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조세 체제 개혁이 필요한 이유
[기고] 지금 조세 체제 개혁이 필요한 이유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2.06 09:06
  • 수정 2023.12.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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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복합위기 혹은 다중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경기 침체와 고물가 위기, 국제 지정학적 위기, 사회통합의 위기 등 여러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복합위기라고 불리는데, 각 위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도 다중위기를 화두로 올렸다. 그만큼 이 현상의 심각성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23년 국제위험보고서(The Global Risk Report, 2023)를 통해 제안한 해결책은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가령 ‘위기의 복잡성을 인식해야 한다’, ‘위험 대비를 위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등이다. 하나 마나 한 제안을 한 것은 복합위기의 근본 모순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복합위기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제일주의’와 ‘양극화’라는 근본 모순이 곪아 터진 결과다. 현재의 성장제일주의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고도 소비사회를 만들어 냈다. 동시에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야기하고 다수의 사람을 매우 궁핍한 상태에 방치하며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이다.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1980~2018년 전 세계 상위 1%가 전 계층에서 가장 빠른 소득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국제시민단체인 옥스팜에 따르면 1990~2015년 이들이 배출한 탄소량이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기후위기와 사회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소수가 부를 독식하는 가운데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대다수의 개인은 각자도생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 빚내서 자산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파이어 운동(FIRE movement), 즉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를 추구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영끌 부동산 투자, 코인 투자가 그것이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 건물주가 돼 임대료를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영끌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각자도생은 금융 거품과 가계부채 급증, 주기적인 금융위기를 야기할 뿐이다. 또 모두가 배당과 임대료를 받는 고자산 계층이 되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며 고소득·고자산 계층에게 유리한 게임일 뿐이다.

복합위기 상황, 탄소 비용 증가, 초저출생율로 인해 한국경제는 향후 자의 반, 타의 반 저성장 단계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양극화 상태가 그대로인 채 저성장 단계로 접어든다면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하위 소득계층의 삶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삶이 더 어려워진다면 자포자기하거나 자산시장에 투자해서 인생을 역전해보려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민생의 위기는 지속되며 가계부채, 금융위기도 빈발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생산과 소비, 분배 체제를 그대로 두고 저성장 단계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저성장 체제가 되려면 필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은 충분해야 하며 누구에게나 필수 재화와 서비스의 최저 소비가 보장돼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과도한 금융과 부동산 투자를 그만두고 생산적 활동에 나서야 하며 소득·소비의 양극화가 축소되고 부의 대물림, 자산 격차의 문제가 완화돼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조세 체제의 개편과 복지국가 강화가 중요하다. 단순히 탄소배출권 도입,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탄소 사용 비용을 올리면 탄소 배출에 큰 책임이 없는 하위계층에 큰 고통을 안길 수 있다. 따라서 상속세, 증여세 강화를 통해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주식이나 부동산의 양도차익을 제대로 과세해 사람들이 투기에 몰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등 3대 주요 세목의 적절한 누진 증세를 통해 재분배와 복지를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감세해 주겠다고 하면 누구나 좋아하고 상위 2% 정도가 내는 종부세도 제대로 걷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금융투자소득을 강화하려고 하니 개인투자자들이 반대한다. 이래서야 어떻게 패러다임 전환을 뒷받침할 세제 개편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