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종착지, 인구소멸지역?
이주노동자의 종착지, 인구소멸지역?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10.02 01:09
  • 수정 2023.10.02 0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무부 이민청에 쏠리는 우려···“통제 기구론 통합 못해”
“이민자로 인구절벽 해소? 노동시장 이중구조 편입 우려”

윤석열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선택권을 특정 지역(권역)으로 묶어두는 고용허가제 개편은 윤석열 정부의 외국인력정책을 압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산업 인력난과 지역소멸의 대안으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와 산업에 초점을 맞춰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물론 채용 가능 업종·사업장을 늘렸다. 이주노동자의 국내 장기 체류 자격 기회를 넓히되, 특정 지역에 머무르도록 하는 규제도 확대·강화했다. 사업주의 부담은 완화했다.

윤석열 정부 대대적인 이주민 유입
“이주노동자로 인구소멸·인력난 해결할 것”

지난 8월 24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전반적으로 그간 고용노동부와 법무에서 추진 의사를 밝혀왔던 정책을 종합한 내용이다. 기업의 인력난과 인구소멸 지역에 방점이 찍혔다. 일부 정책은 이주노동자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지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E-9 비자) 대상 사업장별 이주노동자 고용 한도를 최소 2배 높이기로 했다. 제조업(9~40명→18~80명), 농·축산업(4~25명→8~50명), 서비스업(2~30명→4~75명) 등이다. 이에 맞춰 올해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도입 규모(쿼터)는 총 12만 명까지 늘렸다. 지난해(5만 9,000명) 대비 2배 이상 많다. 2024년부터는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12만 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고용허가제 적용 사업장·업종은 확대한다. 비수도권 뿌리산업 중견기업(300인 이상)도 이주노동자 구인을 가능케 했다. 현재 제조 사업장의 이주노동자 구직은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로 한정돼 있다. 택배·공항 지상 상·하차직 이주노동자 고용도 허가한다. 호텔·콘도업(청소)과 음식점업(주방 보조)의 경우 현장 실태조사 이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용허가제 미적용 산업인 조선업에 대한 쿼터도 일찌감치 신설했다. 2025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매년 5,000명의 이주노동자를 투입한다.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분석을 실시한다고 밝혔는데, 고용허가제 규모와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가 출국 없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장기근속 특례’도 신설할 계획이다. 4년 10개월 근무하면 출국 후 재입국해야 하는 규정을 없애는 게 핵심이다. ‘입국 전’, ‘입국 후’, ‘재직 중’ 등 단계별로 직업훈련도 지원한다. 모두 숙련 이주노동자를 육성한다는 취지다.

산업안전보건규칙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면 개편한다. 반도체 공장 비상구 설치, 연구개발용 소량 화학물질 심사 등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업장별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 규칙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지만,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사용자 부담 완화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노동계는 비판한다.

이주노동자의 생명과도 직결된 기숙사에 대한 방침은 앞서 7월 5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정해졌다. 사용자의 열악한 기숙사 제공에 관한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 대부분은 인센티브, 가이드라인 제시 수준에 그쳤다. 노동부는 공공기숙사를 설치한 지자체 사업장의 고용 한도를 상향하고. 통상임금의 8~20%까지 이주노동자에게 징수하던 기숙사 비용은 지역 시세를 반영토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인원마다 떼어가던 기숙사 비용은 거주 노동자들이 공동부담하도록 했다. 일부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히던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가건물 사용은 허용했다.

법무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장기체류를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먼저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E-7-4 비자)’ 규모를 3만 5,000명으로 확대했다. 이주노동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고용허가제에서 E-7-4 비자로 바꿀 수 있는 규모를 대폭 늘린 것인데, 문재인 정부 말미 1,000명보다 35배 많은 수치다. 전환 요건도 간소화했다. E-7-4 비자를 취득하면 국내에 기한 없이 정주하고 자국의 가족을 초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영주권을 취득할 자격이 주어진다.

유학생의 경우 졸업 후 취업 가능한 분야를 사무‧전문직에서 ‘외국인이 취업 가능한 분야’로 넓히고 취업을 3년간 허용했다. 졸업 후 취업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유학생을 국내 기업 인력난 해소에 활용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인구감소 지역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지방자치단체 추천을 거쳐 취업할 수 있는 ‘지역특화형 비자’를 확대키로 했다.

지역특화형 비자는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인구감소 지역 정착 유도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무부가 2022년 10월부터 시범 실시하고 있다. 유학생·외국국적동포 등이 대상이다. 유학생의 경우 국내 전문학사 이상의 학위취득자 또는 졸업예정자라면 5년 이상 지정된 인구감소 지역 거주와 취업·창업을 조건으로 거주 비자(F-2)를 갖게 된다. 업종 변경은 불가능하다. 5년의 체류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배우자와 미혼자녀 등 가족 초청이 허용된다. ‘첨단분야 우수인재 정주 지원’ 방안도 있는데, 배우자에게도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부여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조선업 이주노동자 도입 지원 상황을 점검한다며 지난 7월 10일 영암 현대삼호중공업에 방문했다. ⓒ 법무부

통제와 관리의 법무부
“외국인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이주노동자 유입은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밀어 넣기식으로 빈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보자는 인력 확대 공급은 대책 없어 보인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는 정부 정책에 대해 “땜질식 처방”이라고 말했다.

“노동부가 고용허가제를 지방의 300인 이상 뿌리산업 업체에도 허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대기업에 개방한다는 것인데, (중소영세 사업장·업종에 대한 원활한 인력 공급이라는) 고용허가제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값싼 인력을 쓰려고 이주민을 도입하는 행태를 막아야 된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외국인력 도입은 한 번 허용되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권리보장 정책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노동부는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던 전국 9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마저 폐쇄하는 계획을 냈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일요일 업무가 핵심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요일에 찾아와서 상담·교육·교류를 하는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2배 이상 늘린 상황에서 지역 노동관서와 산업인력공단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안정적 인력 수급’이라는 원칙에 밀려온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온 경향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이를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에서 설계하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외국인·이민 분야 범정부 최상위 계획이다. 향후 5년간 국가 이민 정책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정책도 법무부에서 정한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틀에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 12월 21일 법무부가 밝힌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수립 방향’에 담긴 정책 목표는 크게 경제, 안전, 통합, 인권, 협력·인프라 등 5개 분야로 나뉜다. 당시 공청회에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통합도 인권도 3차 기본계획보다 과제가 축소되었거나 모호하다”고 진단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3차 기본계획에서 5개였던 인권 분야의 중점 과제 개수가 4차 기본계획에서는 3개로 줄고 내용도 부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3차 기본계획에는 인권보호 체계 강화를 위한 차별방지 제도 마련, 인권보호 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4차(안)에서는 빠졌다”고 지적했다. 또 “3차 기본계획의 중점 과제에 ‘복지지원 내실화’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복지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고려했다면 최소한 통합·인권 정책 목표에서 향후 공동의 재난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이주민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보호할 것인지를 포함했어야 하는데,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말했다.

노동·인권단체는 법무부가 주도하는 이민·이주노동자 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통제 기관에서이주민의 사회통합과 권리에 관한 정책을 펴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이 같은 우려를 키웠다. 지난 7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강연에서 한동훈 장관은 “복합위기와 경제안보가 대두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대비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인구 문제라고 생각한다. (···) 출입국·이민 정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좀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출입국·외국인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국익과 우리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이민 정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무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고 기업과 협력해서, 외국인의 입국부터 정착까지 전 과정을 고려한 체계적인 통합 정책을 추진해 나갈 거라는 말씀을 드린다.”

한동훈 장관은 “국익의 관점에서 출입국·이민 정책을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을 이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는데, 누차 강조해오던 이민청을 설립을 강조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이민청 신설은 한동훈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밝혀온 계획이다. 정영섭 활동가는 이민·이주노동에 대한 통합적 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이민청이 법무부 산하에 설립되는 것에는 큰 우려를 표했다.

“노동부·법무부·여성가족부 등으로 외국인인력제도가 분산되다 보니 책임 소재 등 여러 문제가 생긴다. 통합적인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법무부 산하 이민청 신설은 반대한다. 법무부는 지역사회 정착이나 교류를 활성화하는 기관은 아니다. 통제와 단속을 하는 기관인데, 이민자 사회통합과 권리를 증진시킬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특히 법무부는 미등록자를 단속·추방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미등록이주민 정책을 펼 수 없다. 법무부가 이민 정책 컨트롤타워를 주도를 하게 되면 통제·관리 중심으로 갈 것이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외국인 인구소멸 지역에,
사회보장 방안 동반해야

“노동력 부족으로 도입한 이민자로 인구절벽을 해소하자는 주장에는 큰 오류가 있다. 이민자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종합적·전략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력 부족에 따른 임시방편적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규용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취업 알선이나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미비하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주 비자를 주겠다는 법무부 정책에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용·노동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이를 관장할 노동부는 여러 외국인력 정책 중 고용허가제 정책만 맡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민자는 내국인에 비해 대체로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열악한 일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를 통해 인구소멸 지역으로 들어간 이주민에게 장기체류자격을 준다지만, 그런 정책은 오히려 이민자들의 양극화를 고착화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구소멸지역은 대체로 농촌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농업 현실상 낮은 연 평균 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인도 제대로 정착하기 어려운데, 땅 한 평도 없는 이주민이 가족을 데려오거나 아이를 낳고 인구소멸지역에 정착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민자는 한국인보다 돌봄 비용이 많이 든다. 국민으로 받아들이면 모르겠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주민의 자식은 취약계층이 될 우려가 크다.”

이규용 연구위원은 노동조건이 좋아지는 것을 전제로 특정 분야에 필요한 인력은 정주시킬 수 있으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조선업이 호황일 때 돈을 많이 벌던 한국 사람이 불황을 맞아 빠져나갔다. 다시 호황기가 왔지만 임금이 낮아진 상태여서 한국 사람은 오지 않았고, 이주민 기술자를 도입했다. 불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자동화·인공지능(AI) 등으로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평생 학습제, 정의로운 전환 등을 말하지만 이민자는 한국 국민이 아니라서 관련 정책을 적용받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주형 일자리를 늘리면 몇 년 뒤 그 사람들의 취업은 누가 지원해줄까. 내국인이 받는 국민취업지원제도의 혜택도 이주민은 받지 못한다.”

정영섭 활동가는 장기체류를 허용은 반드시 사회보장제도 적용과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나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한국인과 같이 가구를 구성하거나 영주권자, 난민 인정자 등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는다”며 “장기체류 노동자가 늘어나면 그들에게도 필요한 혜택이 제공돼야 한다. 일하고 세금도 내면서 한국에 기여한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