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환섭 위원장 “이번 임기 내 산별노조에 걸맞은 시스템 정립”
신환섭 위원장 “이번 임기 내 산별노조에 걸맞은 시스템 정립”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9.26 11:55
  • 수정 2023.09.27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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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지역별 교섭 시스템 만들 것···시민사회와도 지속해 연대”
[인터뷰]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 인터뷰
신환섭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022년 2월 16일 화학섬유연맹을 해산하면서 화섬식품노조는 ‘산별노조 단일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그 후 지난 21일 화섬식품노조 제8기 임원 선거에서 위원장에 당선된 신환섭 위원장은 화섬식품노조의 산별노조 단일체제 전환 후 선출된 첫 위원장이다. 신환섭 위원장에겐 기존 석유화학, 섬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화섬식품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한 식품, ICT, 타투 노동자까지 화섬식품노조라는 하나의 산별노조 안에서 융합시켜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때문인지 2009년부터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을 맡아온 신환섭 위원장도 “이번 당선은 무게감이 남다르다”고 말한다. 참여와혁신은 당선 다음 날인 22일 서울 동작구 화섬식품노조 사무실에서 신환섭 위원장에게 이번 임기의 계획을 물었다.

- 당선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이번 선거는 화학섬유연맹을 해산하고, 화섬식품노조 단일 체제로 치른 첫 번째 선거다. 이번 임기에 우리 화섬식품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선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현장에서 새로운 노동조합을 기대하고 있을 조합원들과 멋진 산별노조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이번 선거운동 기간, 전국을 순회했다.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을 텐데, 현장의 화두는 무엇이었나?

화섬식품노조엔 우리나라 산업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섬유, 석유화학노동자부터 산업의 최첨단을 달리는 ICT노동자까지 다양한 노동자가 가입돼 있다. 그래서 선거운동 동안 산업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석유화학노동자들은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중국에 석유화학제품을 많이 수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석유화학제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석유화학산업이 산업적으로 위축돼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 등을 겪고 있었다.

ICT 분야엔 이제 막 노동조합이 생기기 시작한 데다 젊은 노동자들이 많아 노동조합의 응집력이 약한 곳이 많다. ICT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 기존 임원 선거에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만 뽑아오던 화섬식품노조가 이번 선거에선 부위원장 4인도 함께 선출했다.

화섬식품노조를 중앙 임원진이 탄탄한, 산별노조다운 모습을 갖춘 노동조합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어 부위원장을 선출했다. 사실 화섬식품노조의 규약상 부위원장 4명 선출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화섬식품노조는 중소기업 사업장이 많은 노동조합이다. 카카오, 네이버 등 큰 사업장이 들어온 지금도 50인 미만 사업장이 절반을 넘고, 1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70.8%다. 부위원장을 하려면 사업장에서 파견을 나와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는 사업장이나 조합원이 부족해 뽑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산별노조로 새롭게 출발하는 만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분야별로 부위원장을 꼭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야별로 부위원장을 선출했다. 권승미 부위원장(여성), 최진만 부위원장(비정규직), 오세윤 부위원장(ICT)이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문경주 부위원장은 석유화학, 섬유 등 기존 업종을 맡는다.

부위원장들은 맡은 분야의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예정이다. 동시에 각 분야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왔는지 화섬식품노조 중앙에 알리는 소통 창구 역할도 맡기려고 한다. 이번 임기에 부위원장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싶다.

더불어 화섬식품노조 사무처 인력도 많이 충원할 예정이다. 산별노조에 걸맞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부위원장뿐 아니라 사무처 직원들의 역할도 명확하게 정립해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화섬식품노조를 만들고 싶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화섬식품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현재 화섬식품노조의 산별교섭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나?

우리나라는 산별교섭을 제도화하지 않고 있다. 교섭이 법제화가 안 돼 있다 보니 노조가 교섭하자고 해도 회사가 교섭에 나오지 않으면 산별교섭은 이뤄지지 않는다. 모양새는 산별노조여도 형식적인 산별노조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산별노조의 현실이다.

우리 고민은 거기서 출발했다. 노동조합은 법을 지키는 것만큼 노사 간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법과 무관하게 노사 자치를 통해 산별교섭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화섬식품노조의 전략은 ‘묶음 교섭’이다. 화섬식품노조 안에는 석유화학노동자부터 ICT노동자까지 서로 상이한 노동자들이 있다. 같은 산별노조 소속이라고 무작정 같이 교섭할 순 없다. 그래서 업종별·지역별로 사업장 상황에 맞게 묶어서 교섭을 시도할 것이다. ICT는 ICT 업종끼리 묶어서 교섭을 시도할 생각이다. 그리고 여수국가산업단지에는 사내하청지회들이 많다. 여기서는 여수라는 지역으로 지회들을 묶어 교섭해 볼 예정이다. 꼭 지역이나 업종이 아니더라도 공통점이 있는 사업장끼리 묶어서 교섭을 시도할 계획이다. 이런 형태의 교섭이 개념적으론 산별교섭이 아닐 수도 있다. 화섬식품노조는 법과 개념을 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교섭을 시도하려고 준비 중이다.

- 산별노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8기 지도부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산별노조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한 교섭을 하는 것을 넘어 노조가 산업적으로도 사용자 측에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시도할 예정이다.

첫 번째, 정책 역량 강화다. 정책 역량 강화를 통해 설득력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화섬식품노조 본조 차원에서 정책 관련 인력을 지속해 충원하면서 정책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다음은 교섭력 강화다. 경영은 경영진만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경영에 관여한다는 생각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곤 한다. 그래서 무조건 정책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적절하게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 교섭력을 키워 우리의 정책을 하나씩 관철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 공약 중 ‘조합원 5만 시대 달성’이 있다. 현재 화섬식품노조는 3만 8,000명 규모다. 조합원 5만 명 시대로 가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나?

기존의 석유화학이나 섬유 사업장의 경우, 지금으로선 조합원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사업장 인력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기 때문이다. 이런 업종에서는 조직을 확대하기보다는 유지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다만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 다른 노동자를 최대한 포괄할 예정이다. 과거 화섬식품노조엔 비정규직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롯데첨단소재사내하청지회 건설을 계기로 여수국가산업단지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화섬식품노조 안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화섬식품노조가 필요하다면 큰 사업장이든 작은 사업장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할 예정이다.

ICT 사업장들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큰 사업장들이 주로 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ICT 산업 내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업장들도 정말 많다. 화섬식품노조 내 ICT노동조합이 많은 만큼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 작은 ICT 사업장들을 적극 지원해 조직화할 생각이다.

- 업종의 다양성이 산별노조로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방해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산별노조로서 다양한 업종을 포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뻔한 대답이지만,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를 융합시키려면 지속적인 소통으로 서로를 이해하게끔 만드는 수밖에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화섬식품노조 안 업종이 다양해지면서 지난 2022년 ‘공감노조’로 노조의 명칭을 변경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새로 들어온 ICT노동자들은 대체로 명칭을 바꾸는 것에 찬성했다. 반면 기존 석유화학노동자들은 노조 이름에서 업종이 빠지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집행부가 석유화학노동자들에게 화섬식품노조라는 명칭으론 포괄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또 명칭 변경을 한다는 것이 기존 조합원을 소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님을 계속 알렸다. 결국 명칭 변경은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라가 표결까지 이어졌다. 3표가 모자란 탓에 명칭 변경안은 부결됐다. 그렇지만 서로 대화를 통해 견해차를 좁혀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계속 대화를 통해 견해차를 좁혀 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 8기 집행부가 계속해 나가야 할 숙제다.

- 선거 공약 중 시민사회와 연대를 강화한다는 공약도 있다.

지난 파리바게뜨지회 투쟁 당시 시민사회가 뜨거운 지원을 해줬다. 당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질 정도로 시민사회의 연대는 뜨거웠다. 그래서 파리바게뜨지회는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였음에도 사측인 피비파트너즈와 함께 ‘파리바게뜨 노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이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8기 집행부 때는 시민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가려고 한다.

현재 화섬식품노조는 매년 조합비 총액의 1% 정도를 사회연대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하기 힘든 사업을 하는 시민단체들에 기부하고 있다. 올해도 전태일 재단·녹색병원·아름다운재단 등에 기부했다. 8기 집행부 동안 기금액을 늘리고, 사용처를 계속해 확대해서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할 예정이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이번 정부의 노동조합 정책은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탄압’이다. 정부 기조에 따라 사용자들도 노조의 교섭 요구에 잘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노동조합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탄압이 강해지면 오히려 끈끈함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너무 비관하지 않으면서 화섬식품노조 동지들과 함께 잘 견디고 싶다. 버티는 것뿐만 아니라 얻어야 하는 것들은 반드시 취해가며 영리하게 조합 활동을 할 예정이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화섬식품노조답게 당당하게 걸어가겠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화섬식품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