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한국 사회, 새로운 구조에 대한 논의 필요
[기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한국 사회, 새로운 구조에 대한 논의 필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2.15 11:54
  • 수정 2024.02.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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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옥세진 사회적기업 ㈜굿앤컴퍼니 이사
전 희망제작소 부소장
전 경상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단장
옥세진
옥세진 ㈜굿앤컴퍼니 이사

VUCA(Volatility 변동성, Uncertainty 불확실성, Complexity 복잡성, Ambiguity 모호성)는 불안정한 현재를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후위기, 경제침체 그리고 전쟁까지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전 세계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상황에 짓눌리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변동성이 커지면서 해결 방법도 복잡하고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호해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미래는 암울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VUCA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흥미로운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자료를 검색하다 <새로운 자본주의 그랜드디자인 및 실행계획(新しい資本主義のグランドデザイン及び実行計画>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접하게 됐다. 개혁적 관점에서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글일 것이라 짐작했다. 예상과 다르게 일본 정부가 설치한 기구의 공식문서였다. 기시다 내각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사회개척’을 목표로 2021년 10월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본부’를 설치하고 후속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문서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신자유주의가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했지만, 시장 실패로 인해 많은 폐해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사회문제 해결과 국민의 지속적인 행복 실현을 위해서는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자본주의 즉,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새로운 자본주의는 시장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소위 외부성이 큰 사회적 과제에 대해 시장, 국가 모두 새로운 관민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라는 내용으로 민간 영역의 공적 역할을 중요하게 설정하고 있다. 임팩트 스타트업(사회적 기업가) 육성과 최저임금 인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중소·소규모 기업 임금 인상을 위한 하청 거래 적정화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제도는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하다”라는 문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전임 총리와 차별화를 위해 새로운 자본주의를 말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노믹스를 답습한 성장 전략에 불과하며,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분배 정책이 미약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계획에 ‘새로움이 없다’라는 비판이 거세다.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역시 기존의 문법 즉, 목적과 목표 그리고 과정은 계획서에만 존재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 중심으로 진행되는 순간 실패가 자명하다. 그렇지만 정부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새롭게 디자인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관련해서 정책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은 주목할 만하다.

87년, 97년 체제를 넘어서는 과감한 혁신 필요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정치적으로 1987년, 경제적으로는 1997년에 머물러 있다. 제왕적 대통령과 지역구 1인 선출의 승자독식 구조는 한국 정치를 유권자와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전면화를 불러왔고 비정규직 양산과 함께 양극화를 뿌리내리게 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체제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사회문제 해결도 미래에 대한 상상도 어렵다.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계획처럼 우리에게도 공론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구성원 모두에게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사회정책은 “바람직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꼭지를 돌려야 할지, 어떤 볼트를 풀어줘야 할지 결정하는 식의 거대한 실험적 분야”라는 푸코의 말은 혁신과 닿아있다. 혁신은 절실한 필요가 있는 곳에서 이뤄진다. 혁신이 부재한 영역은 대부분 생존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기득권이 유지되고 있어서,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약하고 목소리가 분출되더라도 내부에서 진압당하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혁신이 부재한 집단은 대표적으로 정치와 행정, 사법 등 공공영역이다. 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들이 문제를 만든다.

지난호 글을 읽은 지인들이 ‘대안’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문제 심각성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답을 했다. 한편,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라는 말처럼 세부적인 방안보다는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 없이는 어떤 방안도 별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