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공운법 개정된다면?”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공운법 개정된다면?”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3.11.15 18:55
  • 수정 2023.11.15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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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 공대위 ‘노정교섭 및 공운법 개정’ 촉구
정부 ILO 권고에 따라 공공기관 노동자 단체교섭권 보장해야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이 ‘OLO 권고 이행, 공운법 개정, 노정교섭 촉구’ 등의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ILO 권고 이행, 공운법 개정, 노정교섭 촉구’ 등의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1월 8일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공공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효과적으로 존중”할 것을 두 번째로 권고했다. 민주노총·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국제공공노련,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협의회(공공노련·금융노조·공공연맹)이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이 공공기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했다고 진정한 바에 대한 응답이 차례로 나온 것이다. 

지난 6월 민주노총 등 3곳의 진정에 대해 내려진 권고 이후 ILO의 두 번째 권고가 내려진 지 일주일 만인 15일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가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ILO의 권고를 준수할 것 △즉시 노정교섭에 응할 것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이하 공운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러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만나 ILO의 두 차례 권고가 가진 의미와 공운법 개정 방향,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들어 봤다.

정부 ILO 권고 준수하고,
공공기관 자율교섭에 더 힘 실어야

이날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ILO의 두 차례 권고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은성진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대외사업국장은 “ILO의 권고는 일종의 국제법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법규나 지침보다 상위의 개념인 만큼, 정부를 향한 확실한 메시지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지환 보건의료노조 부산의료원지부 지부장 역시 “정부가 권고를 따라서 공공기관들의 개별적인 협의체나 노조 교섭권 등을 인정해야 현장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 노동자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는 데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조재완 금융노조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과 특성을 전달할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경제·사회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 있는데, 노동 환경 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이번 권고를 계기로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태훈 공공노련 한국도로공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ILO의 권고는 사실 하나의 가이드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은 그보다 실질적인 차원의 것들이다. 노사 교섭이나 공운법 개정 등에서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는 중요한 계기지만, 동시에 하나의 근거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번 권고의 의미가 큰 것과 별개로, 구체적인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 마련 및 정책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운법 개정,
진짜 사장 찾기와 자율교섭이 중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대노총 공대위는 ILO 권고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으로 공운법 개정을 주요하게 요구했다. 나아가 여러 노동자들이 “개정될 공운법이 각 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훈 한국도로공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각 기관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할 때 공운법 본연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운법 1장 1조는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 등을 법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조재완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 또한 “각 기관의 서로 다른 특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경영진과의 자율적인 교섭이야말로 가장 중점이 되고, 또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대련 공공연맹 한국농어촌공사노조 정책처장은 공운법 개정의 취지가 “진짜 사용자를 찾는 것”이라며 “현재는 법률의 바깥에서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각 기관의 업무와 무관한) 기획재정부의 일개 국이 300여 개 공공기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운법 개정, 다음 단계는?

이날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운법이 개정돼 자율적 단체교섭이 가능해진다면, 각 사업장의 시급한 과제들 역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은성진 국민연금지부 대외사업국장은 “지난해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는데도 공단은 아직 이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공단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규 공공노련 한국수산자원공단노동조합 위원장은 “탄소 절감이 화두가 되면서 정부는 블루카본 사업을 정책으로 내놓았다. 우리 공단 내부에서는 조직 개편까지 모두 완료됐는데, 실상 진행 사항은 아주 미미하다”며 “자율적 교섭이 가능해진다면 노동자들이 주도해 탄소 절감 사업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노동조건 개선 역시 중요하게 꼽혔다. 조재완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은 “복지와 관련된 예산을 늘리고 싶다. 우리 사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들 역시 각 기관의 특성을 반영한 노동자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김태훈 한국도로공사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정지환 부산의료원지부 지부장은 공통적으로 “인력 확충과 시스템 강화”를 말했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으로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하는 데 공운법 개정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정지환 부산의료원지부 지부장은 “현재 지역의료원은 스스로 수익 구조를 만들어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인력 관리 등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중앙정부의 단일 부처에 관할권을 두어 의료 공공성을 살려야 한다”며 공운법 개정을 통한 공공기관 분류 체계 재정비의 필요성을 짚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대노총 공대위는 “ILO의 권고는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며 노정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에게 교섭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