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달라”···연이은 동료 죽음에 소방관들 거리로
“지켜달라”···연이은 동료 죽음에 소방관들 거리로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4.02.26 17:01
  • 수정 2024.02.26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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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국회 앞에서 총궐기 열고
온전한 국가직 전환·인력 충원·현장 중심 소방 조직 등 요구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에서 익명의 영정사진을 든 참가자들이 단상에 올라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에서 익명의 영정사진을 든 참가자들이 단상에 올라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충청남도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는 임수환 씨는 소방차와 구급차 두 대를 담당하고 있다. 출동 지령에 따라 화재진압·구조·구급 출동을 도맡아 한다. 임수환 씨가 구급 출동을 나갔을 때 지역에 화재가 나면 출동할 인원이 없어 20~30km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소방차가 와야 한다.

그는 “인원이 부족해 화재진압대원이 구조·구급 활동을 하고 구급대원이 화재진압·구조 활동을 하던 중 순직 사고가 난다. 동료들이 순직할 때마다 청에서 수많은 사고 방지 대책을 세웠다. 그래서 사고가 줄었느냐”며 “정부는 인력 증원 요청 때마다 인건비 예산 타령만 하면서 거부하고 있다. 우리 현장 소방관들은 누가 지켜주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도 죽지 않고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본부장 김주형)에 조직된 소방관 700여 명이 26일 오후 2시 국회 인근에서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 소방청에게 “이제는 죽어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엄마 아빠이고 싶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소방관이 순직한 지 한 달여 만에 경북 문경에서 화재로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것과 관련, 소방본부의 요구를 재차 전하기 위한 자리다.

소방본부는 소방관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소방을 온전한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 △대규모 인력 충원 △행정 중심의 소방조직을 현장 중심으로 개편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총궐기대회는 소방본부의 지역지부장들이 ‘연이은 소방관의 안타까움 죽음, 정부와 국회가 책임져라!’는 문장이 적힌 영정 사진을 들고 걷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주형 소방본부 본부장은 “현장에 인원이 없다. 아직도 연가라도 가려 하면 비번인 직원이 대신 근무를 해줘야 한다”며 “국가직인 소방본부의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 달라. 국회는 법령을 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 소방관들을 온전한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촉구했다. 소방관들은 2020년 4월 1일 국가직 공무원 신분이 됐지만 인사와 예산 등이 지방사무로 규정돼 있어 장비 등을 구입하려면 소속된 지자체에 요청해야 한다.

소방관은 현장에 출동하는 현장직과 기획 등의 업무를 하는 내근직으로 구분된다. 현장에 출동할 인원이 부족해 임수환 씨처럼 화재진압·구조·구급을 소방관 한 사람이 동시에 맡는다는 게 소방본부의 문제제기다. 소방본부는 현장 인원을 대규모 충원하고 조직을 개편해 화재진압·구조·구급 등의 업무를 분야별로 전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소방본부 충남소방지부장인 임수환 씨는 “소방은 임용되는 순간부터 행정업무, 소방차 운전, 화재, 구조, 구급 등 전문화가 아닌 멀티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현장 활동 몇 번 해보지도 않은 소방 수뇌부들이 현장 대원들의 경험과 의견을 묵살하고 탁상행정만 일삼으며 상명하복만 요구하는 현재의 소방청을 우리는 거부한다”고 말했다.

황진규 서울119특수구조단지회 지회장도 “아직도 현장인력 부족으로 수관을 들고 혼자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대한민국 소방의 현실이다. ‘소방공무원은 위험한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다. 늘 그래왔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로 순직을 덮으려 하고 있다”며 “세상에 버려져도 괜찮은 죽음이 있나.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소방본부는 소방관이 순직할 때마다 처우개선을 말한 정부와 국회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다음 달 임기를 시작하는 권영각 소방본부 본부장 당선인은 “순직이 발생하면 희생자들을 영웅이라 칭송하고 그들의 헌신을 조명한다. 다음 순직자가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 실질적 대책을 세워서 더 이상 순직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며 “현 소방청장 임기 중 4명의 순직자가 발생했는데 소방청의 대책이 뭐가 있으며 누가 책임지고 있나. 소방의 이런 현실을 우리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희생을 막을 수 있었지만 방치된 것이라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구조적 살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일에 예산을 투여하면 소방관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다. 소방본부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내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수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권한대행도 “국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공무원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권의 끝은 뻔하다”며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총궐기대회를 마친 소방관들은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행진해 요구안을 담은 정책질의서를 전달했다. 소방본부는 국민에겐 편지글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안전과 소방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단어인 것 같다. 특별한 날은 우리 동료를 잃은 날이었고 우리는 동료를 잃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국민의 삶 속으로 돌아가겠다. 지금과 같이 변치 않는 사랑을 달라. 몸을 아끼지 않고 국민의 부름에 즉각 달려가는 소방관으로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고 전했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여의도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7만 소방관 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여의도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