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260’ 환경부 공무직은 사람 아닌 사업
코드 ‘260’ 환경부 공무직은 사람 아닌 사업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8.23 15:48
  • 수정 2023.08.23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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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공무직 이야기①] 4대강 물환경연구소 공무직 김정환·신경용 씨
억지로 쓴 ‘임금 삭감 계약서’, “공무직은 장갑 살 돈도 없다”

끝나지 않은 공무직 이야기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을 뜻하는 공무직. 본래 일용인부, 기타인부 등으로 칭해졌던 그들은 공공부문에 존재했지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노동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통해 기간이 없는 근로계약을 대거 체결하게 됐다.

임금과 복지수준이 기관·지자체마다 다르고, 공무원과 각종 수당 등이 다른 공무직의 현안들을 논의하는 ‘공무직위원회’라는 기구도 국무총리 훈령에 근거해 꾸려졌다.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공무직위원회가 종료된 지금의 공무직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위원장 현정희, 이하 공공운수노조)와 조명하기로 했다. 환경부 4대강 물환경연구소, 문체부 국립중앙박물관, 과기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공무직들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확대하는 정부예산편성 고발 중앙행정기관 공무직 노동자 증언대회 및 국회의원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확대하는 정부예산편성 고발 중앙행정기관 공무직 노동자 증언대회 및 국회의원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정환 씨와 신경용 씨를 비롯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직들이 10일 여의도에 모였다. 단기적으론 낮은 임금과 수당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예산을 내년에 편성해야 하고, 장기적으론 없어진 공무직위원회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국회의원들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직위원회를 상설화하는 이른바 ‘공무직위원회법’을 대표발의한 김주영 민주당 의원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이 만남에 응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의원들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모두발언의 끝을 맺었다.

김정환·신경용 씨와는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가 끝난 뒤 따로 만났다. 신경용 씨는 공무직위원회가 가동됐을 때만 해도 일부 처우의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식대와 명절상여금은 만 원이라도 매년 조금씩 올랐다. 무엇보다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적한 공무직들의 현안을 다뤘단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공무직위원회라는 창구를 잃은 후론 목소리를 내도 기재부라는 벽에 막혔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김정환 씨도 “공무직위원회에 기재부 담당자가 나오고, 고용노동부가 나오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의 기능도 사라지게 됐다”며 “공무직들은 기관별 교섭에선 못 하는 부분이 많다. 공무직위원회는 꼭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호봉제 폐지 동의하지 마
대신 내년에 나가면 돼”

통일되지 않은 체계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공무직들이 말하는 각자의 문제는 기관별로 조금씩 다르다. 다만 큰 틀에서의 공통점은 찾을 수 있다. 김정환·신경용 씨의 임금은 인건비로 따로 잡혀있지 않고, ‘수계기금(코드 260)’이라는 사업비 예산에서 나온다. 수계기금은 환경부가 진행하는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집행하는 기금 중 하나다. 김정환 씨는 금강물환경연구소에서, 신경용 씨는 한강물환경연구소에서 하천의 수질과 유량을 조사하는 업무를 한다. 주로 환경이나 토목을 전공한 석박사급의 인력이 채용된다. 직급도 ‘전문연구원’이라 불린다.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4개의 강이 있지만 영산강 물환경연구소만 공무직 노동자들에게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나머지 물환경연구소는 직급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 호봉제를 쓰는 영산강 물환경연구소가 다른 강들보다 임금이 높다. 4대강의 임금 수준과 체계가 달라지게 된 이유는 나머지 세 개의 강에서 일하는 전문연구원 공무직들이 사측이 권유한 ‘임금 삭감 계약서’에 2019년경 사인했기 때문이다.

수계기금의 사업 중 공무직 인건비의 비중이 높으니 이걸 줄여 사업비를 늘려보자는 게 이유였다. 신경용 씨는 “사업비가 계속 증액이 안 되고 인건비가 증가하다 보니까 ‘예산이 부족하다, 너네 월급 깎아야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몇 번을 압박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 과정에서 협박도 공통적으로 있었다. 환경부 공무직 운영규정엔 업무량 변화와 예산 감축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때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단 조항이 있다. 김정환 씨는 “3분의 2가 동의를 안 하면 안 하겠다고 해서 부동의를 했는데, 동의를 안 하니까 실명을 적어서 내라고 했다”며 “‘부동의해봐. 대신에 내년에 나가면 돼’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차라리 잘리는 것보다는 월급이 깎이는 게 낫다고 다들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측은 구두상으로 깎인 월급만큼 수당으로 인건비를 보존해 주겠다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일정 조건이 채워지면 임금이 오르니 박사를 따고 들어온 신입이 10년 넘게 일한 선배와 같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생겼다. 전문연구원 공무직들에게 근속수당은 없다.

신경용 씨는 애초에 공무직의 임금을 유동적인 사업비에 편성한 것이 잘못됐다 말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거죠. 예산을 10%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 인건비는 빼고 줄여야 하잖아요. 내년에 내 (임금에 대한) 예산이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를 걱정한다는 게, 그렇게 일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신경용(왼쪽) 씨와 김정환(오른쪽) 씨를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사업비에 인건비 포함돼 
실제 사업비는 만성 부족

인건비가 사업비에 잡혀 있어 겪는 불편은 전문연구직들이 일할 때도 드러난다. 위에선 사업비를 줄이라고 압박하는데, 인건비를 더 줄일 순 없으니 필요한 물품을 사지 못하기도 한다. 김정환 씨는 “내년에도 우리한테 사업비를 10% 줄이라고 하는데, 인건비를 줄일 순 없으니 우리가 줄여야 할 사업비는 10% 이상”이라며 “기름값을 줄일 수도 없고. 그러면 현장의 안전용품을 못 사게 된다. 올해도 돈이 없어서 장갑을 못 샀다. 몇 시간 동안 하천 가운데서 수질을 측정해야 하는데 온열 질환에 대한 대처 같은 경우도 당연히 전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김정환·신경용 씨는 문제를 해소할 실마리가 이들의 임금을 수계기금이 아닌 공무직 인건비로 따로 편성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 사업비론 사업만 할 수 있고, 사업비가 부족하단 이유로 인건비를 줄여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말들을 공무직위원회에서 더 하고 싶었다. 환경부와 교섭을 하면 ‘기재부 지침 때문에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해 들을 뿐이었다. “기재부 지침이 노동법보다 우선되고 있잖아요. 오히려 법을 가볍게 여기고 지침을 중요시하는 건 정부 기관으로서 본인들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공무직위원회가 분명히 공무직들만의 산별 교섭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계속돼야 하는 거죠.” (김정환 씨)

“저희가 환경부 공무직으로 교섭을 하면 교섭하는 사람이 환경부 장관의 위임을 받고 나왔다고 하지만, 뭘 이야기하면 ‘이거는 우리 권한이 아니라고, 기재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해요. 도대체 우리는 누구랑 교섭을 해야 되는 건지. 저는 진짜 이거 이야기하고 싶어요.” (신경용 씨)

한편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리로 돌아가서, 김정환 씨 옆엔 문체부 국립중앙박물관 공무직인 전용학 씨가 앉아 있었다. “이 자리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자리였으면 좋겠고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닌 공무직들의 암울한 현실을 가슴 깊이 깨달으셨으면 좋겠다”고 발언을 시작한 전용학 씨를 간담회 이후 찾았는데, “이럴 줄 알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초반에만 앉았다 떠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환경부도 그렇지만 문체부 공무직들도 할 말이 많았다.

(“잘못된 건 꼭 고치고자” 싸우는 문체부 공무직들) 기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