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민영화 정책, 어디까지 왔나?
윤석열 정부 민영화 정책, 어디까지 왔나?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11.10 15:52
  • 수정 2023.11.10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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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범 이후 민영화 시도 이어져
“민영화 반대 넘어 새로운 비전 보여줘야”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2차 공동파업 돌입 선포 및 대정부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공공성 국민 여론조사 알림판에 결과 내용이 적힌 피켓을 붙이는 상징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2차 공동파업 돌입 선포 및 대정부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공공성 국민 여론조사 알림판에 결과 내용이 적힌 피켓을 붙이는 상징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민영화 부인하는 정부
대신 ‘효율성’ ‘생산성’ 강조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해선 검토한 적도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한 우려 메시지를 지속해 내자 윤석열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해 5월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영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은 공공기관 민영화는 없다고 여러 차례 말해 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진 중이라는 지적은 계속됐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조정, 자산·지분 매각, 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공공기관을 서서히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진행 중이다. 그렇게 힘이 빠진 공공기관을 민간 기업과 경쟁시키거나, 민간 기업에 넘기는 것이 다음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민영화는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공공기관 혁신에 대해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1일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방만하게 운영돼 온 공공기관은 개혁돼야 한다”며 강도 높은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이후 지난해 7월 29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에 생산성·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기관별로 혁신 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했고, 혁신 결과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 9월 12일 열린 민영화 관련 토론회에서 공성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해 민영화를 ‘혁신’ ‘효율성’ ‘생산성’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0월 5일 발표한 ‘공공성-노동권 관련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는 공공기관 민영화에 반대한다.

사회보험 무력화 선행하고
민간 보험과 경쟁시키는 방식의 민영화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강성권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10월부터 뇌·뇌혈관 MRI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축소됐다.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다. 그런데 이미 우리나라는 의료비 총액 대비 공공재원 지출 비율이 OECD 최하위(38개국 중 36위)다. 그래서 보수 정부 포함 역대 어떤 정부에서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한 적은 없다”며 “그런데도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한다며 보장성을 축소한다는 것은 건강보험을 무력화하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 하나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보험업계의 오랜 숙원과제인 법안인데, 정부의 민영화 기조에 따라 여야가 합심해 슬그머니 통과시켜 줬다. 실손보험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법이 시행되면 병의원에서 보험 가입자 요청에 따라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민간 보험사에 보낼 수 있게 된다. 청구가 간소화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의 의료정보가 보험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의 영향력이 커져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경쟁 구도는 더욱 심해진다”고 지적했다.

강성권 부위원장은 “건강보험이 약해지고,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의료가 계급화된다. 건강보험만 이용할 수 있는 극빈자들은 열악한 의료서비스만 받고, 돈 있는 사람들은 비싼 민간의료보험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적어도 아픈 것에 있어서는 모든 국민이 진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사회보험에 대한 민영화 움직임은 국민연금에서도 볼 수 있다고 오종헌 사무국장은 이야기한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한국처럼 노인빈곤율이 높은 나라에서 노후 소득을 보장하려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고 보험료율만 올리는 등 재정안정에만 초점을 맞춰 국민연금 정책을 설계한다. 소득대체율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며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절실한 저소득층부터 국민연금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그 빈자리는 사적연금이 메우게 된다. 그건 결국 국민연금 민영화로 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효율성 강조하며 공공돌봄 축소
에너지·공공교통에도 민영화 포석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은 “공공돌봄 영역에서의 민영화는 조금 더 노골적”이라고 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서울시민에게 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서사원은 정부의 운영 효율화 기조에 따라 자치구에서 위탁받아 운영해 온 국공립어린이집 7곳의 위탁운영을 종료하는 등이 자구책을 지난 4월 발표했다. 송파든든어린이집이 지난 10월부터 민간에 위탁 운영됐다. 나머지 6곳도 곧 민간 위탁이 예고됐다.

오대희 지부장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효율성’을 강조하며 공공기관을 옥죄는 정부와 이런 기조에 맞춰 공공서비스 예산을 줄이는 지자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서울시의회는 지난 3년 평균 190억 원 수준이던 서사원의 예산을 방만 경영 등을 이유로 올해 68억 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김정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대외협력국장은 가스 민영화를 우려했다. 김정곤 대외협력국장은 “현재 국회에 자원안보특별법이 계류 중”이라고 했다. 자원안보특별법은 에너지 관련 법들에 산재해 있는 자원안보 대응책을 일원화한 법안이다. 법안의 내용 중 가스 민영화로 가는 포석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 김정곤 대외협력국장의 설명이다.

김정곤 대외협력국장은 “천연가스(LNG)에 대한 민간 에너지 기업의 직수입을 허용한 후 전체 LNG 수입량의 20%를 민간 에너지 기업이 수입해 오고 있다. 다만, 그동안 민간 에너지 기업은 자가소비용으로만 LNG를 수입할 수 있어 제3자 판매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원안보특별법에는 민간 에너지 기업이 제3자에 대한 가스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간 에너지 기업에도 제3자 판매를 허용해 에너지 유통을 유동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가스를 민간 에너지 기업에서 직수입할 수 있게 만들고, 이후 다시 판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은밀한 민영화’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김정곤 대외협력국장은 “해외에서 가스를 수입해 와야 하는 한국에서 가스는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수입돼야 한다. 안보·민생을 지키려면 가스 수입에 있어 손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민간 에너지 기업에 가스에 대한 권한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공공에서 적절한 양의 가스를 미리 국내에 비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통 부문에서도 민영화의 포석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 있다고 백남희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 미디어소통실장은 말했다. 백남희 실장은 “SR의 부채비율이 150%를 넘으면 SR은 고속철도를 운영할 수 없다. 지난 6월 SR 투자자들이 자본금을 회수하며 SR의 부채비율이 2,000%까지 급등해 고속철도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국토교통부는 국유재산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까지 SR에 3,590억 원을 투입해 지분 58.9%를 매입했다”고 말했다.

백남희 실장은 “이것이 곧바로 SR 민영화로 직결되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최근 민간에 매각된 YTN이나 2015년 민간에 매각된 인천공항철도의 경우처럼 언제든지 매각을 통해 민영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유진그룹은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하고 있던 YTN 지분 30.95%를 매입하며 YTN의 최대 주주가 됐고, 이를 둘러싸고 준공영방송인 YTN이 민영화됐다는 논란 또한 일고 있다.

민영화 비판에 매몰되면 안 돼
공공기관 대신 공공성에 초점 맞춰야

백남희 실장은 정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정책에 대해 “방만 경영이 있다면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만이 있는지 이야기한 후 세심한 논의를 선행해야 한다”면서 “지금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 전체가 방만하다’라고 하며 무차별적으로 공공기관을 무력화하는 정책만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부센터장은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로 인해 “시민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보험·돌봄·에너지·교통 등의) 공공 자원이 개방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 대상이 아니라 개개인의 소득수준에 따라 접근 방식과 수준이 달라지는 상품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이런 상품화된 공공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 시민들은 더 많은 초과·과잉노동을 해야 하고, 이는 곧 개인이 공적 참여 활동의 축소로 이어진다”며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통한 주권 행사가 약화하면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로 귀결된다”고 했다.

이승원 부센터장은 “민영화 반대와 공공성 확대는 단지 공공기관의 역할을 유지·확대하는 측면이 아니라 이런 민주주의 후퇴 등의 차원에서 고민돼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것이 관료주의·권위주의 체제에 공적 서비스에 대한 막대한 권한을 주는 것이 될 뿐”이라며 “민영화를 막는다고 사회 공공성 보장·확대로 바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민영화나 공공성 투쟁이 구체적·전문적 의제에 매몰되면 대중적 설득이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했다. 미류 상임활동가는 “철도노조가 SR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말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KTX와 SRT에 대해 ‘서울역에 내리냐 수서역에 내리냐’ 정도의 차이밖에 못 느낀다. 또 민간 의료 보험이 저렴한 의료 이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면 건강보험의 의의를 시민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며 “정부 정책을 ‘위장된 민영화’라며 비판하는 것을 넘어 민영화를 저지하면 어떻게 공공성이 확보되는지에 대한 비전을 사회운동 진영이나 정치가 보여줘야 한다. 그건 어떻게 시민 모두에게 주거와 에너지, 의료 및 돌봄, 공공교통을 공급할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