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관심 치솟는 기대치 커지는 부담감
쏟아지는 관심 치솟는 기대치 커지는 부담감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08.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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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찾아가는 광폭행보는 긍정 평가
‘지부장 중심’ 활동엔 우려 시선도 존재
[Close Up] 중간점검-이경훈 집행부를 말하다…① 이경훈 집행부 10개월, 현대차는 지금

ⓒ 참여와혁신 포토DB

울산시 북구 양정동 700번지. 이곳은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공장이라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위치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곳은 밀집된 공간에 2만5천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전국에 4만5천명의 조합원들이 있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그 규모나 영향력, 역사성 등을 감안할 때 제조업 대공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한국 노동조합 운동사에서 절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현대차노조(공식 명칭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이지만 이 기사가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역사 전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편의상 현대차노조로 부른다)에 지난해 9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3대 지부장 선거에서 이경훈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현대차노조는 93년 9월 실시된 노조 5대 임원 선거에서 당시 ‘보수파’인 이영복 후보가 당선된 것을 마지막으로 이후 치러진 9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민주파’가 져 본 일이 없었다. 일대 사건인 셈이다.

선거가 끝나고 다양한 해석과 전망들이 쏟아졌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연성화되면서 ‘우향우’ 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부터 집행 경험 부족과 민주파 연합의 공세로 임기를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말 많고 탈 많을 듯 보였다.

그로부터 10개월. 이경훈 집행부는 두 번의 임단협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한 번의 지방선거를 치렀다. 양정동 700번지의 지금은 어떤 풍경일까.

보상심리와 기대치 속의 임금교섭

현대차노조 사무실이 있는 울산공장을 찾은 7월 중순은 올해 임금교섭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기였다. 노조가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행위 발생을 결의하기 위한 대의원대회가 소집돼 있었지만 20년 넘는 ‘경험’을 갖고 있는 활동가와 조합원들은 한결 같이 교섭 타결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교섭은 이경훈 집행부로는 두 번째다. 지난해는 전임 윤해모 집행부가 교섭 중간에 사퇴하는 바람에 부담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한 활동가는 “남이 농사짓던 중간에 받은 것이기 때문에 기본급 동결이라는 결정을 하더라도 현장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거나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물론 지난해 교섭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기본급을 동결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 거기에 연말까지 몰린 상황에서 해를 넘기지는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최대치의 일시금을 ‘따’ 냈다.

우선 호봉승급분 3만117원은 그대로 올랐고 성과급 300%에 일시금 500만원, 그리고 주식 40주를 받았다. 금액으로 따질 경우 1인당 연평균 1580만원에 달한다. 대외적인 명분과 대내적인 실리를 모두 챙긴 셈.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어쨌든 지난해 기본급을 동결했다는 점에서 올해 보상심리가 존재했고, 또 ‘이경훈 집행부이기 때문에’ 실리라는 측면에서 더 많은 성과를 올릴 것이라는 기대치가 상당히 컸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중공업만큼’의 딜레마

쉬는 시간에 공장 옆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조합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임금교섭에 대해 심드렁해 보였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중공업만큼은 주겠지”라는 말 속에는 기대치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대의원대회가 소집된 날 이른 아침에 만난 이경훈 지부장도 그 점이 큰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다다익선”이라며 “현대중공업이 타결한 수준이 워낙 높아서 그 갭을 줄이는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회사측에서는 기본급 6만8천원 인상, 성과급 300%, 일시금 200만원을 제시해 놓은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올해 임금교섭은 기본급 임금 7만9천원 인상, 성과급 300%+200만원, 격려금 300만원, 주식 30주로 타결됐다. 이는 기본급 7만1050원 인상, 성과급 150%+250만원, 주식 26주로 타결된 현대중공업 수준을 상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합원 입장에서는 이 결과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58.14%의 찬성으로 가결되기는 했지만 기본급이 동결된 지난해의 찬성률 62.21%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중공업 수준’ 혹은 ‘중공업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정서는 활동가들이 만들었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로 이경훈 지부장도 선거 과정에서 현대중공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놓고 현 집행부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대다수 활동가들이 동의했다. 민주파 쪽의 한 활동가는 “그간 어떤 현장조직이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 이런 공약을 내세워왔고,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현대중공업을 바라보고, 또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를 바라보는 관행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경훈 집행부의 교섭력에 대해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기대치는 그보다 더 높다’로 평가할 수 있다.

‘열심히 뛴다’ 공통된 평가

이경훈 지부장은 집행 과정에서 조합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었다. 울산공장은 올해 한 번에 230~240명씩 모두 98차에 걸쳐 조합원 교육을 실시했다. 이 지부장은 “이중 피치 못할 경우 두세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했다”면서 “어떨 때는 서울에서 회의하다가 심야버스를 타고 울산에 내려와서 (교육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만난 후 다시 비행기로 서울 올라가서 회의를 계속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지부장의 ‘열성’에 대해 조합원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50대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 50명 이상만 모이는 자리면 지부장이 어디든 나타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모습은 좋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른 조합원은 “(이경훈 지부장이) 그동안 갈망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한’이 된 것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열심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재선을 노리고 여기저기 다 찾아다닌다”는 한 활동가의 부정적 평가도 있었다.

조합원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그간 주로 정세 해설이나 투쟁 지침 설명을 주내용으로 했던 것을 자녀교육부터 현장탐방까지 다양하게 구성하면서 교육이수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경훈 집행부의 조합원과의 소통에 대해서는 ‘어쨌거나 부지런히 다니고, 듣는다’는 평가는 일치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외 문제 거리두기엔 찬반

대외 행보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부분이었고, 일부 조합원들은 옹호했다.

우선 타임오프 도입을 둘러싼 기아자동차 투쟁 지원, 금속노조의 파업 등에 대해 소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활동가들이 입을 모아 비판했다. 민주파의 한 활동가는 “타임오프 문제가 개별 사업장에 국한된 것이 아닌데, 당장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함께 싸우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활동가도 “사업장 내의 문제에만 매달려 인기 있을만한 일만 한다”고 꼬집었다.

이경훈 집행부의 행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현장관리자는 “주변의 조합원들이 ‘지부장이 그건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걸 많이 듣는다”면서 “지부장도 얘기한 것처럼 기아 집행부도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싸우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현대차 다니면서 주변의 친구나 친척들한테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너거는 와 만날 파업이고?’다. 이제 이런 소리 지긋지긋하다. 할 때 하더라도 아무데나 다 나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이경훈 집행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경훈 지부장은 “선거 때 진보 후보가 단일화 안 하면 못 돕는다고 모질게 굴었다”면서 “하지만 단일화된 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하고 평가도 그렇게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활동가들은 선거 과정에서 이경훈 집행부가 역할을 한 것은 인정했다. 다만 지나치게 자신의 주도권을 쥐고 가려 했다거나,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경우는 있었다.

카리스마의 이중성

집행부의 ‘능력’에 대해서도 상반된 평가가 존재했다. 같이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다른 현장조직에 속해 있는 한 활동가는 “정책, 협상, 기조 등에 있어 총체적 난맥을 보이고 있다. 자기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고, 참모들이 제역할을 못한다”고 혹평했다.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의 한 활동가는 “높은 인지도와 의욕을 가진 지부장이 있지만, 다른 집행간부들이 경험이 없어서 결국 모든 것이 지부장에게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사노무 부서의 한 관계자는 “지부장이 실리이면서 카리스마가 없으면 오히려 회사에 부담이 되는데 이경훈 지부장은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파업에 거리를 두면서 실리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정서에 맞는 지부장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대체적으로 지부장의 ‘스타성’은 인정하지만 주변을 받쳐줄 참모 진영이 아직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경훈 집행부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행부에 쏠리는 관심이 워낙 크다보니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경훈 집행부의 등장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될지, 그렇지 않으면 침체의 시작점이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