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와이퍼 사태가 남긴 것
[기고] 한국와이퍼 사태가 남긴 것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8.30 12:10
  • 수정 2023.08.3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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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현철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
정현철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장

“우리의 고통에 기꺼이 함께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기에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터를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고용기금을 통해 한국 사회 고용 약자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한국와이퍼 노사합의 타결 의미와 향후 과제’ 기자회견에서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은 한국와이퍼 투쟁에 연대해 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022년 7월 7일 한국와이퍼(이하 회사)의 일방적인 청산 발표로 촉발된 ‘한국와이퍼 청산에 따른 대량 해고 사태’는 2023년 8월 16일 노사합의 조인식으로 일단락됐다.

한국와이퍼 사태는 1년이 넘는 긴 시간과 외국인 투자자본 먹튀 문제, 불법대체 생산 문제, 산업전환기 고용 문제 등 복잡한 이슈가 얽혀있다. 사태 초기에 많은 이들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던 이유다.

한국와이퍼 사태의 원인과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

‘한국와이퍼 사태’ 전개 과정을 통해 사태의 원인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2022년 7월 7일. 덴소코리아는 “와이퍼시스템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으나, 부품사인 한국와이퍼는 청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와이퍼분회는 2020년, 2021년 맺은 ‘고용안정 단체협약’ 위반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국와이퍼는 덴소코리아의 하청업체로, 일본 덴소자본이 100% 지분을 소유한 외국계 회사다. 덴소코리아는 한국와이퍼로부터 블레이드 등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한 후 와이퍼시스템을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에 공급한다. 

한국와이퍼의 고용 불안은 2012년 일본덴소와이퍼시스템(DNWS)이 한국와이퍼에 일본 수출품 라인을 깔았다가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본격화된 것은 2018년부터였다. 덴소자본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한국 내 3개 법인을 덴소코리아(DNKR)로 통폐합하고 적자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불안감을 느낀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2018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회사가 영업활동을 중지하자 2020년, 2021년 고용협약을 통해 ‘노조와 합의 없이 회사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국와이퍼(KWB), 덴소코리아(DNKR), 덴소와이퍼시스템(DNWS)으로부터 받아냈다. 하지만 2021년 11월 맺어진 단체협약은 불과 8개월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2022년 10월 14일. 덴소코리아 화성공장에서부터 3박 4일간 90km 도보행진을 마친 ‘한국와이퍼 청산철회! 덴소먹튀방지법 제정! 덴소규탄 뚜벅이’ 150여 명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도착했다. 한국와이퍼와 덴소자본은 2020년, 2021년 단체협약에서 ‘대체생산 체계를 마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덴소자본은 창원에 대체생산 공장을 마련해 한국와이퍼에서 생산하던 와이퍼를 납품했다. 현대차의 승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20년, 2021년 당시 파업으로 인해 청산이 좌절됐던 덴소는 ‘제삼자에게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갔다. 노조법의 대체생산 조항보다 처벌이 약한 단협 위반을 선택한 것이다. 파업권이 무력화된 노조는 문제를 사회·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덴소규탄 뚜벅이는 국회로 향했다. 뚜벅이 마지막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한국와이퍼 정주력 대표이사와 최윤미 분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2년 10월 24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주력 대표이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만 반복했고, 최윤미 분회장은 ‘외투자본의 먹튀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이미 9월 19일 MBC 보도를 통해 회사가 “치밀하게 먹튀 준비”를 한 청산문건이 밝혀졌지만, 10월 5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온다 요시노리 덴소코리아 사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한국와이퍼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됐다.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장이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위장청산철회, 불법대체생산중단 한국와이퍼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장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위장청산철회, 불법대체생산중단 한국와이퍼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022년 11월 7일.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와이퍼 사태 해결을 위해 무기한 단식 천막 농성에 돌입한다”라고 발표했다.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의당, 지역구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단식 농성장을 지지 방문했고 한국와이퍼 사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산·시흥 지역에서도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며 45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외투자본 덴소 규탄 한국와이퍼 노동자 일자리 보장을 위한 안산시민행동’을 결성했다. 시민행동은 안산시장, 시의회 의원,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장, 지역구 국회의원 면담을 진행했다. 안산시의회는 만장일치로 ‘한국와이퍼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은 매일 국회로, 매각처로 알려진 DY로, 현대차로, 고용노동부로 달려갔다.

2022년 12월 21일. 최윤미 분회장이 ‘단식 농성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단식 44일 차였다. 덴소자본은 ‘최윤미 분회장이 단식을 중단하면 교섭에 참가하겠다’고 고용노동부 통해 전달했다. 함께 동조단식을 했던 이규선 지부장은 단식을 이어가기로 했다. 최윤미 분회장이 단식 중단을 선언한 날 1차 일본 원정투쟁단이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 원정투쟁단은 일본의 노동단체들과 간담회를 통해 한국와이퍼 사태를 알리고, 연대 단위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을 했다. 일본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에게 감명을 받았다. 나고야에 있는 덴소 본사에 도착해 교섭 요청을 했으나 덴소자본은 끝까지 교섭을 거부했다. 한국에서 교섭 상황도 ‘분회장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한 기만행위’였음이 드러났다.

2022년 12월 30일. 회사가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을 폐쇄했다. “12월 30일부로 영업을 종료하고, 1월 2일부터 휴업한다”고 통보했다. 회사는 3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총 12명이 이에 응했다. 남은 조합원은 209명이다. 

2023년 1월 2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화장실 사용조차 막은 비인간적인 처사를 규탄하며 열린 틈으로 현장에 들어갔다. 2023년 첫날부터 시작된 현장 지킴이 농성은 216일간 지속됐다. “한겨울 전기장판을 깔고 시작해 한여름 모기들과 함께 마무리됐다.”

2023년 1월 30일. “분회장님 해고금지 가처분 인용됐습니다.” 법무법인 여는의 장석우 변호사가 감격스럽게 소식을 전해왔다. 법원이 ‘노조와 합의 없이는 해고를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설 명절 전 해고 통보를 받고 움츠러들었던 노조에 날아든 한 줄기 빛이었다. 공수가 전환됐다. 공세적으로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회사에 제동이 걸렸다.

2023년 2월 13일. 2차 일본 원정 투쟁에는 함재규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동행했고, 규모도 대폭 확대됐다. 2월 14일~15일 일본 덴소 본사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원정투쟁단은 ‘한국의 매운맛’을 단단히 보여줬다. 회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덴소 본사의 정문이 봉쇄됐다. 한국와이퍼는 2월 22일 1차 설비 반출을 시도했다. 노조는 3월 2일 불법 대체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창원 엘소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2023년 3월 15일. 이른 아침부터 회사 앞에 긴장감이 돌았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회사 주변을 둘러쌌다. 회사가 2차 설비 반출을 시도한 것이다. 경찰이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을 폭력적으로 밀치고 공장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20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다쳤다. 정권 교체 후 달라진 경찰의 모습이었다. ‘자본의 불법에는 눈감고 노조에만 선택적으로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하수인’이라는 비판이 경찰에 쏟아졌다. 3월 15일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비난도 함께 일었다. 더구나 3월 13일 고용노동부 중재로 덴소 측과 교섭 자리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는데, 난데없이 경찰이 끼어들어 판을 엎어버린 것이다.

2023년 4월 12일. 3.15 경찰 폭력 사태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자 다시 교섭 테이블이 열렸다. 고용노동부 중재로 덴소코리아(DNKR), 덴소와이퍼시스템(DNWS), 한국와이퍼(KWB)와 금속노조(지부, 지회, 분회) 간담회가 열렸다. 5시간이 넘게 진지하게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KWB의 청산결정, DNKR의 와이퍼사업부 철수와 전반적인 경영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 또 △KWB 청산 결정에 대한 유감 표명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을 DNKR이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점 △이후 KWB 청산 과정에서 DNKR, DNWS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을 확인했다. 5자 간담회 이후 노조는 내부 간담회, 총회 등을 통해 새로운 교섭 요구안을 마련하고 회사에 본교섭을 제안했다.

2023년 6월 20일. 5차례 걸쳐 진행된 본교섭은 진척이 없었다. 노조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5월 30일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투쟁으로 전환했다. 교섭 기간에 중단했던 투쟁을 재개했다. 투쟁이 재개되자 다시 덴소가 교섭 자리에 나왔다. 의미 있는 진척을 이뤘으나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덴소는 노조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덴소의 100차 주주총회를 앞두고 3차 일본 원정투쟁단이 출발했다. 6월 20일 최윤미 분회장이 나고야 덴소 본사 앞에서 삭발 투쟁을 진행했다.

2023년 7월 26일.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이 덴소코리아 화성공장 앞에 모였다. 투쟁 결의를 다지고 4차 일본 원정 투쟁단 발대식을 했다. 회사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집회가 끝난 후 고용노동부에서 연락이 왔다. 7월 31일 덴소와 교섭이 재개됐다.

2023년 8월 16일.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한국와이퍼 단체협약 조인식이 진행됐다. 한국와이퍼 투쟁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와이퍼 노사는 16일 오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사회적 고용기금 운영 합의서’ 조인식을 개최했다. ⓒ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한국와이퍼 노사는 지난 8월 16일 오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사회적 고용기금 운영 합의서’ 조인식을 개최했다. ⓒ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함께 새로운 걸음 걷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기쁨보다 서글픔이 먼저 밀려왔다. 회사를 잃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조합원들이 눈에 밟혔다.

사측의 위로금을 거부한 209명 조합원들은 마지막까지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단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산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9명 전 조합원의 고용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와이퍼분회는 ‘사회적 고용안정기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조는 한국와이퍼 사태의 원인을 △덴소 자본의 약속 불이행 △외투기업에 대한 규제나 산업전환에 대한 사회적 고용안전망 부족으로 보고, 덴소로 직접고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덴소의 약속이행과 사회적 책임 강화 △사회적 고용안전망 강화가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 △이후 DNKR이 신규 채용을 하게 되면 KWB조합원 우선채용 △이미 합의된 조합원에 대한 위로금(조정) △사회적 고용안정기금 출연을 요구했다.

노조는 회사에 사회적 고용기금 310억 원 요구했다. KWB의 청산자본(토지, 기계 포함) 1,300억여 원 중 310억 원은 DNKR이 KWB에 부과한 ‘공금의무 면제금’으로 일종의 손해배상 같은 것이다. 노조는 이것이 덴소가 스스로 부과한 셀프배상일 뿐 아니라 제2의 먹튀자금으로 보았다. 따라서 노조는 ‘이 면제금을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과 한국사회에 내놓는 게 외투자본 덴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와이퍼분회가 사회적 고용기금을 요구한 배경에는 반면교사인 2015년 ‘오스람 사태’가 있었다. 2014년 말부터 1년 넘게 진행된 오스람 사태도 한국와이퍼와 유사하게 진행됐다. 독일의 글로벌 자본으로 조명기구를 만드는 오스람은 조명산업이 형광등에서 LED로 전환됨에 따라 한국공장 폐쇄(청산)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대체수입’(안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해외의 공장에서 수입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노조의 파업권을 무력화시켰다. 한국와이퍼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고용안정협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1년 넘게 투쟁을 한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버티면 된다’는 이야기 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다. 고용 공포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계속 버티라고 하는 것도 산별노조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결국 100여 명의 노동자들은 회사가 제시하는 초라한 위로금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

금속노조는 2019년 〈산별교섭 발전방안 연구〉를 통해 ‘산별 고용안정 체계’ 방안을 제출한 바 있다. 산별 고용안정 체계란 “노동자의 일자리가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산업 차원에서 수평 이동 혹은 상향 이동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취업 알선을 실시하며, 실업을 당했을 때 생계비용을 안정되게 보장함으로써 산업 차원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말한다. 기금은 산별고용보험이나 산별연금을 통해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사회적 고용안정기금은 우리 사회에서 낯선 개념이다. 

우리 사회의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적 고용안전망으로 인해 노동자는 ‘해고는 살인’이라 생각을 갖고 있다. 또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반월시화공단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실업위기에 놓여 있다. 통계에 따르면 반월시화공단에서는 1년에 200개 업체가 폐업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와이퍼 사태도 크게 보면 산업전환기 구조조정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일련의 투쟁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실감하고 본인들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함을 알게 됐다. 사회적 고용안정기금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용문제를 고민하고 고용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실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조합원의 재취업을 위한 사업, 사회적 일자리 마련 사업, 실업 기간 생계비 지원 등을 마련하고자 했다. 더불어 사회적 고용 약자를 위한 사업도 고민했다.

비록 큰 규모의 기금은 아니지만 한국와이퍼분회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 사회적 고용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있다. 한국와이퍼분회는 ‘기금 운영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사용방안에 대한 모델을 연구하고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참여를 끌어 낼 계획이다. 토론회 등을 통해 기금설립과 운영에 대한 방향을 공론화하고, 올해 안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한국와이퍼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외국계 자본의 일방적 철수 시 발생하는 대량해고와 국민세금으로 지원된 외국계기업 인센티브 환수방안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불법대체 생산과 단체협약 미이행에 대한 강력한 처벌 △노사분규 현장에 대한 경찰의 무분별한 공권력 남용 △산업전환기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여성, 고령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화 방안 등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와이퍼 사태에서 제기되고 확인된 여러 가지 문제는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않는다. 투쟁을 통해 각성한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이 스스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결의 주체로 나설 계획이다. 비록 회사는 없어졌지만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은 분회를 유지하면서 흩어져 각자도생하기보다는 ‘서로 함께’ 새 삶을 모색할 계획이다. 한국와이퍼분회는 ‘조합원 재도약을 위한 설문조사’를 통해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분회 조합원들도 ‘세상을 바꾸는 희망 뚜벅이들’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9월 8일 열릴 한국와이퍼 분회 승리 보고대회를 다 같이 준비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이들은 “이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조속히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다친 마음을 치유받고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누리길 기원한다”며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 이글은 한국와이퍼투쟁에 대한 공식 평가가 아닌 필자의 개인 의견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