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기회의 땅’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기회의 땅’으로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10.02 01:10
  • 수정 2023.10.04 0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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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변경제한 지역까지 확대···이주노동자 어디로
“이주노동자 착취당하는 사업장은 정부에서 소개한 곳”

윤석열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정부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산업 인력난과 지역소멸의 대안으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와 산업에 초점을 맞춰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물론 채용 가능 업종·사업장을 늘렸다. 이주노동자의 국내 장기 체류 자격 기회를 넓히되, 특정 지역에 머무르도록 하는 규제도 확대·강화했다. 사업주의 부담은 완화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위레악(32세, 가명) 씨와 브라껏(37세, 가명) 씨. 5년 전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을 방문했던 두 청년은 올해 다시 한국에 와서 일을 하고 있다. ‘비전문 취업 비자’로 불리는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을 겪는 일부 산업·중소기업의 원활한 인력 수급’을 목적으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 일정 자격을 갖춘 만 18~39세라면 기본 3년에 연장기간까지 합해 4년 10개월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재입국은 1회에 한정해 가능하다. 장기근속 등으로 성실외국인근로자가 된 이주민은 귀국하고 3개월 뒤 일부 절차를 생략한 채 재입국할 수 있다.

위레악 씨와 브라껏 씨는 성실외국인근로자로 인정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캄보디아에서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일했기 때문에 한국은 다시 돌아올 가치가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소득을 위해 한국에 온 만큼 위레악 씨와 브라껏 씨는 잔업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사업장을 선호한다. “캄보디아에서 공장을 다니면 미국 달러로 월 200~250달러 정도 벌어요. 근데 한국 오면 적어도 1,000달러 이상 버니까 한국으로 오는 거예요.” 김혜나 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의 설명이다.

최초 입국 당시 두 사람 모두 경기도 평택에 있는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위레악 씨는 가구공장, 브라껏 씨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했다. 사업장 위치, 숙소 등은 다행히 소개받은 대로였다. 위레악은 가구공장에서 중량물을 옮길 때 고생이어도, 일은 할 만했다고 말했다. 브라껏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구조조정과 폐업으로 한 차례 사업장을 변경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나름 순탄했다. 지난해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다라 씨(24세, 가명)의 사정은 다르다.

“캄보디아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오면 돈도 벌고 좋은 사장님과 고향 사람을 만나서 따뜻함을 느낄 거라고.” 이주노동자인 다라 씨에게도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가족의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왔다. 취업한 곳은 경남도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18개 규모의 깻잎·상추·쑥갓 등을 재배하는 농장이었다.

다라 씨는 농장에서 일한 1년여간 동료 두 명과 인덕션 하나 있는 5평 남짓한 컨테이너를 숙소로 이용해야 했다. 제대로 된 싱크대가 없어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했다. 세탁기도 없어 1년 동안 손빨래를 했다. 입구에는 폐기물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주노동자 세 명이 임시 건물에서 생활하며 사장에게 지급한 숙소비는 1인당 월 15만 원씩이다. 다라 씨는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컨테이너에서 살게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사업장으로 가기 전에 보내줬던 주소로 검색했을 땐 그냥 보통의 집이 나왔어요. 그런데 실제는 아니었어요. 다른 주소를 알려준 거예요.”

다라 씨가 동료 두 명과 함께 지냈던 숙소ⓒ지구인의 정류장
다라 씨가 동료 두 명과 함께 지냈던 숙소ⓒ지구인의 정류장

한국 농장에서 혼자 일했던 처음 4개월간 “무서웠던” 일도 많았다. 남자 사장이 술 마시고 숙소로 불쑥 찾아왔을 때, 일하기 위해서 혼자 우거진 숲속을 걸어갈 때, 저녁에 혼자 잠들기 전 새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동료가 간절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직장에 같은 국적의 노동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궁금해한다”며 김혜나 활동가는 “혼자 있으면 한국말이 서툴러 대화하기 어렵기도 하고, 또 최소한 둘이 있으면 문제가 생길 때 서로 얘기라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9월 다라 씨는 농장을 그만뒀다. 수많은 어려움 중 퇴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상습적인 임금체불이었다. 농장에서 일한 1년간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30만 원, 20만 원, 50만 원. 그가 매달 받은 월급이다. 건강보험료와 숙소비를 공제하고 나면 손에 쥘 돈이 거의 없었다.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밥을 사 먹지 못한 때도 있었다. “사장님은 돈이 없으니 참으라 했다. 이번 달에는 돈 없다, 다음 달에 갚아주겠다고 말해서 계속 기다린 게 1년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 한국으로 왔지만 오히려 빚은 더 늘었다. 다라 씨의 송금을 기다리던 가족들이 버티다 못해 은행에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다라 씨에게 이제 한국은 “다시 안 올” 나라다. “막상 와보니 무서운 곳이라고 느꼈어요. 한국에 와서 삶이 더 힘들어졌어요. 밥을 굶기도 하고, 고향 집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마음이 아파요. 혹시 다음 직장에서 좋은 친구와 사장을 만나고 돈도 벌 수 있게 되면 그때 가서 (한국에 다시 오는걸) 생각해 볼 것 같아요.”

다라 씨는 인권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으로 고용노동청으로부터 사업장 변경을 허가받았다. 사업장 변경 사유 중 ‘평균임금보다 낮은 저임금’. ‘사업주의 기숙사 시정 요구 불이행’ 등이 인정됐다. ‘한 사업장 계속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제한’을 두고 있다. 휴·폐업, 임금체불 등 사업주 책임이 인정될 때만 최대 3회까지 같은 업종으로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 사용자의 책임이 밝혀져야만 사업장을 변경하도록 한 구속적 원칙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 소수자라는 특성 때문에 사용자의 책임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고용관계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놓인 이주노동자라면 진정·고발을 더욱 망설이게 된다. 이 때문에 노동·인권 단체는 해당 정책에 대해 자유권·이동권·거주권을 박탈하는 강제노역과 다름없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 신청 때 증거물로 쓰려고 찍었다”며 다라 씨는 자신이 살았던 숙소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 건 많아요. 이주노동자가 말을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요. 증거가 있어야 해요. 지정된 사업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증거 사진을 찍어서 보여 줘야만 해요. 없으면 인정을 못 받아요.”

지금 다라 씨는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다라 씨는 3개월 이내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전 직장에서 고생했던 터라 사업장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마음이 조급하다. 3개월 동안 재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일터에서 적응하지 못한 일부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체류자 신분으로 국내에 남는 길을 선택한다. 와중에 국무총리실 소속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올해 7월 사업장 변경제한을 업종에서 충청권, 수도권 등 ‘권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주노동자의 선택권은 쪼그라들 전망이다.

위레악·브라껏·다라 씨는 사업장 변경제한이 권역까지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다. 업종에 더해 지역까지 제약을 받으면 보다 나은 노동 조건·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장으로 가기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위레악 씨는 “지역 내 같은 업종 사업장의 근무환경은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안다”며 “임금을 적게 받거나 일이 힘들어서 사업장을 옮겨가더라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8월 2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촉구했다. ⓒ 노동과세계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는 사업장 변경제한 확대에 대해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정영섭 활동가는 “특정 지역에서 경기적인 요인으로 일자리를 원활하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텐데, 그 사람들 모두 미등록 이주민이 돼야 하는 거냐”며 “최소한 2개월 동안 직장을 못 구했다면 다른 지역에서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세부 지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정부에서 그 정도 고민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라 씨의 체불 임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대체로 임금체불은 증명하기 어렵고, 판정 기간도 오래 걸린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임금체불 사건 조사기간이 길면 2년에 이르기도 하는데, 경험상 조사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고용주들의 조사 비협조나 노동시간 등 사실관계의 은폐, 혹은 근로감독관이 노동시간을 조사하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조사 중 근로감독관이 교체되는 등의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출퇴근 시간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용자가 노동시간을 엉터리로 산정해도, 이주노동자로서는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몇 시간을 일하든 계약서에 명시된 노동시간만 반영되는 때가 적지 않다. 김혜나 활동가는 이 같은 ‘공짜 노동’을 인정받는 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10시간 일해도 임금은 8시간만 인정돼요. 실제로는 40분~1시간만 쉬면서 일하더라도,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2~3시간 쉰다고 되어 있거든요. 어떤 사장님은 ‘같이 있지 않아서 (이주노동자가) 몇 시간 일했는지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증명하기 정말 힘들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체불 임금액은 2019년부터는 매년 1,000억 원을 넘는다. 고용노동청에 제기된 임금체불 진정 건수 중 이주노동자 비중은 커지는 추세다. 임금체불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는 액수나 지원 대상이 한정적이다. 임금채권보장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농업·어업 사업장 노동자는 대지급금*을 받지 못한다. 사업주 의무가입인 임금체불보증보험은 그 한도가 400만 원에 그친다.
*대지급금 :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하여 체불임금 등을 일정 정도 지급하는 제도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정부가) 노동자를 소나 농기계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외국에서 온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들 착취하지 말고 농촌에 가서 똑같이 일해보라고 말하고픈 심정”이라고 현 고용허가제를 비판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이 해마다 발생하는데 대책이 없어요. 외국인 청년들은 결국 한국에서 돈을 뜯기고 돌아가거나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거죠.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이주노동자 비율이 70%를 넘어요. 지금도 고용주는 비닐하우스를 제공하곤 숙소비로 30~40만 원씩 가져가요. 노동자 다섯 명에게 20평짜리 시골 아파트를 내주고 인당 30만 원씩 가져가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사업장은 고용노동부에서 소개한 사업장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