 노동강도만큼 힘든 것이 바로 심야 노동”이라고 토로했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우정실무원의 일은 고되지만, 우편물을 배송하는 일을 하는 우정사업본부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정실무원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일의 중요도에 비해 대접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정실무원들의 취업규칙을 보면 이들의 업무는 ‘우편물 분류’가 아닌 ‘단순보조업무’로 정의돼 있다. 박창근 사무부장은 “업무에 대한 정의만 봐도 우정사업본부에서 우정실무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다.

박창근 사무부장은 “이런 왜곡된 인식이 차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박창근 사무부장은 “우리(우정실무원)가 공무원들과 같은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업무와 상관없는 복지수당은 같게 지급해야 하지 않나”고 주장했다. 우정실무원들은 명절수당·가족수당·경영평가상여금 등 복지수당을 공무원보다 적게 지급받는다. 예를 들어 공무원은 기본급의 60%를 명절상여금으로 받는다. 우정실무원은 55만 원을 받는다. 2023년 9급 1호봉(기본급 177만 800원)을 기준으로 해도 금액이 두 배가량 차이 난다.

공무직과 공무원 사이 복지수당 차등 지급이 차별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공무원과 공무직 간 직무와 무관한 수당 격차는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공무원과 공무직은 서로 다른 집단이므로 수당의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는 법원 1심 판결도 나온 바 있다.

‘나쁜 일자리’ 공무직 변해야
정부가 모범사용자 역할 해야

분명한 것은 우정실무원을 비롯한 공무직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김미영 여성부장은 인터뷰 도중 “미래가 안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급제로 운영되는 우정실무원의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루에 6~8시간 정도 일하면 한 달에 220~27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 김미영 여성부장은 “고강도·야간노동을 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미영 여성부장은 “게다가 근속수당도 1년에 1만 원 오른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근속수당이 20만 원”이라며 “20년 이상 숙련을 쌓고, 로열티를 보여준 노동자에게 어제 들어온 신입사원보다 고작 20만 원 더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해 전국의 공공기관에 퍼져있는 대다수의 공무직은 우정실무원과 비슷한 처지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근속수당 또한 낮다. 복지수당에서 공무원과 차이 또한 크다. 또 공무직 노동조건에 관한 일관적 기준이 부재해 해당 기관장이나 상급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이런 노동조건마저 시시각각 변하곤 한다.

박창근 사무부장은 “경력이 쌓이면 임금이 오르고,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없다. 그러다 보니 결혼해 아이를 낳는 등의 미래 설계를 할 수가 없다. 까놓고 말해 이게 공무직만의 문제겠나. 이런 일자리가 전국에 넘치니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것”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도 “한국은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크다. 일명 ‘노동시장 이중구조’다”라며 “공무직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부문에서부터 정부가 일자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일자리 간 격차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모범사용자 역할을 하면 이 모델이 민간 등 전체 노동시장에 퍼져 노동조건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공공부문 일자리인 공무직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면 이것이 민간에선 공무직 같은 나쁜 일자리가 양산해도 된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도 공석식 정책실장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